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대신의 부패가 악취를 내다 (5)

칠원 현감의 뇌물을 받은 자가 조정에 무려 수백 인이 됩니다

by 두류산

5장


경연에 참가했던 재상들은 사헌부 대간의 입에서 김질은 물론 한명회의 이름도 나오자 서로 보며 놀라워했다. 임금이 정승들을 돌아보니 임금과 눈이 마주친 김질이 움찔하며 아뢰었다.

"신의 농장이 현풍(玄風, 지금의 대구지역)에 있는데, 김주가 현풍에까지 와서 신의 종에게 들깨를 주었습니다. 근일에 신의 종이 와서 말하는 것을 듣고 신이 처음 알았습니다. 곧 아뢰려고 하였으나, 옥사(獄事)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임금은 김질의 변명을 듣고 대간에게 말했다.

"대신이 먼저 요구한 것이 아니고, 김주가 스스로 뇌물을 주어 아첨을 한 것이다.”

"김질이 비록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김주는 물건을 보내면 재상이 절대로 물리치지 않을 것을 알고서 뇌물을 주었을 것입니다.”

젊은 대간의 꼬장꼬장한 말을 들으며, 임금은 얼굴에 검버섯이 난 김질을 쏘아보았다.


김질은 한명회를 찾아가 경연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대간들이 감히 상당군과 저의 이름을 지목을 하며 비난했어요.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안 그래도 대감과 여러 사람의 이름이 김주의 장부에 적혀있다고 들었소. 이것은 명백한 물증이 되니 속히 주상께 합당한 이유를 들어 미리 변명해놓아야 할 것이오.”


한명회는 어쩔 줄을 모르는 김질과 함께 어전에 나아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의 이름이 김주의 장부에 적혀 있으니 신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김주의 아비와 신은 육촌 간이고 이웃에 살기 때문에 서로 친하게 지냈는데, 김주가 전에 형인 김지(金漬)의 집으로 물건을 보내어 신에게 전하였으나 신의 아내가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며 신에게 말하여, 신도 같은 생각으로 물리쳤습니다. 김지에게 물으면 드러내어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김질도 변명하며 아뢰었다.

"김주가 신(臣)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현풍에 있는 신의 농장에 깨를 맡겼습니다. 신의 종이 현풍에 갔을 때 짐이 많아서 그때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근일에야 신도 비로소 알았는데, 사간원에서는 신이 잘못을 숨겼다고 합니다. 신이 성상의 은덕을 크게 입어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는데, 감히 성상 앞에서 속이겠습니까?”


임금은 두 정승을 보며 말했다.

"대간이 고했지만, 과인도 도저히 정승들이 그랬으리라 믿을 수가 없었소.”

한명회와 김질은 임금의 얼굴에 노기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두 정승이 물러가자, 도승지 현석규가 상소 두루마리들을 받쳐 들고 어전에 입시하였다.

“사헌부와 사간원이 김주의 뇌물과 관련해 각각 연명으로 상소를 올렸습니다.”


임금은 먼저 사헌부의 상소를 펼쳤다.

"김주의 뇌물을 받은 자가 조정에 무려 수백 인이 됩니다. 일찍이 성명(聖明)의 아래에서 이와 같이 탐오한 풍습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용렬하고 낮은 관직에 있는 무리들은 족히 논할 것도 없지만, 한명회와 김질 등은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는 지위에 있고, 집에는 천금(千金)의 재물이 쌓여 있는데, 어찌 남의 뇌물을 받아야 가족을 먹일 수 있다 하겠습니까? 모두가 백성의 고혈이니, 몰수하여 탐오한 자를 징계하고 조정의 기풍을 바로잡도록 하소서.”


임금은 사간원의 상소도 펼쳐 읽었다.

"김주는 본래 간사한 소인(小人)인데, 청탁으로 말미암아 수령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백성의 고혈을 착취하여 주요 직책에 있는 모든 관리들과 권세가 있는 대신의 집에는 어디나 다 뇌물을 보내었습니다. 그중의 소소한 사람들은 헤아릴 것도 없으나, 대신이 된 자는 임금의 녹봉을 먹는 것만도 실로 넉넉한데, 또 버젓이 뇌물을 받고도 태연하게 부끄러움을 몰라 스스로 신고하여 처분을 기다리려고 하지도, 혐의를 인정하지도 않으니 대신의 도리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뇌물을 추징하여 대신이 재물을 탐내는 마음을 그치게 하소서.”


성종은 상소를 덮고, 현석규에게 물었다.

“김주가 누구의 천거로 수령이 되었는지 아는가?”

현석규가 담담히 아뢰었다.

“김주의 형제와 그의 부친은 상당군의 집과 이웃에 살았는데, 상당군이 그들을 집사처럼 여겼다고 들었습니다.”

예상했던 답이었다. 성종은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대간들의 말대로 대신들은 집에 재물이 풍족할 터인데, 어찌 백성의 재물까지 탐한단 말인가.”


성종은 착잡한 심경으로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친정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밀어닥친 불미한 일이 자신의 덕이 아직 부족한 때문이라고 무거운 마음으로 자책했다. 현석규는 묵묵히 엎드려 임금의 명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임금은 이윽고 천천히 붓을 들어 사헌부가 올린 상소의 여백에 답을 채워 넣었다.

“김질과 한명회가 먼저 물건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는 물건을 받은 것만으로도 염치의 도리가 아니다. 체면과 부끄러운 마음이 없어진 것은 과인의 덕이 부족한 때문이요, 정승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책하려면 너희들은 마땅히 내 잘못부터 간(諫)해야 할 것이다.”


임금은 사간원의 상소에도 답을 써서 현석규에게 주며 말했다.

“양사의 상소를 의정부에 내리니 재상들이 읽게 하라.”

성종은 대신의 지위에 오른 자들이 소소한 뇌물에 초연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기를 바랐다.


정승들은 모두 모여 대간들의 상소와 이에 대한 임금의 답을 읽었다. 재상들은 헛기침을 하며 몸 둘 바를 몰라했다.

“대간들의 글이 언제부터 이렇게 독해졌습니까?”

한명회가 문득 의심이 들었다.

‘주상이 훈구대신들을 내치려고 대간들을 사용하시는 것인가?'

한명회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예종은 즉위하자마자 분경 금지와 같은 강력한 명을 내려 대신들을 누르려 하였다. 주상은 비록 친정을 시작하셨지만 어진 성품이니 그렇게까지는......’


우의정 윤자운이 입을 열어 서거정에게 물었다.

“김주가 보낸 물건을 모두 밝혀 몰수한다면 조정의 체면이 말이 아니오. 내가 말한 사면령과 관련한 법은 확인해보았소?”

우찬성 서거정이 재상들에게 보고했다.

“《대명률(大明律)》을 살펴보니 가산(家産)을 몰수해야 할 범죄라도 사면하는 교서가 도착한 뒤에는 모두 사면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김주도 사면 대상인데, 남이 준 물건을 받은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정승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주상께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 합니다.”


우의정 윤자운이 어전에 나아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대명률(大明律)》에 의하면 주범인 김주도 사면되는데, 그가 남에게 준 물건은 당연히 사면 대상입니다. 사면이라는 것은 지난 흠을 씻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김주가 증여한 일은 이미 사면을 받았으니, 그가 준 물건도 추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옵니다.”


성종은 정승의 말에 가소로운 생각이 들었다. 우의정에게 짐짓 근엄하게 물었다.

"윤 정승은 전에 경연에서 김주에 관하여 말할 때에 뇌물을 준 자는 반드시 징계해야 한다고 말하더니, 이제 의견이 달라진 것은 무슨 까닭이오?”

"신이 《대명률(大明律)》을 확인하지 못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임금의 뼈가 있는 질문에 윤자운은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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