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의 싹이 움트다 (6)

임사홍은 도승지 현석규를 생각하면 가슴에 불길이 일었다

by 두류산

6장


첫 닭이 홰를 치고 우는 소리에 임사홍은 잠을 깨었다. 억지로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방 안을 서성였다. 임사홍은 요즘 들어 아침에 등청하는 일이 싫어졌다. 등청하자마자 열리는 도승지 현석규가 주관하는 승지들의 회의만 생각하면 입안이 까칠해져 아침 밥맛이 없었다. 아침마다 개최하는 승정원 회의에서 임금에게 보고할 내용을 도승지에게 알려주고, 도승지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고 지시를 받는 그 시간이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다.


승정원에 먼저 들어온 현석규는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사사건건 나무라고 심지어 무시하기까지 했다. 처음 승정원에 들어가자마자 현석규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인척임에도 냉정하게 대했다. 공주 며느리와 아들이 살 집을 지을 때 사간원이 억측으로 부친을 탄핵한 것이 판명되었으나 현석규는 대간들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간관들을 옥에 가두게 했다고 자신의 부자를 비판하였다. 더구나 중궁이 위기를 당했을 때 승지들을 설득해서 폐비가 되는 것을 막았는데, 현석규는 미래의 임금에게 아부하였다고 대놓고 멸시하였다.


임사홍은 왕실 제일의 어른인 효령대군의 아들인 보성군의 사위이면서 공주의 시아버지이고, 대간 시절에 강직함을 보여주어 왕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도승지 현석규도 임사홍과 마찬가지로 효령대군의 아들인 서원군의 사위이고 도승지로서 임금의 최고 가까운 신하였다. 임금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신하가 되고 싶었던 임사홍에게 현석규는 임금의 신임과 승진을 가로막는 벽이었다. 임사홍은 언제부터인가 현석규가 앞에 있으면 몸이 경직되고, 속이 불편했다. 매일 아침 승정원에 등청하는 길도 상관인 현석규를 생각하면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었다.


1477년 성종 8년 7월, 임금은 의금부로부터 기이한 사건을 보고받았다. 전 칠원 현감 김주가 중매를 통해 과부와 혼인을 하였는데, 과부의 오빠가 김주를 누이의 강간범으로 고발하였고, 김주는 곧바로 의금부에 이들을 무고죄로 고발한 사건이었다. 임금은 김주를 기억하였다.

“김주라면 1년 전 뇌물사건으로 세상을 어지럽힌 그 자가 아닌가?”

“그렇사옵니다. 김주는 뇌물죄로 재산을 몰수당해 빈털터리가 되었다가 죽은 남편의 유산을 넉넉히 물려받은 과부 조씨와 혼인을 하였는데, 조씨의 오빠 조식은 매부인 송호와 함께 누이의 재산을 빼앗고 김주를 누이의 강간범으로 고발했습니다. 강간범은 사형의 죄이기에, 김주가 곧바로 의금부에 이들을 무고죄로 고발한 것입니다.”

무고죄는 상대방이 사형 죄에 해당하면 무고한 자가 사형의 처벌을 받는 중죄였다.


임금이 물었다.

“누구에게 혐의가 있어 보이느냐?”

“과부 조씨의 재산을 빼앗은 오빠인 조식과 처남을 도운 송호가 의심스럽습니다. 두 사람에 대해 형문(刑問, 매를 때리며 죄를 심문)하기를 청합니다.”

임금은 의금부의 청을 허락하였다.


이 사건은 쌍방 고발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김주도 한명회의 뒷배가 있었으나 조식과 함께 고발한 송호도 조정 실세의 친척이었다. 송호는 죄를 면하고자 모든 인맥을 동원하였다. 자형인 좌부승지 한한(韓僩)에게 부탁을 하고, 매부인 노공유의 아들을 통해 임사홍에게도 당부하였다. 노공유의 아들은 임사홍의 사위였다. 아버지 송익손(宋益孫)도 아들을 구제하고자 도승지 현석규의 집을 찾았다. 송익손은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황보인, 김종서 등 원로대신을 제거하는 계유정난에 가담하여 공신이 되었다.


송익손은 자기로 만든 술 주전자를 현석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김주는 실로 강간한 것이니 내 아들이 무고한 것이 아니오. 김주의 범죄를 화간(和姦)으로 논하는 것은 부당하오. 이 사실을 주상께 말해주시오.”

“의금부에서 조사하고 있으니 곧 실체가 밝혀질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정도 모르면서 주상께 함부로 아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저한테 선물로 주신다는 이 물건을 도로 가지고 그만 돌아가시지요.”

찬바람이 도는 현석규의 반응에 송익손은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으며 집을 나왔다.


송익손이 현석규를 찾아간 일이 실패하자 승정원에서 한한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처남을 구제하기 위해 임사홍과 상의하였다.

“처남이 옥에 갇힌 지 며칠이 지났는데, 승지들이 주상께 잘 말해주면 의금부 옥에서 바로 풀려날 수 있을 것이오.”

“도승지는 모르게 해야 할 것이오. 송호의 부친이 도승지에게 주상께 말해달라고 청탁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퇴짜를 맞았으니, 도승지가 알면 될 일도 산통이 깨질 것이오.”


한한은 임사홍의 말대로 도승지 현석규를 제외하고 모든 승지들에게 처남이 억울한 상황에 처했으니 임금에게 잘 말해주기를 당부했다. 누군가가 앞장서야 할 일이었다. 한한과 임사홍은 새로 승정원에 들어온 동부승지 홍귀달에게 부탁했다.

“도승지가 없을 때, 틈을 타서 주상께 말해주시오.”


현석규가 임금에게 보고를 드리고 어전에서 먼저 물러나자, 임사홍은 홍귀달에게 눈짓을 하였다. 홍귀달이 나서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의금부에서 조식과 송호를 형문(刑問)하기를 청하였습니다만, 신들이 생각하기에 과부가 된 누이 집에 김주가 유숙한다는 소문을 듣고, 김주를 강간범으로 고발한 것입니다. 비록 조식이 누이와 불화하였다 하더라도 과부집에 외간 남자가 묵고 있다는 소문이 나니 어찌 경악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무고하였다고 형문하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우부승지 손순효가 홍귀달을 거들었다.

“이것은 동부승지만의 뜻이 아니고, 실로 좌승지 이하 다섯 승지가 함께 의논하여 아뢰는 것입니다.”

임금은 승지들의 청을 들어주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성종은 도승지를 포함한 승지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어제 홍귀달이 아뢴 바는 그 사정을 알지 못하겠다.”

좌승지 이극기가 현석규의 눈치를 살피며 얼른 대답하였다.

"신들이 김주의 사건을 들어보건대, 강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조식은 김주가 중매를 통해 결혼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갑자기 김주가 그 집에 투숙하였다는 것만을 들었으니, 어찌 강간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를 고발하자 오히려 무고죄로 고발되었으니, 실로 부당하게 되었습니다.”


현석규는 승지들이 당황해하는 태도에, 자신이 없는 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강 짐작을 하였다.

현석규는 울컥 화가 치밀어 소매를 걷어 올리고 눈을 부라리며 홍귀달을 욕하였다.

“홍귀달! 순서를 뛰어넘어 전하께 아뢰다니 이것은 어디에서 배운 것인가?”

현석규는 홍귀달과 승지들을 분노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도승지는 육방(六房)의 일을 총괄하여 다스리는데, 도승지를 제외하고 다른 승지가 순서를 뛰어넘어서 말을 하니, 이것은 심히 옳지 못합니다. 김주는 중매한 예(禮)가 있고 날을 정한 기약도 있으니, 이것이 어찌 강간이겠습니까? 송호는 좌부승지 한한의 처남입니다. 송호의 아비 송익손은 신(臣)을 찾아와, ‘김주는 실로 강간한 것이거늘, 어찌 화간(和姦)으로 논하는가? 이는 무고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신에게 주상께 전해달라고 청탁까지 하였으나 단호히 그 청을 거절하였습니다.”


현석규는 씩씩거리며 승지들을 눈빛으로 나무라고, 임금에게 말했다.

“이제 승지가 순서를 뛰어 넘어서 전하께 아뢰는 것은 신이 동료 승지들의 신망을 얻지 못한 까닭이오니, 청컨대 신을 사임하게 하소서.”

성종은 흥분하여 사직까지 거론하는 현석규를 위로했다.

“만약에 경이 아니었다면 송익손의 잘못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었겠는가? 홍귀달이 조식과 송호의 형문(刑問)을 허락한 것에 대해 잘못이라고 아뢴 것은 그릇된 일이다. 그러나 도승지는 이 일을 마음에 두지 말라.”

임금의 말에 고개를 숙인 임사홍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성종은 사헌부에 명하여 송익손도 국문하게 했다.

"송익손이 그 아들 송호의 일을 가지고 도승지에게 청탁하였으니, 그를 추국하라."

현석규는 어전에서 물러나오자마자, 눈을 부릅뜨고 홍귀달과 승지 다섯 명을 한꺼번에 나무랐다.

“순서를 뛰어넘어 주상에게 아뢰는 것은 어디서 배운 법도인가? 지금 승정원의 기풍은 예전에는 볼 수 없는 일이오!”

도승지의 격한 꾸중에 홍귀달과 승지들은 모두 얼굴이 붉어졌다. 임사홍은 동료 승지들에게 아전을 나무라듯 하는 현석규의 태도에 어금니를 물었다.


이번 일은 이것으로 마무리된 듯이 보였다. 하지만 며칠 뒤인 성종 8년 7월 12일, 이세좌의 후임으로 임명된 신임 대사간 손비장이 경연에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근일에 동부승지 홍귀달이 순서를 뛰어넘어 아뢰었고, 한한은 송호의 자형입니다. 한 집안의 일이니 어찌 사정을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청컨대 아뢴 승지들을 모두 국문하게 하소서.”

임금과 승지들은 자신들만 아는 사실을 대간이 알고 탄핵하니 당황하였다.


승지 한한이 얼른 나서서 아뢰었다.

"송호는 신의 처남이오나, 신은 내막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였습니다. 신이 비록 청하였더라도 여러 승지들이 어찌 신의 말을 듣겠습니까?”


사헌부 장령이 대사간의 말을 거들며 홍귀달을 탄핵하였다.

"홍귀달은 현석규가 어전에서 물러나오는 것을 엿보고 아뢰었으니, 옳은 말을 아뢰었어도 용납할 수 없는데, 하물며 옳지 않은 말을 하였으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손비장은 승지들을 돌아보며 아뢰었다.

"승정원은 한림학사(翰林學士)라는 아름다운 명칭으로 불리거늘, 동료끼리 마음을 합하지 못하니 보기에 민망합니다.”


성종은 대간들의 지적을 옳게 여겼다.

"조식 등을 형문(刑問)하여 실정을 알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늘, 좌부승지 한한, 우부승지 손순효, 동부승지 홍귀달은 조식 등을 도우려고 도승지가 없을 때 제멋대로 아뢰었으니, 사헌부는 국문하여 아뢰라.”


대사헌은 승지들을 국문한 결과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본부(本府)에서 명을 받아 승지들을 국문하였더니, 마땅히 두려워하며 죄를 자복해야 할 것이로되 오히려 스스로 옳다 하며 불손하였습니다. 한한은 홍귀달이 처남의 일을 아뢸 때 말을 못 하게 중지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그가 미리 청탁한 것으로 의심이 됩니다. 이들을 의금부에 내려 추국하게 하소서.”

"조식이 김주를 무고한 것은 그를 내치고 누이의 재산을 차지하려고 한 것이다. 과인이 들으니, 조식 등은 일찍이 그 누이를 때리고 다리를 몇 번 분질렀다 하니, 마땅히 샅샅이 문초하여 그 죄를 밝히게 하는 것이 옳다.”


대사헌이 아뢰었다.

“이극기와 임사홍도 또한 의논하는데 참여하고 한한의 청탁을 다 같이 들어주었음이 명백하니, 청컨대 아울러 추국하게 하소서.”

"홍귀달과 손순효가 말하였으나 이극기와 임사홍은 이 일을 아뢰지 않았다.”


의금부에서 승지들을 국문한 결과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동부승지 홍귀달, 우부승지 손순효가 국문을 당할 때 불손을 저지른 죄는 법에 의하면 장(杖) 1백 대에 삭탈관직입니다. 시행하소서.”

"홍귀달은 단지 삭탈관직만 하고, 손순효도 좌천시켜 4학의 교수로 근무하게 하라.”

임금은 이만한 일로 승지들에게 매를 때리는 것은 과한 처벌이라고 생각했다.


임사홍은 임금의 배려로 국문을 당하는 것은 면했으나, 생각할수록 현석규에게 분노했다. 임사홍은 현석규를 생각하면 가슴에 불길이 일었다.

‘홀로 곧은 충신이고 다섯 승지들을 모두 정직하지 않은 신하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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