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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Jul 28. 2022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군대 훈련소에서 보낸 편지

아들이 훈련소에서 보낸 편지를 받고 26년 전 나의 훈련 시절이 생각났다

작은 아이가 대학 재학 중에 형보다 먼저 군 입대를 하였다. 

큰 아이는 대학을 마치고 공군 장교로 입대했다.


사병 훈련은 한 달이지만 장교 훈련은 3개월이다.

그만큼 고생이 심할 것이다. 나도 장교 훈련을 해봐서 훈련의 강도를 잘 안다. 

더구나 겨울에 입대했으니, 훈련소 생활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된다. 


군대 가는 날 아내와 함께 훈련소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으나, 친구들하고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 훈련소에 들어간다고 해서 집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조금 서운했으나 두 번째 입대이고 장교로 가는 거라 위안을 했다.

 

아들이 군대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 틈을 내어 편지를 보냈다.

아들, 사랑한다.




Dear My famly.


필승! 

날씨가 추운데 감기는 안 걸리고 잘들 계시는지. 

날씨가 엄청 엄청 추워서 요즘은 목토시, 귀도리, 마스크, 장갑, 깔깔이 동 내복까지 완전무장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요. ㅋ


제 사진을 보시고 살이 빠져 인물이 산다니! 그럼 빠진 살을 유지해야 하겠군요. ㅋㅋ

오늘 교회를 갔는데 늘 주던 몽쉘통통과 써니텐을 더 이상 안주더라고요. ㅠ

그것들이 저에게 그동안 큰 위로가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허전하고 사기가 저하된 우리를 위해 목사님이 대신 알찬 설교를 해주셨습니다. 지혜와 지식을 갖추고, 체력을 기르고, 인간관계를 잘하고, 진정성을 갖추며,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목적 있는 삶을 살아가라 하셨죠.

예배 때 성찬식을 했는데 잘게 자른 카스텔라를 포도주와 함께 주었어요. 

너무 소량이라 감칠맛만 났어요. ㅠ 

엄마가 예전에 성찬식 때 빵 좀 크고 많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격한 공감을 하게 되더군요. 


몽쉘통통과 써니텐이 끊기니 안 믿는 애들은 종교 행사 때 교회에 안 가고....

그런 간식들이 안 믿는 애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할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는데 없어져서 안타깝네요.


임관식 때 공군 수송기를 타고 올지 조사한다고 집에 전화할 찬스를 준대요. 사실 수송기는 기상의 문제도 있고, 비행기가 작고 불편하고 귀마개 지참이 필수 일정도로 시끄러워, 탈 생각도 부모님을 태울 생각도 많지는 않은데, 전화찬스도 활용하고 부모님 의견도 들어볼 겸 일단 신청했어요. 


만수무강하시고, 건강하시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잘 챙기세요. 

이번 주도 힘차게 보내겠습니다. 

그립고, 보고 싶고, 사랑합니다.


장남 올림

2011년 12월.





아들의 편지를 받고 나의 장교 훈련 시절이 생각났다. 

돌이켜보니, 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6년 전의 일이다. 


훈련소는 경북 영천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른 봄에 입소하였는데, 경북 영천의 초봄은 한 겨울과 다름이 없었다. 쉬도 때도 없이 속옷 차림의 야간 특별훈련은 영천 ‘말뚝 바람’이라고 불리는 찬바람에 온 몸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리고 여름까지 3개월 고된 훈련을 받았다. 100리 야간 행군, 유격 등 어려운 훈련을 받으면서 이것을 극복할 수 있으면 사회에 나가서 무슨 장애를 이기지 못하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훈련소에서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아들이 훈련소에서 보낸 편지를 본 뒤라 더욱 그렇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보세요!


참 세월이 빠른 것 같습니다.

어머님 손잡고 ‘외갓집에 가다가 다리가 절뚝.....’ 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덕산 외갓집에 가던 꼬마둥이 시절, 진주 촉석루 앞의 공원 계단이 그토록 높게 보이던 그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대학에 합격하여 아버님과 부둥켜안고, 어머님을 울게 하더니 벌써 대학도 대학원도 마쳐서 아버님, 어머님에게 학사, 석사모를 씌워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젠 군에서 이런 편지도 올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전화로나마 아버님 어머님의 귀에 익은 목소리를 대하니 달려가서 뵈옵고 싶은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 지난번 종교행사에 나가 아버님, 어머님의 건강과 장수를 빌었습니다. 저의 기도가 실현되리라 믿습니다.


이곳 영천에 처음 왔을 때, 야외훈련장에 나가보니 보리가 파릇파릇 돋아 올라, ‘저 보리가 익어 추수할 때쯤이면 이곳 훈련과정을 마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야외훈련장으로 갈 때 본 들녘의 풍경은 실로 보리가 누렇게 익어 오히려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일주일만 지나면 빛나는 다이아몬드 계급장을 달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부모님을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다시 뵙는 그날까지 건강하시고 두 분이 서로 위하며 화목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그리며 이만 줄입니다.


1985년 초여름, 아들 올림.






(사진 출처)

https://worldstory12.tistory.com/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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