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간의 간관(諫官)들은 김주의 장부를 입수하여 살펴보고, 뇌물을 받은 대신들을 성토하였다.
“김주의 장부에 ‘현풍의 김 정승에게 들깨 두 섬’이라고 적은 것은 필시 김질을 지칭하는 것이고, ‘김 정승에게 들깨 한 섬과 종에게 노자로 지급한 쌀 두 말 닷 되’라고 적은 것은 반드시 김국광일 것입니다. 지난번 경연에서 대간들이 김주가 준 물건을 모두 몰수하기를 청하니, 전하께서 좌우를 돌아보고 물으셨는데 김국광은 끝내 한마디 말이 없더니, 이 때문에 입을 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주를 잡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김주를 잡고 김주의 장부도 드러났으면 마땅히 진상을 조사해서 죄를 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부끄러움을 아는 풍속을 장려할 수 있을 것인가?”
대사간의 간관들은 뇌물을 받은 대신들의 죄가 이대로 덮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대사간 최한정과 사간원의 관리들은 뜻을 모아 재상들의 파직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우승지 임사홍은 사간원이 올린 상소를 받쳐 들고 입시하였다. 임금은 상소를 펼쳐서 읽었다.
“한명회와 김국광과 김질은 다 나라의 대신이니, 녹(祿)을 충분히 받고, 부귀도 극진합니다. 국가에서 존중하고 사민(士民)이 함께 우러러보니 본래 청렴하고 스스로 근신해야 마땅한데 탐욕이 한이 없어 이런 수치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를 그대로 두고 문책하지 않으니, 고을의 수령들 중에 김주와 같이 백성들에게 악한 일을 하여 대신들에게 뇌물을 보내는 자가 많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받은 물건을 몰수하고 모두 파직하여 뒷사람을 경계하게 하소서.”
성종은 상소를 읽고 대사간의 간관들을 어전에 불렀다. 대사간 최한정과 간관들이 어전에 나오자, 성종은 술과 음식을 내리며 말했다.
“대간들이 재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곧은 기개는 과인이 좋게 보는 바이다. 다만, 소소한 물건을 받았다고, 어찌 재상들을 파직까지 시킬 수야 있겠는가.”
대사간 최한정은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들은 작은 잘못을 꾸짖기를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일 대신에게 중한 죄가 있더라도 전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한명회는 대왕대비께서 정사를 돌리는 날 지나친 말을 하였고, 대신들은 김주의 뇌물을 받았으므로 대간이 탄핵하였는데 들어주시지 않았던 것을 신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임금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대사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조정의 거의 모든 대신들은 많든 적든 김주가 보낸 물건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성종은 조정의 대신들에게 실망하였다. 할아버지 세조대왕이 왕위에 오를 때 훈구대신들은 큰 공을 세웠으나 도덕적으로 결함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삼정승과 육판서를 모두 차지하고 있어, 뇌물을 받았다고 드러내고 벌을 주거나 망신을 주기에는 조정의 체통이 달린 문제였다. 더구나 원자의 탄생으로 이미 사면령을 내렸으니 명분도 약했다.
임사홍이 임금의 마음을 읽고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재상과 대신들은 마땅히 고을 수령이 올린 물건을 되돌려 보내며 삼가야 했습니다. 대간들의 청이 옳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어 이들 모두에게 죄를 묻기는 어렵고, 또한 사면령도 이미 내렸으니 당연히 법에 따라 불문에 부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성종은 최한정과 간관들을 보며 말했다.
“경들의 말뜻을 과인도 안다. 하지만 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간관들이 물러나자, 임금은 쓴 음식을 입에 넣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성종은 내전에서 밤이 늦도록 서류를 읽다가, 김주의 뇌물사건이 생각이 나 쉽게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제 친정을 시작했는데, 염치를 잃은 조정의 대신들을 장차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쳐야 하는가, 안고 가야 하는가? 그들을 모두 내치면 누구와 정사를 돌볼 것인가.'
성종은 대전 내관에게 물었다.
“도승지가 오늘 숙직이렷다. 그를 들라하라.”
현석규는 임금의 부름을 받고 급히 내전에 입시하니, 한눈에 보아도 주상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어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야심한 시각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쉽게 잠이 들지 않을 듯하여 경을 불렀소.”
성종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대신들에게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소.”
현석규는 노기가 서린 젊은 임금의 말에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전하께서는 못할 일이 없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인의를 앞세워 쓰시면 왕도정치가 되는 것이고, 가혹한 처벌을 행하시면 패도정치가 되는 것입니다.”
임금은 도승지의 말에 눈을 감았다. 현석규는 말을 이었다.
“법에 따라 신중히 처리하신 것은 잘하신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상당군은 사람을 잘못 천거한 죄가 크나, 실언을 하여 직책을 내려놓았다가 용서해 준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간(臺諫)들의 말이 옳지 않은가.”
현석규는 조용히 아뢰었다.
“대간들이 재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신을 탄핵하는 것은 전하께서 그들의 기개를 키워주신 덕택입니다. 하지만 받은 물건을 몰수하게 되면, 대간들은 몰수에 그치지 않고 당연히 이름을 더럽힌 자들의 파직을 청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대간의 말을 들어주자면, 재상뿐만 아니라 백명이 넘는 관련자를 모두 징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임금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현석규가 말했다.
“전하, 큰 강은 흙탕물을 가리지 않고, 바다는 모든 물줄기를 품습니다. 흙탕물도 바다에 안기면 푸르고 맑은 물로 변할 것이옵니다.”
“모두 안고 가란 말이렷다.”
“그러하옵니다.”
성종은 도승지의 말에 얼굴이 편안해졌다.
김맹성, 김흔, 표연말 등 김종직의 제자들은 김주의 뇌물사건을 계기로 조정에 새바람이 불기를 기대했다. 특별히 이제 막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김맹성은 더욱 기대가 컸다. 지방수령에게 뇌물을 상납받은 대다수 대신들이 모두 처벌받거나 최소한 그들의 이름이 밝혀져 새롭게 쇄신된 맑은 조정에서 벼슬을 시작할 것으로 고대했다. 하지만 이미 사면령이 내렸다는 이유로 뇌물로 받은 물건도 몰수하지 않고 뇌물 받은 자들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마무리된 사실에 실망하였다.
김흔이 분통을 터뜨리며 김맹성에게 말했다
"주상은 사면령에 관계없이 이번 기회에 관련된 훈구대신들에게 강력하게 죄를 물어 나쁜 버릇을 고쳐놓아야 했어요."
표연말도 거들었다.
"훈구대신들이 뇌물을 뿌리치지 않은 것은, 그들이 권세를 오래 잡아 조정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의 도가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김주를 잡고 뇌물을 보낸 장부도 드러났으면, 마땅히 진상을 조사해서 죄를 물어 이번 기회에 청렴의 풍속을 장려해야 했어요. 주상께서는 어찌하여 탐오한 신하들의 죄를 그대로 묵과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김흔은 대간들이 보다 강하게 말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고 생각했다.
“대간들은 뭐 하는 것입니까? 얼마간 그동안 없던 강직함을 보이더니, 금방 탄핵을 멈추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간들은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직책이 아닌가요? 대간들이 이런 식이면 어찌 권세를 잡은 자들의 위세를 견제할 수 있으며, 주상전하가 백관을 편하게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김맹성은 군주를 가까이 모시면서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승지들도나무랐다.
“주상을 가까이 보필하는 승지들도 어찌 책임을 면할 수가 있겠는가. 김주가 대신들에게 뇌물로 준 물건을 몰수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원망이 주상께 돌아가게 하지 않았는가. 곧은 승지가 주상의 옆에 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