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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Aug 06. 2022

조선 최대의 내부고발자, 이심원 (3)

물용세조훈신(勿用世祖朝勳臣)! 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더 이상 쓰지 마소서

 조선 최대의 내부고발자, 이심원 (3)


 이심원은 세조 때의 공신인 훈구대신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훈구대신들이 부정부패에 자주 노출되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예전부터 하던 제도이면 그대로 두는 게 마땅하다고 하며, 바꾸고 개혁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심원은 세조의 즉위를 도운 훈구대신들이 20년 이상 권세를 잡으며 조정에 머물고 있으니 좋은 정치를 실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심원은 임금에게 아뢰었다. 

 “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더 이상 쓰지 마소서(勿用世祖朝勳臣). 세조께서는 사람을 쓰는 데에 한 가지 재주라도 뛰어난 자는 쓰지 아니함이 없었기 때문에 반린부익(攀鱗附翼) 하여 모두 등용되었는데, 아직도 세조가 쓰신 신하들을 여전히 쓰고 있으니, 어찌 어긋나고 잘못됨이 없겠습니까?” (성종실록, 성종 9년 4월 8일) 

 반린부익은 용의 비늘을 끌어 잡고 봉황의 날개에 붙는다는 뜻으로, 신하가 현명하고 뛰어난 임금을 섬겼기에 공명(功名)을 얻는 것을 말했다. 


 한명회와 정창손, 윤필상, 김국광 등 훈구대신들은 이심원이 올린 상소 내용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들은 세조 때의 공신을 쓰지 말라고 말한 것이 세조 대왕의 공을 부정하고 당시의 신하인 자신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여겼다. 

 영사(領事) 한명회(韓明澮)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이심원이 올린 글에 이르기를, 세조조(世祖朝)의 공신은 쓸 수 없다고 하였으니, 노신(老臣)은 이를 듣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세조는 나라를 중흥한 불세출의 임금이신데, 이심원이 어느 신하를 가리켜서 쓸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고 세조의 공신은 모두 쓸 수 없다고 말하였으니, 신은 매우 통분합니다. 세조 때의 공신을 쓰지 말라고 말한 것은 세조를 비난하고 헐뜯은 것입니다.”


 성종이 한명회를 달랬다.

 "심원의 이 말은 깊은 뜻이 없는 것이다. 공신이 만약 죄를 범하여, 벌을 주면 은혜가 상할 것이고, 벌을 면하게 하면 의(義)가 상하게 되니, 이 때문에 쓰기를 원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또 상소는 세조를 배척한 것이 아니고 다만 공신을 쓰는 것이 불가하다고 한 것이다.” (성종실록, 성종 9년 4월) 


 이심원은 이번 상소로 훈구대신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었다. 축수재를 폐지하라고 건의하며 조회에서 정승 윤자운을 큰 소리로 비난한 데다가, 급기야 세조 때의 공신을 쓰지 말라고 올린 상소로 인해 훈구대신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훈구대신들은 이후로 이심원을 원수같이 여기고 미워했다. 이심원이 내부고발자가 되어 조부인 보성군이 손자를 패륜으로 몰고 갈 때, 훈구대신들은 노골적으로 보성군 편을 들어 이심원을 곤경에 빠뜨렸다.   


 1478년 성종 9년 4월, 흙비가 내리더니 곧이어 도성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어두운 밤중에 바람마저 세게 불어 수백 집의 민가가 한꺼번에 불에 타버렸다. 대간들은 흙비에 이어 화재를 내린 하늘의 꾸짖음에 대한 대응으로 금주(禁酒)를 하자는 의견을 올렸고 성종은 허락하였다.

 

 도승지 임사홍은 대간들이 권하여 술을 금하는 명을 내렸다는 말을 듣고 언짢았다. 임사홍은 임금에게 글을 올렸다.  

 “흙비와 화재는 분명히 드러난 재이(災異)가 아닌데 술을 금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합니다. 단오에 여러 제사와 행사에 술을 올려야 하니, 단오 이전에는 술을 금하지 않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성종이 붓을 들어 임사홍의 글에 답을 내렸다.

 "대간은 과인으로 하여금 항상 경계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도록 금주령을 권한 것이다. 비록 재변이 아닐지라도,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술을 금한다고 해도 과인은 편하다.”


 사관은 도승지와 왕이 글로써 나눈 대화를 기록하며, 임사홍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예전에 아첨하는 자들은 요망한 말로 군주에게 말하여 충성으로 간하는 자를 배척하는 일들이 있었다. 충성된 말과 간(諫)하는 말을 비방하는 것은 아첨하는 말로써 스스로 몸을 파는 것이다. 임사홍이 흙비는 때가 되어 내리는 것이라고 하고, 화재는 민가에서 실화(失火)하여 여러 집이 연달아 탄 것이니 족히 괴이할 것이 없다고 하며 주상을 속였다. 옛날에 아첨한 말로 스스로 몸을 파는 자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성종실록, 성종 9년 4월 21일)

 

 그날 경연에서 임사홍은 임금에게 다시 아뢰었다. 

 “밝게 드러난 재이가 없으면서 갑자기 술을 쓰는 것을 금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듯합니다. 요즘 연일 활쏘기를 하는데, 활을 쏘는 것은 술의 힘을 빌리는 것이므로 술이 없으면 할 수 없으며, 또 단오에는 주상께서도 세 대비께 음식을 올려야 할 것이니, 단오 후에 술을 금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임금이 말했다. 

 "술은 오직 곡식만 허비하니, 금하는 것이 옳다. 또한 대비께 술을 올리는 것은 금하는 한도에 들어있지 아니하니, 어찌 술을 금하는 데 문제가 되겠느냐?”


 임사홍이 금주를 권한 대간들을 비난하며 아뢰었다. 

 "요즘 대간들이 일을 말하기를 매우 가볍게 하니, 대간의 말을 다 따를 수 없습니다. 만일 그 말이 마땅치 못하면 이따금 마땅히 견책의 뜻을 보이는 것이 옳습니다.”

 성종이 말했다. 

 "대간이 일을 말하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 취하고 버리는 것은 내 한 마음에 달려 있으며, 또 임금의 위엄은 천둥이나 벼락에 비할 것이 아닌데, 만약 말하게 하고 따라서 꾸짖으면 누가 감히 말하겠는가?” (성종실록, 성종 9년 4월 21일)


 사관 안윤손은 예문관으로 복귀하여 상관인 표연말에게 경연에서 임사홍이 한 말을 보고하였다. 예문관 봉교 표연말은 임사홍의 말에 분개하며 예문관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정 4품 홍문관 응교 채수를 찾았다.

 채수는 도승지 임사홍과 임금의 대화를 전해 듣고 통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임사홍의 말한 바를 듣건대 모두 옛 간신들의 말이고, 주상의 답하신 바는 모두 덕이 높고 밝은 임금(聖帝明王)의 말씀이다. 주상께는 삼가 공경함을 멈출 수 없으며, 임사홍에게 통분함을 견디지 못하겠다.” (성종실록, 성종 9년 4월 27일)


 표연말과 채수는 모두 김종직의 제자다. 이 두 사람을 비롯한 홍문관과 예문관의 모든 관원들이 임사홍 부자를 나라를 망치는 소인으로 탄핵하다 오히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심원은 감옥에 갇힌 홍문관과 예문관 관원 20여 명을 구하기 위해, 친족이어서 아는 정보를 동원하여 고모부 임사홍과 사돈 임원준이 실로 소인임을 임금에게 아뢰었다. 

 "임사홍은 신의 고모부이기 때문에 그 사람됨을 자세히 압니다. 또한 신이 고모의 혼인 인연으로 임원준을 알게 되었는데, 그도 참으로 소인입니다......” (성종실록, 성종 9년 4월 29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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