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의 싹이 움트다 (9)

현석규는 도승지 자격이 없으니, 양사가 힘을 합해 자리에서 끌어내립시다

by 두류산

9장


대사간 손비장은 도승지 탄핵의 불씨를 다시 살렸다. 손비장은 경연에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어제 본원(本院)에서 현석규가 홍귀달의 이름을 부르고 너라고 일컬은 것 등의 일을 아뢰었더니, 무죄한 자를 모함하였다고 하시니 황공하기 그지없습니다. 신들은 직임이 언관(言官)에 있으면서 어찌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까? 신들은 마땅히 아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아니 되고, 전하께서는 채택할 따름입니다.”


사헌부 장령이 대사간을 거들었다.

"현석규가 평소에 도리를 갖추어 아랫사람을 거느렸다면 어찌 이와 같은 일이 있었겠습니까? 전하께서 말의 근원을 물으시면 장차 연루됨을 두려워할 것인데, 누가 대간에게 기꺼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정을 따지지도 않고 대간의 말만 옳다고 하여 따라야만 하겠는가? 어찌 대간의 말이 모두 올바른 데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대사간 손비장이 다시 나섰다.

"신들이 어찌 대간의 말을 모두 따르라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대간들은 말을 하고, 전하께서는 그 말을 채택하실지 판단하시되, 말의 출처는 묻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성종은 대간들의 말을 받아들였다.

"지금부터는 말의 근원을 묻지 않겠다.”

임금은 이 정도로 일이 마무리되기를 기대하였다.


사간원이 되살리려는 불씨가 성종의 단호한 태도로 꺼져버려, 이번 일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임사홍은 참을 수가 없었다.

‘현석규의 무례함이 이렇게 덮어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우부승지 손순효는 골똘한 생각에 빠져있는 임사홍을 보고 말했다.

“이제 도승지와 화해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임사홍이 상념에서 깨어나 급히 변명하였다.

"도승지는 나와 인척관계의 정이 있으며 의리는 형제와 같소. 내가 노공필에게 말함으로써 오해를 받게 되었으니 그 점이 유감이오.”

손순효는 임사홍의 말에 두 사람의 오해가 곧 풀리고, 승정원이 다시 화목하게 되리라 기대했다.


임사홍은 사람을 보내 박효원을 빈청으로 불렀다. 임사홍은 박효원에게 말했다.

“현석규는 자신의 감정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소인의 모습을 보인 것이네.”

임사홍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소인과 함께 협력하여 일하기도 어렵고, 소인이 도승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더욱 참을 수가 없는 일이네.”

“현석규에 대한 주상의 신임은 매우 두텁네. 죄가 없는 도승지를 모함한다고 역정만 내시니 어찌하겠나?”


임사홍은 박효원이 현석규에 대한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드러내자, 손을 잡으며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사간원 단독으로는 현석규를 무너뜨리지 못했으니, 사헌부와 함께 나서는 것이 어떻겠나?”

박효원은 임사홍이 현석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으나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유생 시절부터 임사홍 부자의 지원을 받았고, 벼슬길에 오르고도 계속 도움을 받고 있지 않는가.’


김맹성과 사간원 간관들은 박효원이 빈청에서 임사홍을 만나는 것을 목격했다. 임사홍이 떠나자, 김맹성은 박효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까 보여준 서신을 쓴 사람이 임 승지가 맞습니까?”

박효원은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 못했다. 김맹성이 정중하게 말했다.

“승지와 대간이 내통한다고 의심을 받는 이때에 서로 만나는 것은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박효원은 궁색하게 변명하였다.

“노공필이 보기를 청하므로 나왔던 것이오. 그 자리에 임사홍도 있었소.”


임사홍이 빈청에서 나와 승정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궁궐의 뜰에서 부친을 만났다. 임원준은 얼굴이 벌게진 아들에게 마음에 둔 말을 해주었다.

“현석규가 도승지를 평생 할 수는 없다. 참고 기다리면 도승지 자리는 저절로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임사홍은 얼굴이 상기된 채 말했다.

“현석규를 무너뜨릴 이런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임원준은 아들이 지나치게 흥분해있음을 보고 마음이 쓰였다.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사람들은 주상의 신임을 두고 너와 현석규가 대결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현석규가 물러나면 아마 너도 함께 승정원을 떠나야 할 것이다.”

임사홍은 부친의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설사 승정원을 같이 떠나게 되더라도 무례한 자를 윗사람으로 받들 수는 없습니다.”

임원준은 현석규에 대한 분노에 차있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지었다.


박효원은 사헌부 지평 김제신의 집을 찾았다. 김제신은 세조가 김종직과 젊은 문신들을 잡학에 배정했을 때 풍수학에 배정받았다. 그때 공부한 지식으로 박효원의 할아버지 묏자리를 잡아주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여 두 사람은 친하게 지냈다.


김제신이 반갑게 맞자, 박효원은 현석규가 동료 승지에게 함부로 대했다고 비난하며 말했다.

“현석규는 도승지 자격이 없네. 예의와 겸양이 없어 조정의 기풍을 흐리는 그를 양사가 힘을 합해 도승지 자리에서 끌어내리세.”

"주상이 현석규를 끔찍하게 총애하여 그를 탄핵하면 말의 출처부터 물으시는 것이 문제일세.”

“주상께서 현석규의 죄를 아시고도 감싸고도시니, 이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네.”


다음날 박효원은 사간원 동료들에게 임사홍과 현석규가 서로 싸운 일을 들먹이며 사헌부와 함께 문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맹성이 박효원의 의견을 반박했다.

“사정을 정확히 알아야 탄핵을 하더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곳에서는 보고 들은 바가 없는데, 오직 사간께서 임 승지의 말을 들은 것을 가지고 어찌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대사간도 김맹성의 말을 거들었다.

“이 말의 근거를 명백하게 아뢰지 않으며 박 사간이 오히려 허물을 질 수 있소.”


박효원은 대사간과 동료 간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두 사람이 서로 힐책한 일은 여러 승지도 함께 아는 일입니다. 어찌 대간으로서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대사간은 이 말을 듣고 의논을 결론지었다.

“현석규가 임사홍과 더불어 싸운 것이 사실이라면 두고 볼 수만 없는 일이오. 박 사간의 말대로 사헌부와 의논하여 문제로 삼읍시다.”


박효원은 사간원을 나와, 현석규를 탄핵하는 일을 김제신과 의논하기 위해 사헌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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