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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Jun 22. 2022

3대(代)가 함께 여름휴가를 가다

70년 전 할아버지가 미역을 감던 계곡에 손자들이 찾아와 물놀이를 즐겼다

이번 여름휴가는 특별한 날들이었다.

팔순을 넘기신 부모님과 중3, 고1의 두 아들과 함께 휴가를 보냈다. 

아버지와 아들 손자의 삼대, 5명이 함께 지리산 자락에 있는 부모님의 고향 산청으로 향했다. 

아내는 부득이 한 차에 5명인 인원 초과로 서울에 남았다. 


부모님은 두 손자와 아들과의 고향 나들이에 들떠계셨다.

대전-진주 고속도로가 개통된 뒤 처음 타본다고 즐거워하셨다.

연로하신 어른들이 한 번에 차를 오래 타지 않도록 휴게소마다 자주 쉬었다.


큰 아이를 할아버지, 작은 아이를 할머니의 지정 보디가드로 임명했다. 

차에서 타고 내리는 것을 지켜봐 드리고, 늘 동행하여 계단에서는 부축하고, 화장실은 같이 가거나 할머니의 경우 기다렸다가 모시고 오게 하는 등 책임을 지게 했다. 

어른들은 손자들이 부축하는 손길을 흐뭇하게 즐기셨다.


새로 개통된 대전-진주 고속도로는 산청으로 가는 길을 거의 한 시간 가량 줄여주었다.

산청의 천평 마을은 일가친척으로 이루어진 집성촌이다.

큰 집에 들어서니, 고향을 지키는 종손인 집안의 종형이 부모님과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종형은 숙부에 대한 효성이 극진했다. 

아버지가 밥을 떠시면 꼭 반찬을 밥 위에 올려 주었다.


10년 만의 더위라고 했다. 

산골마을도 그늘을 벗어나 볕으로 나가가기에는 햇살이 너무나 뜨거웠다. 

아침과 오후 덜 더울 때 이 쪽 산과 저 쪽 산을 찾아 성묘를 했다. 


먼저 아이들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그리고 고조할머니의 산소에 들리어 큰 절을 올렸다. 

깃대봉 산의 꼭대기에 있는 고조할아버지 산소는 장거리 코스로 하루가 꼬박 걸린다. 

이번에는 들리지 못하고 산소를 향해 망배를 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미리 마련하신 가묘(假墓)도 가보았다. 

두 분이 돌아가시면 차례로 몸을 누일 자리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절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에게 설명해주셨다. 

"너의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면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할 텐데......"

아버지가 말미에 덧붙이신 말이 마음에 남았다.


뜨거운 날씨에 한낮에는 이동을 하지 않고, 동네의 큰 정자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평상을 찾았다. 

밖에다 내어 앉거나 드러누워 쉴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침상인 평상에 삼대가 모여 지리산의 선들바람을 즐겼다. 종형이 평상으로 가져온 예쁘게 자른 수박을 함께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어머니의 고향인 덕천강 건너 '대가이' 마을로 넘어갔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외할머니의 무덤에서 소녀처럼 슬피 우셨다. 

할머니가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우는 모습을 아이들은 숙연히 지켜보았다.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산소도 들렀다. 

아이들은 외할아버지 산소에 함께 못 온 엄마의 안부도 전해드렸다. 

산청은 돌아가신 장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와 아내의 할아버지는 고향 친구였다. 

아버지와 아내의 큰 아버지도 친구였다. 

웃어른들의 인연으로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어머니는 종형의 집에서 쉬시고 우리는 가까운 계곡으로 미역을 감으러 갔다. 

계곡물은 더위에 적당히 데워져, 시리도록 차갑지는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바지를 걷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족욕을 하였다. 

아버지 말씀이 남명 조식 선생과 문하의 선비들이 함께 족욕을 즐기신 곳이라고 하였다.  


두 아들은 심심산골의 계곡물에 속옷만 입고 온 몸을 물에 담그고 물놀이를 즐겼다. 

지리산 자락을 감고 흐르는 이 계곡에서 할아버지가 미역을 즐겼던 곳이다. 

70년 전에 할아버지가 미역을 감던 계곡을 손자들이 찾아와 물놀이를 즐긴 것이다.


산청 근처 도시인 진주에 사는 육촌형이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형은 진주에서 TV와 스피커 등 노래방 기계 일체를 가져와 마당에 설치하였다. 

저녁 먹고 친척들인 동네 사람이 모두 큰집 큰 마당에 모였다. 

친척들은 늦도록 노래를 부르고 즐겼다. 부모님이 오랜만에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하는 행사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의 템포 빠른 노래도 듣기 좋았고, 부모님이 함께 부르신 섬마을 선생님,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흥겨웠다. 

지리산의 쏴하게 맑은 공기가 느껴졌다. 

모기 퇴치용 화톳불의 고소한 연기 냄새가 코끝을 즐겁게 했다.


삼대가 모두 즐긴 잊지 못할 휴가였다. 

부모님들은 죽기 전에 마지막 고향 여행이라고 기꺼워하셨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건강하시기만 하면,  아들이 이런 기회를 더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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