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의 싹이 움트다 (2)

사람들은 임원준을 대임(大任), 임사홍을 소임(小任)으로 부르며 비꼬았다

by 두류산

2장


임금의 명을 받고 재상들이 다시 빈청에 모였다. 좌승지 이극기가 승지들과 임금이 한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니, 정승들이 다시 의논하였다. 임사홍은 재상들에게 호소하였다.

“원자가 장성하여 어른이 된 뒤에 이러한 일을 듣는다면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정승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이 든 재상들은 어린 원자가 가여워서 눈물을 흘렸다.


재상들은 의견을 모아 어전에 나아갔다. 영의정 정창손이 정승들의 뜻을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들도 중궁을 폐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하의 뜻이 굳어졌기 때문에 감히 청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중궁이 비록 실덕(失德)했다 하나, 종묘나 사직에 관계된 것이 아니고 다만 투기에서 나온 것뿐입니다. 투기라는 것은 부인들이 가지는 보통의 정(情)이고, 하물며 원자가 있으니 하루아침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중궁이 폐위된다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려서 능히 세자를 보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청컨대 원자를 중하게 여겨 중궁을 폐하지 마소서.”


임사홍은 임금의 기색을 살피며 아뢰었다.

“재상들이 의논할 때 원자가 장성한 뒤에 이러한 일을 듣는다면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하면서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임사홍은 젖은 목소리로 아뢰었다.

"재상들도 의논이 이와 같으니, 원컨대 다시 생각하소서.”


영의정 정창손이 다시 나섰다.

"문종이 세자로 있을 때에 세자빈 김빈(金嬪)이 조그마한 과실이 있어서 세종께서 명하여 쫓아내게 하셨는데, 그 뒤에 후회하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일을 잘못 처리했다 하고 평생토록 말씀하셨다 합니다. 김씨는 세자빈에만 봉해졌을 뿐이고 원자도 없었는데, 세종대왕은 크게 후회하셨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원자가 있는데도, 중궁을 폐해야 하겠습니까?”

예조판서 허종이 나서서 아뢰었다.

"비록 독극물이 있었으나 해를 입은 자가 없었으니, 진실로 용서해 줄 만합니다. 만일 이 일이 중궁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면 마땅히 뭇 소인들만 베어 없애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경계하여야 합니다.”


임사홍이 흐르는 눈물을 관복의 소매 깃으로 훔치며 말했다.

"무슨 일이나 마땅히 멀리 생각해야 하는 것이니, 오늘 잘못 판단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입시한 정승과 대신들도 모두 눈물을 글썽이며 청했다.

"중궁의 춘추가 아직 젊습니다. 원컨대, 다시 생각하소서!”

성종은 눈을 감은 채 듣고 있다가 드디어 결심하고 말했다.

"경들의 뜻을 알았다. 대왕대비께 다시 의논드리겠다.”

임금이 일어나서 정희 대비전으로 향하자, 신하들은 빈청에 내려가 결과를 기다렸다.


성종은 대왕대비전에서 나와, 환관에게 자신의 말을 신하들에게 전하게 했다. 대전 환관 안중경은 빈청에 나와 임금의 말을 전했다.

"경들이 원하는 대로 과인의 뜻을 정했다. 대비께도 말씀드렸다. 그러니 동요하지 말지어다.”

모든 신하들이 임금의 말을 전해 듣고 안도하며 대왕대비 전을 향해 감사의 절을 올렸다. 영의정 정창손은 승지들을 돌아보며 치하했다.

“승지들이 큰일을 해주었소. 종묘사직의 불행을 임 승지가 막은 셈이오.”


성종은 중전 윤씨에게 비상과 굿하는 책을 전한 궁녀 삼월이를 사형에 처하고, 중전의 어머니 신씨의 작위를 빼앗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였다.


임사홍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왕후가 폐위되기 직전에 자신이 주도한 마지막 간청으로 임금의 마음을 되돌린 것이었다. 이것은 자신이 얼마나 임금의 신임을 받고 있는지를 모든 조정의 신하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또한 향후 원자가 임금이 되면 어머니를 지켜준 신하를 당연히 특별히 여기지 않겠는가.


더구나 임사홍은 임금과 사돈이 되었다. 아들 광재를 예종의 딸 정숙 공주와 혼인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예종의 대통을 이어받기 위해 양자로 들어갔으니 정숙 공주와는 남매인 셈이었다. 성종은 임사홍과 좌참찬 임원준을 내전으로 불러 술과 음식을 내리며 특별히 공주를 부탁했다.


예종의 비인 인혜 대비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공주를 가엾게 여겨 임사홍의 아내이며 공주의 시어머니인 이씨를 자주 궁궐로 불러 공주를 부탁하였다. 이씨가 대비전에 들어가면 공주의 할머니인 정희대비와 공주의 큰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따로 불러 공주를 부탁하며 귀한 선물을 내려 주었다. 임사홍은 공주를 며느리로 맞아 임금뿐만 아니라 대비전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니,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임원준은 의정부 대신으로, 임사홍은 승지로 임금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데다, 왕실과 혼인을 통해 권세를 더하니, 두 사람의 집에는 줄을 대려는 사람으로 붐볐다. 사람들은 임사홍 부자를 거론할 때, 임원준을 대임(大任), 임사홍을 소임(小任)으로 부르며 그들의 권세를 비꼬았다.


임원준 부자가 아들과 공주를 위한 집을 건축하는 중에 사간원에 제보가 들어왔다. 간관들이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였다.

“지금 공주의 집을 짓고 있는 향교동 터는 선왕께서 별궁을 짓고자 하시다가 이루지 못한 땅이라고 합니다. 선왕께서 눈여겨보신 곳으로 왕실에서 그 터를 사용할 날이 있을 것이니, 신하로서 차마 집을 짓고 살 수 없는 땅입니다.”

“그렇다면, 주상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임원준 부자에게 땅을 내리셨을 것이오. 풍수학 관원들도 앞으로 왕실이 쓸 수 있는 땅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임원준 부자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모르는 체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풍수학 제조 서거정도 모르는 체하여 감히 이 땅에 공주의 집을 짓도록 하고 주상에게 땅을 내려주도록 아뢰었으니, 임원준 부자의 은밀한 청탁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사간원 간관들은 대사간 이세좌에게 공주의 집터에 대해 보고하였다.

“선왕의 뜻을 어기고, 왕실이 쓸 수 있는 땅을 모른 체한 것은 반역에 버금가는 잘못입니다.”

“모른 체 넘어가 달라고 했을 것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지 않은가.”

사간원 간관들이 잇따라 말했다.

“확증이 없다고 해서 어찌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간관들은 마땅히 아는 것을 말해야 하고, 주상께서는 채택할 따름입니다.”

“주상께서 의심스럽다고 판단되면 사헌부나 의금부에 명해, 관련자를 조사해서 청탁사실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세좌가 간관들에게 제안을 하였다.

"이번 건을 아예 사헌부에 넘겨서, 사헌부가 조사한 연후에 아뢰게 하면 어떻겠는가?”

사간원 관리들을 대사간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다.

“대사헌이 임사홍 부자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압니다. 사헌부가 제대로 조사하여 아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세좌와 간관들은 논의된 내용으로 임금에게 임원준 부자를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다. 임사홍은 사간원이 승정원에 접수한 상소를 읽어보니 손이 떨렸다.


임사홍은 사간원의 상소를 필사한 것을 임원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사간원이 몹쓸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들은 우리 부자가 풍수를 보는 관원과 결탁하여 주상을 속여서 장차 나라에서 쓸 귀한 땅을 얻어, 공주의 집을 짓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공주에 대해 특별히 주상께서 마음을 쓰시기 때문에 과격한 말로 주상의 마음을 흔들고자 하는 것이다. 공주의 집터는 주상과 상의해서 결정하여 내려준 것이다. 이것을 사간원이 모르고 청탁이니 뭐니 하며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으니 가소로운 일이다.”


임사홍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광재가 임금의 부마가 된 이후 우리 부자에 향하는 세상의 시샘과 음해가 지나칩니다. 이 기회에 따끔하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간원이 없는 말을 지어내어 우리 부자에게 죄주기를 청했으니,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것이다.”


임원준은 붓을 들어 근거도 없이 억측으로 자신의 부자를 공격한 사간원을 책망하는 상소를 올렸다.

“지금 사간원이 신에게 죄주기를 청하는데,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사간원을 옳게 여기신다면 신의 부자를 내치어 그 죄를 징계하시고, 신의 말을 옳게 여기신다면 간관에 물으시어 그 사실을 밝혀 주소서.”


도승지 현석규는 접수된 임원준의 상소를 읽어보고, 승지들 앞에서 상소를 흔들며 비난했다.

“좌참찬의 상소는 언로(言路)를 해치는 글이다. 간관이 대신을 비판했다고 국문을 하라고 하면 누가 감히 권세 있는 대신의 일을 문제 삼을 수 있겠는가?”

승지들이 모두 임사홍은 바라보자, 임사홍은 얼굴을 붉히며 잠자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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