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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Aug 08. 2022

조선 최대의 내부고발자, 이심원 (5)

나라를 위해 어버이를 잊었으니, 신은 진실로 낭패입니다

 조선 최대의 내부고발자, 이심원 (5)


  성종 9년 4월 29일, 이심원은 궁궐로 달려가 곧바로 승정원을 찾아, 주상을 알현하기를 청했다. 승지는 이심원을 보고 말했다.

 "만약 일이 사직에 관계되는 것이면 직접 뵙고 아뢰는 것이 마땅하나, 그렇지 않으면 비록 많은 말일지라도 내가 대신 전하께 그대로 전해드리겠소.”

 “군자와 소인을 쓰고 버리는 것과 형벌이 뒤바뀐 것은 사직에 관계된다고 이를 만합니다. 따라서 감히 직접 뵙고 아뢰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성종은 이심원을 선정전(宣政殿)으로 와서 알현하도록 하였다. 이심원은 임금에게 예를 갖춘 후 아뢰었다. 

 “신은 종친으로서 큰일을 들으면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홍문관과 예문관의 관원이 임사홍 및 그 아비 임원준의 간사함에 대해 상소를 올리자, 전하께서 모두 불러서 만나 따져서 물으셨는데, 임사홍을 파직시키면서 임원준의 간사한 형상은 묻지 아니하고, 홍문관과 예문관 이십여 관원을 함께 파직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홍문관과 예문관 관원들의 말이 옳으면 임사홍 부자를 벌주는 것이 옳고, 그렇지 아니하면 양관(兩館)의 관원을 벌주는 것이 옳은데 무슨 까닭으로 함께 벌은 내리시는 것입니까? 임원준 부자는 소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서경)》에 이르기를, 사람을 안다는 것은 명철함이니, 요임금도 어렵게 여겼다고 하였다. 요임금 같은 큰 성인(聖人)도 오히려 사람 알기가 어려웠었는데, 하물며 양관의 관원들이 어찌 임사홍이 소인임을 알겠는가? 그럼에도 소인이라고 주장하는 바가 마땅치 못하기 때문에 파직을 명한 것이다. 임사홍을 소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간의 말은 다 따를 수 없다고 하며 옳지 않은 말을 하였기 때문에 임사홍의 벼슬도 거둔 것이다. 임원준은 비록 간사하고 탐오하다고 말하나 애매하고 형적이 없는 말을 믿고 어찌 죄를 묻겠는가?”


 이심원은 마음을 굳게 먹고 아뢰었다.  

 “임사홍은 신의 고모부이기 때문에 그 사람됨을 자세히 압니다. 그는 참으로 소인입니다. 또한, 신이 고모의 혼인 인연으로 임원준을 알게 되었는데, 그도 참으로 소인입니다. 조정 안팎의 모든 신하들과 일반 백성들까지 누가 임원준이 소인인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홀로 전하께서는 구중(九重) 궁궐 안에 계시기 때문에 알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세조 때의 대신들을 쓰지 말라고 청한 것은 임원준과 같은 사람을 두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너는 무엇을 근거로 임원준이 간사한 소인이라고 하느냐?” 


 이심원은 임금에게 고했다. 

 “신은 성리학을 대강 공부하여, 옛 성현의 사람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선 한 가지 일을 가지고 전하께 밝히겠습니다. 태종의 넷째 아드님이신 성녕대군의 대를 이은 원천군이 돌아가시자 성녕대군의 뒤를 잇게 하는 일이 결정되지 아니하여 국론이 어지러웠습니다. 원천군의 적자는 없고 첩의 아들 열산수(列山守)만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임원준이 말하기를, 지금 원천군이 적자가 없으니 성녕대군의 제사를 반드시 다른 데로 옮겨야 할 것인데, 태종의 둘째 아드님이신 효령대군의 아들 보성군만이 성녕대군의 뒤를 이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녕대군의 재산이 매우 많으므로 만약 저의 조부인 보성군이 이를 얻으면 보성군의 딸인 임사홍의 아내도 상속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임원준이 힘을 다해 도모하였던 것입니다.”


 임금이 물었다. 

 “결국 열산수가 성녕대군의 제사를 모시게 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열산수가 뒤를 잇기로 이미 정해졌는데도, 임원준은 신을 불러 ‘예전에 오천부정(烏川副正)이 양녕대군 첩의 아들이므로 대군의 제사를 받들지 못하고 함양군이 상속하였다. 듣건대 오천부정과 사이가 좋다고 하니, 가서 달래어 자신의 예(例)를 들어 상소하게 하면, 조정에서 반드시 오천부정의 말을 들어 열산수로 하여금 성녕대군의 뒤를 잇지 못하게 할 것이다. 성녕대군의 후사가 적자로 옮겨진다면 그대의 조부인 보성군이 성녕대군의 뒤를 잇게 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너는 임원준에게 뭐라고 답하였는가?”   

 “신은 임원준의 꾀가 매우 간악하고 음흉하다고 생각하여 대답하기를, ‘증조부 효령대군의 뜻이 다른데, 조부인 보성군께서 어찌 아버님의 뜻을 거역하고 성녕대군의 뒤를 잇기를 즐겨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에 임원준이 말하기를, ‘80여 세가 된 대군이 어찌 세상에 오래 살겠는가? 보성군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지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임원준에게 사람의 어진 천성이 없는 것입니다. 이 한 마디 말로 미루어 보면 다른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조정 안팎의 대소 신료 가운데 누가 임원준이 소인인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홀로 전하께서 알지 못하실 뿐입니다.”


 임금이 말했다.

 "성녕대군 후계문제는 임원준이 잘못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면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임원준은 의정부의 대신이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전하께서 한 사람의 간신을 보호하고자 하여 스물한 명의 군자를 내치시니, 이는 소인으로 하여금 꺼리는 바가 더욱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심원은 임금이 임사홍 부자를 버리기를 주저하니, 그들 부자에 대해 자신이 아는 모든 사실을 고하여 임금의 마음을 돌리고자 했다. 

 “사관 표연말이 신에게 말하기를, 전일 도승지 현석규가 대간들에게 탄핵당한 일은 모두 현석규를 미워하던 승지 임사홍이 몰래 사주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때 현석규가 아래 승지를 예를 갖추지 않고 나무란 것을 탄핵한 대간은 바로 임사홍의 심복이었습니다. 임사홍은 주상과 승지들의 은밀한 대화나 현석규의 행동을 살펴서 곧 말을 전하니, 대간들이 임사홍의 술책에 빠져 현석규를 탄핵하게 된 것입니다.”

 "몰래 사주하여 현석규를 공격하였다니, 임사홍은 참으로 간사한 자가 아닌가. 네가 임사홍 부자와 인척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 간사함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으면 어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신이 비록 미천하나 마음은 항상 사직에 있습니다. 두보의 시에 이르기를,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기울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진실로 이와 같습니다. 만약 국가가 위태로우면 신이 먼저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하기 때문에 감히 이처럼 죽기를 무릅쓴 것입니다.”


 이심원은 말을 이었다. 

 “《역경)》에서 이르기를, 소인들이 점점 왕성해 가더라도 군자의 도(道)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남아 있어서 결국 다시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이제 홍문관과 예문관 관원과 대간들이 모두 청함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신이 죽음으로써 감히 아뢰었습니다. 원하건대 전하는 신이 바치는 외로운 충성을 살피소서. 이는 비록 신이 하는 바이나 반드시 하늘에 계시는 조종의 영혼이 음덕으로 시키신 것입니다.”

 이심원은 흐느낌이 섞인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사홍은 조부의 사랑하는 딸의 지아비이자 아끼는 사위입니다. 신(臣)의 아비가 평소에 지병이 있는데, 만약 이 일을 들으면 반드시 놀라고 슬퍼하며 신을 심히 그르게 여길 것입니다. 신 또한 무슨 면목으로 다시 조부모와 부모를 뵈올 수 있겠습니까? 신은 오로지 사직의 연고 때문에 감히 전하께 말씀 올리는 것입니다.”


 임금이 위로하였다.

 "경의 아비가 어찌 경을 그르게 여기겠는가?”

 이심원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신이 나라를 위해 어버이를 잊었으니, 신은 진실로 낭패입니다.”

 성종이 다시 좋은 말로 위로하였으나 이심원은 드디어 통곡하면서 어전에서 물러갔다. (성종실록, 재위 9년 4월 29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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