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구대신의 부패가 악취를 내다 (9)

신분의 귀천으로 인재를 판단한다는 것은 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by 두류산

9장


유자광은 임금의 따뜻한 말에 감격하여 아뢰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미천한 몸으로 국왕의 인정과 은혜를 입었으니, 죽어서라도 갚는 일만 남았습니다.”

“경은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을 토벌할 때 종군하였고, 병조좌랑과 병조참의의 벼슬을 하였소. 익대공신으로 품계가 정승이 되었으니 무슨 직책이 적합할지......”

“신의 처음 벼슬은 건춘문 문지기였으나, 세조대왕의 은혜를 입어 병조의 당상까지 되었습니다. 도성의 문지기라도 다시 맡겨주시면 죽어서라도 성상의 은혜로 여기겠습니다.”

임금은 유자광의 말에 흡족하였다. 성종은 곧바로 승정원을 통해 명하였다.

“무령군을 도총관에 임명하라!”

도총관은 중앙군인 오위를 총괄하는 최고 군령 기관인 오위도총부의 수장으로 수도와 궁궐의 방어를 책임지는 직책이었다. 도총관은 대개 왕의 최측근인 종친이나 정 2품 이상의 대신들 두세 명이 복수로 임명되어 교대로 궁궐에서 숙직을 하며, 왕의 친위 군사인 금군(禁軍)을 관장하였다.


유자광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의 주상에게 처음으로 받은 직책이자, 병조참의 이후 처음으로 일을 맡은 벼슬이었다. 더구나 도총관은 무인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벼슬이 아닌가.


사헌부 관리들은 유자광의 도총관 임명에 동요하였다.

“유자광은 대간들 때문에 조정의 기강이 바로 서지 못했다고 우리를 대놓고 비난했으며, 우리 대간들 중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고 말한 사람이 아닙니까?”

유자광이 무슨 말을 하였든 간에, 그는 노비의 아들입니다. 얼자이기 때문에 비록 품계가 높아도 주요 관직과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근시(近侍)의 직책에 지금까지 임명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2년 전에 최적(崔適)도 도총관 휘하의 위장(衛將)으로 임명되었다가, 서자라는 이유로 본부가 탄핵하여 파직을 시켰습니다. 유자광은 얼자로 감히 도총관에 임명되었으니 최적보다도 더 심각한 일입니다.”


형조판서로 승진한 윤계겸에 이어 대사헌이 된 김영유가 대관들과 함께 임금에게 나아와 아뢰었다.

"문반(文班)은 의정부의 정승보다 큰 직책이 없고, 무반(武班)은 도총부보다 중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유자광을 도총관으로 삼았는데, 유자광은 첩의 아들입니다. 비록 국가에 공이 있다 하더라도 직책에 적합하지 않으니, 청컨대 도총관직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주소서.”

"세조 대왕께서 벼슬길을 허락하여 주셨고 벼슬은 이미 1품에 이르렀소. 지금 그를 쓰는 것이 무엇이 문제이겠소?”


임금이 동의를 구하며 좌우의 정승을 돌아보았다. 김질은 유자광이 올린 상소에 분한 마음이 있었던 터라 대사헌을 거들었다.

"유자광은 첩의 아들이니 다른 벼슬에 임용하는 것은 가(可)하지만, 대사헌의 말대로 도총관이나 의정부의 재상으로는 임명할 수 없습니다.”

"유자광을 도총관을 삼지 않는다면 무슨 직책을 맡기는 것이 좋겠소? 물리쳐 버리고 쓰지 않는 것은 선왕께서 벼슬길을 열어 주신 뜻을 어기는 것이오.”


대사헌이 다시 나섰다.

"세조께서 이시애의 난을 당하여 오직 재주에 따라 문무를 겸비한 유자광을 써서 병조를 맡기셨으나, 지금은 수성(守成)하는 때이니, 창업하고 중흥하는 시대와는 같지 않습니다.”

임금은 김영유의 말이 귀에 거슬렸으나 이미 육십이 넘어 고령임을 감안하여 부드럽게 말했다.

“수성하는 때이니 맡기면 안 된다고 하였소? 경은 근간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니 중국의 경우는 어떠하오?”

대사헌은 뜻밖의 질문에 당황했다.

“중국에서는 사람을 쓰는 데 출신을 따지지 않습니다.”


대사헌은 관복 자락에 소리 죽여 기침을 한 뒤에 이어서 아뢰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드시 신분을 따졌습니다. 유자광과 같은 얼자를 중요한 직책인 도총관으로 삼는다면, 이것은 신분에 걸맞게 벼슬을 내리는 도리를 조정에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유자광을 다른 벼슬에 임명하셔서 문란한 조짐을 막으소서.”

사헌부 장령이 대사헌을 거들었다.

“유자광은 재능이 많고, 공로 또한 크지만, 서얼로서 금군(禁軍)을 맡아 거느리고 주상전하를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는 것은 명분에 맞지 않습니다. 도총관은 반드시 명망이 높은 자를 택하여 임명해야 합니다.”


임금이 소리를 높여 물었다.

“그대가 말하는 명분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명분은 조정의 기강입니다. 신분의 상하를 구분하고 명분을 지키는 것은 반드시 조정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합니다. 유자광과 같은 자를 조정의 중요한 자리인 도총관에 임명하면, 이것은 명분을 조정에서 먼저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인구도 많고 인재가 넘치는 중국도 출신을 따지지 않는데, 인재도 적은 우리는 왜 출신을 허물로 삼는가? 더구나 유자광은 세조께서 그 재주를 알아보고 병조의 일을 맡겼고, 예종 때에도 큰 공이 있어서 지위가 1품에 이르렀는데, 금군(禁軍)을 맡는 것이 어찌 문제가 되겠느냐?”


임금의 말에 대사헌이 다시 나섰다.

"유자광에게 도총관을 제수하면, 훗날 서얼로서 비록 유자광에게 미치지 못해도 유자광과 같은 직임을 바라는 자가 있을까 염려됩니다. 그리고 법에 적서(嫡庶)의 분별을 엄히 하였으니, 이것을 흔들리게 할 수도 없습니다.”

"대사헌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겁내어, 국왕이 인재를 쓰는 것을 주저해야 한다는 말이오? 선왕께서 이미 허통을 하셨는데, 어째서 다시 거론하는 것이오?”

임금은 대관들의 청을 거절하고, 물러가게 했다.

"경들의 말은 옳지 않다. 신분의 귀천으로 인재를 판단한다는 것은 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대간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간원의 간관들도 임금에게 나아와, 유자광의 도총관 임명을 철회하기를 청하였다.

“예로부터 조정의 관직은 군주가 사사로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도총관의 자리는 주상전하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직책인데 얼자인 유자광이 이 직책을 차지했으니, 법을 무너뜨리고 기강을 문란하게 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임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간들의 말길을 터주었더니, 국왕이 결정한 인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지나치지 않은가.’

성종은 김종직이 임지로 가기 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대간의 언론은 곧 군주의 힘이지, 대간의 힘이 아닙니다. 대간이 군주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바로 선 나라임을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임금은 낯빛을 편하게 하고, 대간들에게 말했다.

“사람을 얻는 것이 가장 중한 일이다. 나라가 인재를 쓰는데 어찌 신분의 귀천만을 따지고 있겠는가.”


유자광은 대간들이 임금에게 도총관 임명을 철회하라고 계속해서 청하자, 세조 대왕이 병조정랑을 임명할 때 대간들의 집요한 반대가 생각났다. 유자광은 조정에서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새삼 느꼈다. 대간들의 반대 움직임에 화도 치밀고, 자신을 배려하여 도총관이라는 귀중한 자리에 임명한 임금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참기 힘들었다. 더구나 임금이 대간들의 말을 귀하게 여기므로 세조 대왕처럼 대간들의 집요한 반대를 계속해서 물리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자광은 임금의 부담을 덜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쓰린 마음을 품고 붓을 들었다.

"미천한 신(臣)이 주상전하의 은혜로 도총관에 임명되니 뭇사람의 비방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분수를 헤아리며 바라건대 내리신 명을 거두시어 대간의 말을 그치게 하소서. 신은 미천한 출신으로 고결한 조정에 논란이 되고 있으니 무슨 마음으로 편하게 자리를 보존하겠습니까? 주상전하의 밝으신 다스림에 누(累)가 될 뿐입니다. 보잘것없고 천한 신(臣) 때문에 조정이 편하지 않으므로, 묵묵히 있기가 송구스러워 감히 사직을 청합니다.”


유자광은 붓을 놓으며 탄식했다.

“사람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인가? 정녕 바꿀 수 없는 그런 것인가?”





(사진 출처)

https://kr.freepik.co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훈구대신의 부패가 악취를 내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