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김맹성을 다시 어전에 입시하라고 명했다. 임금은 승지들과 있었던 일이 바로 대간에게 흘러들어 가는 버릇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맹성은 임금이 자신을 왜 다시 불렀을지 짐작하고 박효원에게 말의 출처를 물었다. 김맹성이 어전에 입시하니, 임금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간이 말하는 것이 어찌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몰래 대간을 사주한 것은 잘못이니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서 들었는가?”
김맹성은 묻는 말에 곧바로 답하지 않고 아뢰었다.
"대간이 논(論)한 바를 가지고 만약 말을 근원을 듣는다면, 신은 언로(言路)가 이로부터 막힐까 두렵습니다. 더구나 승지들에게 물어본 바, 현석규가 말한 것은 상소와 일치합니다.”
“대간의 말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거듭 묻는다. 몰래 사주한 자는 옳지 못하니, 출처가 어딘지 말하라.”
김맹성은 엄하게 재촉하여 묻는 임금의 말에 들은 대로 답했다.
"사간 박효원의 집은 예문관 부제학 노공필의 집과 이웃하였으므로, 박효원이 우연히 노공필의 집에 가서 들었다고 합니다.”
성종은 김맹성의 말에 실마리를 잡고,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공필과 홍귀달은 한 때 함께 경연관이었다. 또한 노공필은 임사홍의 어릴 때부터 벗이고 인척 간이니, 노공필과 홍귀달, 그리고 임사홍을 대질하여 물어보게 하면 누가 대간을 사주를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임사홍은 임금이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자, 얼른 나서서 아뢰었다.
"노공필은 말씀대로 신(臣)의 오래된 벗입니다. 이야기하던 끝에 우연히 그에게 말하였을 뿐, 대간을 사주하려거나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임금은 임사홍이 대간이 알게 된 출처가 자신이라고 곧바로 실토하니 혼란스러웠다. 직접 대간에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우연히 노공필을 통해 대간이 알게 되었다고 하니 임사홍이 의도적으로 누설한 것은 아닌 듯하였다.
김맹성은 다시 한번 임금에게 결연히 말했다.
"현석규가 노하여 소매를 걷어 올렸다면, 너라고 일컫고 욕하였음을 알만 합니다. 신들이 어찌 몰래 사주한 것을 듣고서 감히 아뢰겠습니까?”
현석규는 급히 나서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대간이 신을 탄핵함은 바로 공론(公論)입니다. 지난번에 이세좌와 간관이 구속당했을 때, 신은 대간이 말했다고 죄를 물을 수 없다고 간절히 청하여 간관들이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승지는 비록 실수하는 것이 없어도 오히려 능하지 못함이 있을까 두려워하거늘, 하물며 조정의 의논이 이와 같은 데 어찌 모른 체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본래 재주도 없으니 청컨대 사직하게 하소서.”
"사직할 만한 일이 없거늘, 어찌 사직한단 말인가?”
임사홍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사직을 청하는 현석규를 보니, 속이 메스꺼웠다.
‘현석규는 음험하지 않은가. 사직을 청하여 임금의 신임을 확인하고, 또한 대사간과 대간이 벌을 받지 않은 것은 자신의 공이라고 내세우며 간관에게 자신의 힘을 알리고 있지 않은가.’
현석규는 임사홍을 한 번 노려본 후 임금에게 아뢰었다.
"송익손의 사위가 노공유입니다. 노공유의 아들은 임사홍의 사위이니, 임사홍은 반드시 이들을 위하여 노공유의 형인 노공필에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임사홍은 현석규가 임금에게 자신을 지목하며 아뢰자, 낯빛이 크게 변했다. 임사홍은 자신을 변명하면서 현석규의 잘못도 드러내었다.
"그날 도승지가 성난 목소리로 홍귀달을 나무라서, 모두 마음이 편하지 못하였던 까닭으로, 노공필과 이야기하던 끝에 우연히 말한 것입니다. 신이 어찌 몰래 대간을 사주하였겠습니까?”
현석규는 임사홍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눈에 불길이 일었다. 현석규는 임사홍을 힐난하며 말했다.
"지금 공(公)이 한 말처럼 사간원의 상소 내용이 공이 노공필에게 한 말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면 왜 애초에 전하께서 상소를 읽으시고 물으실 때에 바른대로 아뢰지 않고, 이제야 아뢰는가?”
임사홍이 변명하고 현석규가 다시 반박하자, 성종은 곤룡포 자락에서 소리가 나도록 크게 손을 저어 두 사람을 그치게 하였다.
"모두 그만두어라!”
현석규는 이 모든 일이 임사홍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분하게 여겼다. 어전에서 물러나와 임사홍에게 거세게 따져 물으니, 임사홍도 물러서지 않고 얼굴을 붉히며 대꾸하였다. 두 사람은 승정원 앞에 세워둔 임금의 수레 옆에서 옥신각신하며 다투었다. 좌승지 이극기가 보다 못해 다투는 둘 사이에 들어가 겨우 언쟁을 중지시켰다.
임사홍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찌 현석규는 자신의 무례한 행동보다는 대간의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가 더 중하단 말인가.’
임사홍은 임금 앞에서 자신을 비난하고 질책한 것도 모자라, 승정원 앞에서 대놓고 자신을 나무라던 현석규를 생각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현석규! 네가 말했듯이 대간의 말은 공론이다. 조정의 공론이 도승지 직책에서 너를 끌어내리게 만들 것이다!”
임사홍은 붓을 들어 서찰을 쓰기 시작하였다. 박효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오늘 현석규가 주상이 보는 앞에서, 승정원에 돌아오는 길에서, 심지어 승정원 앞에서도 씩씩거리며 나에게 화를 내었다네. 아무리 도승지라 해도, 같은 승지에게 이토록 모질게 대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주상께서도 승지를 대하실 때 이름을 부르지 않으시는데, 홍 승지의 이름을 부른 것은 잘못이라고 꾸짖었네. 그랬더니 현석규도 화가 나서 그랬다고 머리를 숙였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분하고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억제하여야 한다고 했으니 현석규는 소인임에 틀림없네.”
임사홍의 말은 공자가 말한 군자가 갖고 있어야 할 아홉 가지 생각 중 분사난(忿思難), 즉 비록 화가 나더라도 뒤에 닥칠 어려움을 생각하여 가벼이 화를 내지 말라고 한 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은 시사명(視思明, 볼 때에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고), 청사총(聽思聰, 말을 들을 때에는 총명할 것을 생각하고), 색사온(色思溫, 얼굴빛은 부드럽게 할 것을 생각하고), 모사공(貌思恭, 남을 대할 때는 공손히 할 것을 생각하고), 언사충(言思忠, 말할 때에는 정성껏 할 것을 생각하고), 사사경(事思敬, 일할 때에는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의사문(疑思問, 의심날 때에는 질문할 것을 생각하고), 분사난(忿思難), 그리고 견득사의(見得思義, 재물을 얻을 때에는 의리에 합당한가를 생각할 것)이다.
임사홍은 편지를 다 쓰자마자, 곧바로 사람을 시켜 사간원의 박효원에게 보냈다. 박효원이 서신을 펼쳐보니, 임사홍은 도승지 현석규가 덕으로서 위엄을 갖추지 못하고 아랫사람들과 분쟁을 일으킨 소인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김맹성이 어전에 들렀을 때 그를 욕보였다고 말하며, 사간원이 현석규를 공격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박효원은 대사간과 동료들에게 임사홍이 보내준 서신을 보여주며 말했다.
“승지 한 사람이 나에게 서신을 보내, 도승지가 동료를 능멸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간에게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여 김맹성이 욕을 당하고 갔다고 했으니 현석규를 탄핵하여 다스리지 아니할 수 없소.”
김맹성은 정색하며 반박했다.
“오늘 어전에서 욕을 봤다고 생각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승지가 대간에게 편지로 통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박효원은 김맹성의 반발에 우물쭈물하였다. 김맹성이 따져 물었다.
“대간에게 서찰을 보낸 승지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박효원은 얼버무리며 대답을 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그는 대사간을 따로 만나 현석규 탄핵을 의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