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류산 Jul 29. 2022

3대(代)를 이어주는 편지

부모님께 편지는 손자가 얼마나 어떻게 자랐는지 두 분께 전해주는 통로다

영국에서 사는 우리 가족은 나와 아내, 두 아이가 모두 학생이다. 

유학을 위해 가족들이 영국에 도착했을 때는 나 홀로 학생이었다. 그동안 아이들도 초등학생이 되고, 아내도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생신을 맞아 편지를 보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으니, 나의 편지는 많은 부분이 손자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두 분에게 전해주는 통로가 된다. 


 



아버지, 어머니 보세요!


전화로 어머니,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건강하심을 확인하니 안심이 됩니다. 

아버님의 생신이 곧 다가옵니다. 금년에는 아버님의 음력 생신과 큰 애의 양력 생일이 겹쳤습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큰 케이크와 작은 케이크를 준비해서 가족이 모두 함께 축하할 텐데 아쉽습니다. 


작은 애가 오늘 아침 나에게 다가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여기에 왔으면 좋겠지’하고 불쑥 말했습니다. 마침 아버님 생신이 다가와 오늘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니 기특해서 아이를 안아주었습니다. 


영국에서 두 아이는 충실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큰 애는 갓난아이 때부터 점잖아서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실감하지 못했는데 일곱 살이 된 지금도 차분하고 중심이 잡혀, 엄마 아빠 심부름도 싫다는 기색 없이 잘하고, 동생하고 놀아도 형이라고 억지주장 부리는 일 없이 사이좋게 지냅니다. 요즘 들어 부쩍 '학교가 너무 재미있다' 하면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큰애는 축구, 수영, 하키 등 모든 운동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어 보입니다. 학교 담임 선생님은 산수도 잘하고, 영어 책을 영국 아이들보다 잘 읽는다고 칭찬하며 귀여워해 줍니다. 


집에서 아이들이 뭐하나 보면 작은 애는 엄마 무릎에 엎드려 자고, 큰 애는 엄마 옆에서 책을 보고 있습니다. 무슨 책인가 보면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꽤 어려워 보이는 내용을 이해하는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책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최근에 큰 애의 아래 이빨이 흔들려서 뽑아주었습니다. 새 이빨이 올라오고 있어 그대로 놔두면 옹니가 될 것이므로 하루속히 뽑아야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빨을 뽑으려고 하니 아이가 말했습니다. ‘지금 뽑아야 되느냐’고, 그리고 ‘많이 아프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뽑아야 되고 꽤 아플 것이라고 이야기하니 아빠 말을 알아듣고 눈을 감고 입을 딱 벌리는데 참 의젓하고 대견했습니다. 


큰 애는 성격도 좋아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얼마 전에는 반 친구들이 아이에 대해 쓴 것을 모아 선생님이 보내주었습니다. 그중 몇 가지를 보면 ‘좋은 친구이고 같이 놀면 즐겁다’, ‘다정하고 나의 제일 좋은 친구다’,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고 같이 자전거도 타고 싶다’, ‘나는 그가 입은 옷을 좋아하고, 그의 머리 모양과 그가 신은 양말, 신발도 좋아한다’ 등이었습니다. 아이가 영국 학교에서 잘 어울리고 적응하는듯하여 마음이 놓입니다. 


작은 애는 대단히 활동적이고 활달하여 잘 웃고 애교도 많아 엄마 아빠를 자주 즐겁게 합니다. 사교적이어서 이웃 할머니와 동네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좋습니다. 아직 공부에는 뜻이 없으나. 머리가 좋고 스마트하며 창의력이 뛰어납니다. 공작(만들기)을 좋아하며, 사고력을 키우는 놀이인 퍼즐게임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퍼즐놀이는 큰 그림을 100조각 정도로 오려내어 다시 원래의 한 그림으로 맞춰보는 게임인데, 몇 시간을 집중적으로 붙들고 있다가 100조각을 다 맞추었습니다. 엄마한테 자랑하고 아빠 돌아오면 보여준다고 하다가 먼저 잠들었다고 합니다.  


작은 애는 머리가 창조적인 듯 장난감도 스스로 독창적으로 만들어서 가지고 놉니다. 한 번은 총도 되고 변화시키면 칼도 되는 장난감을 만들어서 노는데 큰 애가 좋아 보이니 자기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동생한테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아도 신통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며느리는 아이들의 재롱과 대견한 모습을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시면 좋아하시겠다’고 하며 기뻐합니다.


아이들이 영국에 있어도 커가면서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데 지난번 동계올림픽 때나 이번 월드컵 때 텔레비전에서 한국 국기가 나오면 ‘코리아, 코리아’ 하면서 환호성을 지릅니다. 어릴 때부터 한국을 떠나 세계화를 경험하는 아이들이 나중에 대한민국을 위해 크게 쓰이기를 기대해봅니다.


스페인과 한국의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면서 ‘틀림없이 아버지가 지금 이 시간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다’고 했더니 며느리는 웃으며 ‘어머니 연속극 보셔야 하는데 아버님 때문에 못 보시는 것 아닌가’하여, '아마 아버지는 안방에서 축구 보시고, 어머니는 다른 방에 연속극 보시겠지' 하면서 웃었습니다.    


오늘 저녁 식탁에 시원한 물김치가 올라왔습니다. 유명한 요리 집 음식같이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실 맛이었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술 마시고 들어오시면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밥상의 동김치 국물로 밥을 말아 드시곤 했다는 이야기를 며느리한테 해주면서 맛을 칭찬해주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람의 수명은 하늘이 정해놓았는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수명을 누리는 것과 병이 들어 누운 채로 지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 차이는 사람이 노력하는 데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운동, 적절한 식단, 즐거운 일 만들기 등 마음먹고 그대로 행하는데 달려있다고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시자마자 빈속에 물 한잔 마시고 (위장계통의 병을 없애준다고 합니다). 식사 제때 제시간에 하시고, 오래오래 꼭꼭 씹어서 드세요. 식사 후에는 산책을 하시든지 방안에서라도 서서 조금 움직이시는 게 좋습니다. 나이 드시면 소화기능이 안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니, 위와 장의 활동을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바쁜 일을 만들지 마시고 미리미리 준비하셔서 시간에 쫓기지 마십시오. 버스를 놓칠까 봐 뛰어가서 잡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보내주고 다음 차를 타면 됩니다. 갑자기 뛴다든지 무리한 몸 움직임은 다리를 삐거나 넘어지시게 되어 크게 위험합니다.

 

저녁에는 너무 늦게 주무시지 마세요. 늦게 주무시다가 잠이 안 오는 경우에는 걱정이 되어 더 잠을 못 이루어 건강을 해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건강과 장수는 순전히 두 분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손자들이 자라고 성장하는 모습을 오래오래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을 곧 영국에서 뵐 날을 고대하며 이만 줄입니다.


아들 올림 


추신: 아버님 생신 선물로 파자마를 보내드립니다. 어머님 옷도 함께 동봉합니다.





(일러스트 출처)

https://kr.freepik.com


이전 16화 살면서 준비가 안된 것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