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임종을 놓치지 말라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어제는 왼쪽 배에 경련이 왔다.
위독하셨던 어머니가 회복되자 긴장이 풀린 것이다.
비로소 속이 쓰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갑자기 밀어닥친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6월 12일 화요일, 곤히 잠든 새벽에 전화소리에 잠을 깨었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이다.
심장이 나쁘신 어머니가 수술 후 회복을 더디 하다가 결국 의식을 잃으셨다고 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급히 병원으로 달려와서 임종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가 연세가 많으시고 당뇨에 심장도 안 좋으시지만 실제로 돌아가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36세에 낳은 막내아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셨다.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마음 밖으로 미루어 놓았다. 그러다가 이젠 닥친 것이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 몰려왔다.
팔십 네 살인 어머니는 사흘 전인 6월 9일 토요일 오후에 고관절이 바스러졌다.
일어나시다가 힘이 없어 그대로 방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신 것이다.
119 응급을 불러 어머니가 다니시는 종합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어머니가 당뇨가 있고 심장이 약해 수술이 위험하다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연세가 부담이 되어 수술을 안 하고 고치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의사는 수술을 안 하면 삼 개월을 사시기가 어렵다고 했다.
다음날 일요일 정형외과 의사인 조카사위를 불러서 상의했다.
수술이 늦어질수록 다시 걷기가 힘들고 걷지 못하면 오래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집도를 하여 수술을 하려고 해도, 몸이 약하신 할머니가 수술 도중에 돌아가시게 될까 봐 망설여진다고 했다.
종합병원은 수술하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을 지켜봐야 한다고 하고, 또 수술할 의사는 조카사위의 후배로 자기보다 수술 경험이 적다고 했다.
약한 몸에 수술이 위험하지만, 수술을 안 하면 오래 사실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었다.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조카사위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어머니를 옮겨 모셨다.
그는 병원에서 수술 팀을 꾸렸다.
전신마취를 하면 수술 후에 깨시지 못할 위험이 있어, 의논 끝에 부분마취를 하기로 했다.
대학 병원 마취과 전문의인 조카가 직접 마취를 하기로 하고 부부가 같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격려하였다.
내 볼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눈빛은 평온하였다.
할머니를 직접 수술하기 위해 비장하게 수술실에 들어가는 조카 부부를 마음속으로 성원하였다.
두어 시간 만에 두 의사 부부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의 표정부터 살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큰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별 문제가 없으면 사흘 뒤부터 걸으시는 연습을 해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수술 이틀 뒤에 어머니의 심장이 극도로 약해진 것이다.
몸이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즉시 집을 나서 새벽에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다.
조카로부터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깨어나셔서 응급 앰뷸런스로 대학병원의 심장병동으로 옮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차를 돌려 중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대학병원이 있는 서울로 달렸다.
6월 15일, 어머니는 오뚝이 같이 회복하셔서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 뒤에는 재활훈련으로 걷기 연습을 하셨다.
우리가 살면서 놓치기 싫은 것이 있다.
때가 되면 놓아야 되는 것들이다.
이런 것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어머니 없는 세상,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 안 계신 세상.
슬프고 허전하다.
그러나 다가올 수밖에 없다.
멘털 리허설이라도 해 두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러스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