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가 부족한 제보로 대신을 탄핵했다가 망신을 당한 사간원에게 사역원 제조 서거정의 비리에 관한 정보가 입수되었다. 서거정은 대제학을 겸한 우찬성으로 풍수학과 사역원(司譯院) 제조로 두 기관도 함께 관장하고 있었다. 사역원은 외교에 필요한 통역과 번역을 맡아보는 통사(通事, 역관)를 양성하기 위해 중국어, 몽골어, 여진어, 왜어 등 외국어를 교육하는 교육 기관이었다.
“중국에서 원하는 물건을 사사로이 사기 위해, 중국 사신을 따라가는 역관에게 베를 주어 사신 행차의 짐을 가중하게 하다니, 공과 사를 무시하는 이런 사람이 어떻게 사역원을 책임질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사간원의 간관이 대사간을 거들었다.
"서거정은 대제학으로 지위가 우찬성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명예와 절의를 닦아서 청렴하고 조심하여 스스로를 지켜야 할 것인데, 나라의 법을 범하였으니 이미 대신의 체모를 잃은 것입니다.”
임금은 서거정의 행동에 마음이 상했다. 사간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서거정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었다.
‘그냥 대신도 아니고 유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대제학이 아닌가.’
임금은 의금부로 하여금 사간원의 말이 사실인지 서거정을 국문하라고 명하려고 했으나 마음을 돌려먹었다.
‘그는 공신인 아닌가. 옥에 가두고 추국하는 것은 공신인 대신을 예우하는 것이 아니다.’
임금은 서거정을 불러 직접 물었다.
"경이 역관에게 베를 주었다는 대간의 말은 정녕 사실인가? 의금부에 명하여 추국하려고 했으나, 경은 공신이고 대제학으로 선비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의금부 옥에 가두고 국문을 하는 것이 마음에 편하지 않아 경을 불렀다. 경은 바른대로 고하라.”
서거정은 머리를 조아리며 변명하였다.
"조카 서팽형이 베 5 필을 역관에게 주었다는데, 신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신이 집안의 가장(家長)으로서 어찌 감히 죄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은 서거정이 알지 못했다는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거정의 말을 믿고 싶었다.
"경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의금부는 즉시 서팽형을 국문하라.”
서거정이 임금에게 나아가 조카가 한 일이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하니 사간원은 거세게 반발하였다. 이세좌가 어전에 나와 아뢰었다.
“전하께서 친히 물으셨는데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조카인 서팽형에게 미루었으니, 어찌 신하된 도리이겠습니까? 청컨대 서거정을 옥에 가두고 국문하게 하소서.”
"대신이 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실로 신하의 도리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종묘사직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니 어찌 반드시 옥에 가두어 국문하겠는가? 더구나 듣기로 서거정이 역관에게 베를 준 것이 아니고 서팽형이 한 짓이니, 서팽형에게 물으면 진상을 알게 될 것이다.”
간관들이 잇따라 나서서 서거정의 처사를 성토하며 대사간을 거들었다.
"서거정이 비록 서팽형의 짓이라고 말하나, 서팽형이 서거정의 집 옆에 살고 있어 조석(朝夕)으로 출입하니, 청탁하는 것을 반드시 고하였을 것인데, 서거정이 어찌 알지 못했겠습니까?”
“한 집안의 일은 법에 따라 마땅히 가장(家長)을 책하여야 합니다. 하물며 서거정은 대신이며 사역원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죄를 범하였으니, 그 죄를 밝게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세좌가 다시 아뢰었다.
“이웃에 사는 조카가 어찌 서거정 모르게 일을 부탁하였겠습니까? 가령 서거정이 알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역관이 부탁을 받아들인 것은 반드시 사역원의 제조인 서거정 때문입니다. 결국 죄는 서거정에게 있으니 서거정도 의금부에 내려 추국하기를 청합니다.”
“서팽형을 국문하고 있으니 결과가 나온 뒤에 조처하겠다.”
성종은 의금부 지사에게 서팽형의 추국 사항을 보고하게 했다. 의금부 지사가 급히 어전에 들어와 그동안에 알아낸 것을 아뢰었다.
"서팽형이 처음에는 서거정이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가, 형문(刑問)을 가하자, 서거정의 처가 베를 서팽형에게 넌지시 건네주어서 부탁하였고, 이후에 서거정에게도 말하였다고 자복하였습니다.”
“서팽형이 그 죄를 모면하려고 말을 만든 것인지, 서거정이 실로 아는 것인지 철저히 조사하라.”
의금부가 서팽형을 국문한 결과, 결국 서거정이 법을 어긴 것이 드러났다. 의금부는 서거정의 처벌에 대해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우찬성 서거정은 중국의 사치스러운 물건을 사기 위하여 베를 은밀히 역관에게 주었으니, 죄가 장(杖) 90대에, 관직을 4 품계 좌천시키는 데 해당합니다.”
임금은 서거정이 공신임을 감안하여, 장(杖)은 면해주고 파직을 명했다.
대사간 이세좌는 서거정의 처벌에 대해 임금에게 이의를 제기하였다.
"서거정이 학문의 저울인 대제학과 또한 의정부의 대신으로서 나라의 선비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처지에 오히려 스스로 법을 범하였으니, 죄가 진실로 큽니다. 하물며 전하께서 친히 물으실 때 그 죄를 면하기를 꾀하여,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서거정이 법을 흔든 것뿐 아니라 군주를 속인 죄를 범한 것인데, 공신이라 할지라도 처벌이 너무나 가볍습니다. 장차 권세를 믿고 법을 무시하는 자가 전하가 어질게 법을 쓰는 것을 엿보아서 경계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성종은 대사간의 말에 마땅한 답을 주지 못했다. 서거정의 높은 학문을 귀하게 여기지만, 못내 그의 처신이 아쉬웠다.
서거정은 파직을 당하고, 반성을 하기보다는 이 사건을 드러나게 한 사간원과 대사간을 원망했다. 더구나 이세좌는 자신을 의금부 옥에 가두어 추국하기를 주장하다가, 파직이 되니 처벌이 약하다고 임금에게 아뢰지 않았는가. 서거정은 대사헌 김영유를 찾아가 하소연을 했다. 김영유는 서거정과 사마시(司馬試)에 같은 해 급제한 각별한 사이였다. 사마시는 소과(小科)라고도 하며 생원과 진사를 뽑는 시험이었다.
“이세좌는 대신을 공경하는 태도가 전혀 없어 실망스럽네. 명예를 잃고 파직까지 당한 공신을 유배라도 보내겠다는 것인지.....”
대사헌은 이세좌를 공격할 구실을 찾았다. 사헌부 감찰이 예전에 잘못을 알고도 모르는 체하고 그대로 넘겼던 사건을 꺼내었다.
“대사간 이세좌와 사간원 관원들이 지난번 의금부의 옥에서 풀려났을 때 궁궐 입구의 하마비(下馬碑)를 무시하고 그대로 말을 타고 궁궐에 들어갔습니다. 주상께서 급히 불러서 그랬었거니 하고 그냥 넘겼으나 이것을 지적하면 그들 모두를 한 그물에 잡듯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궁궐의 정문 앞에는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막론하고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비가 있었다. 내리는 지점도 품계에 따라 각기 다르게 표시했는데, 1품 이하는 궐문으로부터 10보, 3품 이하는 20보, 7품 이하는 30보 거리에서 말에서 내려야 했다.
대사헌은 임금에게 아뢰었다.
"대사간 이세좌와 사간원 관원들이 의금부로부터 부름을 받고 말에서 내리지 않고 궁궐에 들어온 죄는, 법에 의해 장(杖) 80대에, 관직을 3 품계 좌천시키는데 해당합니다.”
대사간 이세좌와 사간원의 관원들은 사헌부가 자신들을 탄핵했다는 소식에 혼비백산하여 임금에게 나와 아뢰었다.
"신들이 전일에 의금부로부터 왕명을 받고 나올 때, 의금부에서 빨리 궁궐로 가라고 재촉하므로 말을 타고 왔는데, 사헌부에서 탄핵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임금은 관리들이 본보기가 되어 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법을 어겼으니 법이 정한 대로 죄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좌천만 시키도록 하라.”
성종은 장(杖)을 80대를 때려야 한다는 사헌부의 의견은 너무 과하다고 여겼다.
사간원이 임원준과 서거정을 탄핵하다가 오히려 사헌부에게 탄핵을 받는 과정을 지켜본 사관은 사헌부를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사헌부와 사간원은 함께 간쟁을 맡은 곳인데, 사간원에서 임원준 부자를 국문하도록 청하였다가 임금의 뜻에 거슬려 옥에 갇히니, 사헌부에서 힘써 구제하지도 않더니, 도리어 작은 과실로 사간원을 탄핵하였다. 조정의 사람들은 '사간원에서 대신을 탄핵하면 사헌부에서 사간원을 탄핵하고, 사간원에서 대신을 거슬리면 사헌부는 대신에게 아부한다.’고 사헌부를 비웃었다.”
서거정은 이번 일로 후배들의 신망을 잃었다. 성종이 서거정의 문장과 학문을 아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죄를 용서하고 다시 관직을 제수했을 때, 사간원 정언 김맹성은 임금에게 극력 불가하다고 아뢰었다. 김종직의 제자 김맹성(金孟性)은 여러 번 과거에 실패하다가, 늦은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벼슬길에 오르자마자 높은 학문과 문장을 인정받아 청요직인 정 6품 사간원 정언(正言)으로 임명되었다.
김맹성이 임금에게 나아가 간했다.
“서거정은 대신으로서 법으로 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관에게 베를 주며 청탁하여 중국에서 물건을 구하려다가 그 일이 발각되었습니다. 전하께서 의금부에 내리지 않고 직접 불러서 물어보셨는데, 즉시 자백하지 아니하고 주상을 속였습니다. 그 죄는 실로 크나 단지 직책만을 파하셨으니, 성은이 이미 컸습니다. 이제 겨우 두어 달이 지나, 특명으로 다시 벼슬을 내리시니, 신은 서거정을 징계한 바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통촉하소서.”
임금의 신임을 받아 다시 관작을 얻은 서거정을 단독으로 탄핵한 일로 김맹성의 이름은 조정에 널리 알려졌다.
“과거에 급제한 지 1년도 안된 자가 정 6품 사간원 정언으로 발탁된 것도 대단한 일인데, 대간이 되자마자 종 1품 의정부 대신에게 뼈를 때리는 질책을 하다니 조정에 인물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