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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Jul 10. 2022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립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어언 5년이 되었다

아버지 전상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어언 5년이 되어갑니다.

얼마 전 아이들 엄마와 성묘를 갔을 때 어머니와 함께 두 분이 저희들을 반기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내도 두 분 같이 훌륭한 분은 세상에 없다고 늘 이야기하며 그리워합니다.  


오랜만에 예전에 아버지가 저에게 보내 주신 편지들을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아버지가 주신 격려와 위로 덕분에 아들은 힘을 얻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손금을 보여주시면서 저에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생명선이 짧으니 아버지는 오래 못 살 수 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38세에 얻은 막내아들을 위해 오래 살아야 할 텐데 하는 그런 마음이셨던 것 같습니다.


낙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시자마자 며칠 만에 돌아가시게 되어 너무 아쉬웠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막내를 위해 92세가 되는 해까지 힘껏 살아주셨습니다. 

제가 성년이 되기 전인 고등학교나 결혼을 하기 전인 대학 때 돌아가셨으면 막내의 인생이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제가 결혼할 때나 두 아들이 세상에 났을 때 아버지가 안 계셨으면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다행히 아버지는 막내의 아들인 손자의 대학 입학식과 졸업식을 어머니와 함께 건강하신 모습으로 참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당뇨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실 수 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협심증 등 당뇨병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40여 년 동안 매일 인슐린 주사를 놓아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평생 동반자이자 성실한 간호사였습니다. 

덕분에 어머니도 수를 누리셨습니다.


아버지의 아내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오랜 병으로 성이 마르고 짜증을 부려도 “너의 어머니는 편찮으시다.”라고 말씀하시며 이해하고 받아주셨습니다. 

친척들도, 동네 사람들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실 때 그들에게 어떻게 배려하고 잘해주셨는지 말씀하시며 모두 서운해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째 되던 해에 어머니가 아버지 무덤 앞에서 우시며 말했습니다.

”유중기 씨! 유중기 씨! 이제 당신이 있는 곳에 나도 가고 싶어요. 당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아버지 무덤 한쪽을 붙잡고 우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72년을 함께하신 두 분의 극진한 사랑을 느끼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성묘를 마친 그 해 가을 어머니는 당신의 바람대로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의 옆자리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제가 얼마 전 일본 동경에 근무할 때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와 보셨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좋아하시던 장어덮밥을 시켜 앞에 두고 아버지 생각에 울컥하였습니다.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아버지가 평소 자주 하시던 넥타이를 매고 동경시내를 걸어 사무실에도 왔습니다. 

아버지가 예전에 숙부님들과 함께 걸으셨던 동경 거리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평소에는 옷매무새도 흩트리지 않으시던 분이 어린 손자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마루에서 무릎을 꿇고 슬라이딩을 하였고,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며느리가 이 모습을 부엌문 틈으로 지켜보면서 놀라고 감동했다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항상 사랑을 주시던 아버지께 혼난 일이 있을까 돌이켜보면 크게 혼난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제가 책상에서 졸고 있으니 아버지가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책을 덮고, 그만 자거라!”

그런데 시험이 코앞인데 어찌 잘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마음만 있지 책을 보는 눈이 저절로 감기고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크게 혼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선비정신으로 ‘군군 신신 부부 자자 (君君, 臣臣, 父父, 子子)’처럼 사람이 위치와 역할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교훈이셨습니다. 

‘책상에서는 책을 보고 잠은 이불속에서 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자애롭던 아버지의 따끔한 가르침으로, 이후 책상에 앉으면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더 이상 책상에서는 졸거나 자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평생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버지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아버지의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미국에서 한 조사에 의하면 아버지의 영향력이 200년 이상 자손 대대로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몸소 보여주신 사랑과 존중, 배려하는 마음은 우리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자손 수대에 걸쳐 좋은 영향으로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불초 소자 올립니다.






(일러스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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