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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Aug 11. 2022

조선 최대의 내부고발자, 이심원 (6)

보성군이 손자를 고발한 것은 사위 임사홍의 원수를 갚는 것에 불과합니다

 조선 최대의 내부고발자, 이심원 (6)


 이심원의 조부 보성군은 손자가 사위 임사홍을 고발했다는 소식에 화를 참지 못하고, 곧바로 궁궐로 가서 임금을 알현했다. 

 "전하, 신의 손자 심원이 전일 축수재 폐지와 세조 때의 신하를 더 이상 쓰지 말라고 하는 등 여러 차례 분별없고 도리에도 어긋나는 말을 해서 성총(聖聰)을 어지럽혔습니다. 신이 심원의 아비와 더불어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심원이 마음을 고치지 아니하고 이제 또 고모부인 임사홍을 헐뜯으니 인정과 세상 이치에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신이 자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여 이와 같게 하였으니, 신에게 죄를 묻기를 청합니다. 신과 함께 심원도 엄하게 다스려주소서.” 

 성종은 종친의 어른인 보성군에게 말했다. 

 "심원은 죄가 없소. 심원의 말은 공적(公的)인 것이고, 사적(私的)인 것이 아니었소.” (성종실록, 재위 9년 4월 29일)


 이심원에 대한 거센 압박은 조부뿐만이 아니었다. 종친의 최고 어른인 효령대군과 밀성군이 임금을 찾아 임사홍을 용서하고, 이심원을 벌하라고 청하였다. 이어서 종부시(宗簿寺) 제조인 밀성군이 이심원을 고발하기까지 하였다. 

 종실의 잘못을 규찰하는 임무를 관장하는 종부시 관원이 이심원을 심문했다.   

 “부친이 병환 중인데 아들의 도리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아픈 부친 곁에서 약탕을 끓여서 정성껏 올려야 하거늘, 책을 읽은 사람이 어떻게 강상(綱常)의 죄를 범할 수가 있는가?” 

 강상죄는 조선시대의 윤리인 삼강오상(三綱五常)을 범한 죄를 말한다. 강상죄는 법이 엄격하여  극형이나 유배형 등으로 처벌하였다. 


 이심원은 종부시를 나와 바로 궁궐을 찾았다. 승정원에 들어가, 승지에게 임금을 알현시켜달라고 청했다. 승지가 이심원의 말에 임금에게 나아가 물었다.  

 "주계부정 심원이 전하를 알현하고자 하옵니다. 개인적인 일인 듯한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종은 짚이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에 효령대군과 밀성군이 고모부를 탄핵한 심원을 벌주고 임사홍을 용서하기를 청하였다. 또 심원의 죄를 들어 말하기를, 축수재 폐지와 세조 때의 신하를 쓰지 말라고 하였으니, 이는 신하 된 자의 말이 아니며, 고모부를 탄핵하였으니 이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며, 병든 아비가 있는데 옆에서 약을 끓어서 올리지 아니하니, 이는 아들의 도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과인이 답하기를, 바른말을 구하고서 견책하면 어찌 옳겠는가? 아비의 병이 있는데 정성으로 약을 올리지 아니한 것은 종부시에서 국문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심원이 이 때문에 온 것이다. 심원을 들라하라.”


 이심원은 임금에게 절하고 아뢰었다. 

 "신이 친히 아뢰기를, 오늘 임사홍을 탄핵하면 반드시 집안의 죄인이 되고, 조정에서 미워하는 바가 되어 몸을 용납할 바가 없을 것이니 신이 믿는 바는 주상전하의 밝으심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불효는 어버이가 친히 고해야만 비로소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오로지 임사홍의 잘못을 탄핵한 까닭으로 인해 신을 모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심원이 자신의 처지를 임금에게 하소연하고 물러가자, 성종은 승정원을 통해 종부시에 명하였다.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골육의 친함이 없다고 한다. 석작(石碏)이 나라를 위해 아들을 죽인 것은 이 때문이다. 심원이 말한 바는 잘못한 것이 아니다. 또 부자간의 일은 진실로 바로 알기 어렵다. 비록 심원의 아비인 평성도정에게 물을지라도 위로는 보성군의 뜻을 어길 수 없고 아래로는 차마 아들의 허물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문제로 삼지 않는 것이 좋겠다.” (성종실록, 재위 9년 5월 8일)

 춘추시대 위나라의 충신 석작은 아들이 모반을 일으켜서 성공하자, 지혜로써 아들을 참형에 처하고 왕실을 구하였다. 춘추좌씨전을 지은 좌구명(左丘明)은 대의(大義)를 위해 멸친(滅親, 골육의 정을 끊음)하였으니, 석작이야말로 참된 신하라고 했다. 


 보성군은 사위인 임사홍이 이심원으로 인해 변방인 의주로 유배형에 처해지자, 손자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성종 9년 9월 5일.

 보성군은 이심원에게 조부를 꾸짖고 능욕한 죄를 걸어 종부시(宗簿寺)에 보내는 고발장을 작성하였다. 종부시는 보성군의 고발장을 접수하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주계부정 심원은 친족이 모인 날에 조부 보성군에게 방자하고 도리에 어긋난 말을 하였다고 하니, 청컨대 법에 의하여 벌을 주소서.”

 조부를 꾸짖고 능욕한 죄는 강상죄로 법에 의하면 극형으로 처벌하게 하였다. 

 

 성종 9년 9월 6일, 임금은 고발을 당한 이심원을 부득이 의금부에 회부하게 하고, 강상죄에 대한 처벌을 신중하게 처리하기 위해 대신과 대간은 물론, 종친과 홍문관과 예문관의 관원들도 의논에 참여하게 하였다. 

 영의정 정창손이 아뢰었다. 

 "이심원이 조부에게 방자하고 패역함이 막심하니, 법에 의하여 사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조부를 꾸짖었다는 말이 고발장에 없으니, 조부를 꾸짖은 법에 비추어서 극형에 처하는 것은 과할 듯합니다. 사형을 감하여 유배를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심원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한명회, 김국광, 노사신 등 훈구대신들도 영의정과 같은 의견이었다.


 조정에 새로 들어온 젊은 선비들인 홍문관 관원들은 이심원을 극력 변호했다. 종 5품 홍문관 부교리 김흔은 임금에게 호소했다. 

 "이심원이 전일에 고모부 임사홍을 탄핵하였으니, 한 집안의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고모부를 탄핵한 것은 공(公)을 앞세우고 사(私)를 뒤로하여, 마음을 나라에 두고 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니 그 뜻을 숭상할 만합니다. 보성군이 심원을 비록 골육으로 볼지라도 친자녀에 비하면 거리가 있습니다. 심원 때문에 사위가 멀리 귀양을 가는 데에 이르렀으니 심원을 미워하여 죄에 빠뜨려서 해치고자 함이 매우 뚜렷합니다. 이제 만약 조부에 순종하지 아니한 법에 의하여 처벌하면, 위로는 골육의 은혜를 상하게 하고 아래로는 충직한 기운을 저해하여 인륜이 큰 손상을 입을 것이며, 언로(言路) 또한 막히는 데에 이를 것입니다.”


 정 5품 홍문관 교리 안침은 보성군을 탄핵하였다. 

 “무릇 매와 송골매는 사나운 새이고, 표범과 호랑이는 사나운 짐승이며, 뱀과 살무사는 독이 있는 생물인데도 오히려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차마 해롭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도 이치에 어긋남이 매와 송골매, 표범과 호랑이, 뱀과 살무사보다도 못한 자가 간혹 있습니다. 보성군이 분함으로 인하여 그 손자를 죽을 곳에 빠뜨리니, 이는 인정으로 차마 못할 바입니다.”


 정 6품 홍문관 수찬 유호인도 이심원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나섰다. 

 “이심원이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고 일찍이 유생 가운데 뜻이 있는 자와 더불어 《소학》의 도(道)를 연구하였으니,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고 순종하지 아니할 자가 아님은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심원이 친족이 모인 날에 어버이에게 사랑을 얻지 못한 것을 민망히 여겨서 강제로 끌어낼 때를 당하여 혹시 언성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아들이 아비에게 세 번 간하여 듣지 아니하면 울부짖으면서 따라다니는 것인데, 손자가 조부에게 울부짖으며 말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보성군이 심원을 고발한 것은 임사홍을 위해서 원수를 갚는 데에 불과합니다.”


 임금은 말했다.   

 "보성군이 심원을 고발한 것은 오로지 임사홍의 일로 인하여 행한 것이니, 일이 바르지 못하다. 과인의 생각으로는 보성군을 불러서 조부와 손자의 의리로 타이르고 심원을 석방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이때 영의정 정창손이 나섰다. 

 "조부와 손자의 사이는 천륜이 지극히 중하니, 조부가 비록 사랑하지 아니할지라도 손자는 효도하지 아니할 수 없는데, 이제 심원이 조부에게 한 말이 이치에 어긋나므로, 온전히 죄를 면해 줄 수는 없습니다. 외방에 부처(付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명회와 김국광 등 이심원을 미워하던 훈구대신들은 정창손의 의견에 동조했다. 

 임금은 영의정과 대신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직첩을 거두고 심원을 외방에 부처하라.”


 이심원은 조부와 훈구대신들의 핍박으로 결국 도성을 떠나 경기도 장단(長湍, 지금의 파주지역)에 부처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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