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규와 임사홍은 승정원 앞에 세워둔 임금의 수레 옆에서 서로 잘못을 꾸짖고 나무랐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옳지 못합니다. 청컨대 국문하소서."
사헌부의 지평 김제신도 박효원을 거들었다.
“조정에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온데, 현석규와 임사홍은 근신(近臣)의 처지에 있으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서로 다투니, 어찌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추국하여 죄를 물으소서.”
임금이 승지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서로 다툰 것은 무슨 일 때문이었는가?"
우부승지 손순효가 주춤거리며 말했다.
"신은 몸소 보지 못하였습니다만, 임사홍이 신에게 말하기를, 자신에게 도승지는 형제와 같은 정과 의리가 있는데, 노공필에게 말함으로써 오해를 받게 되었으니 참으로 유감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인이 생각하기에 도승지와 우승지는 서로 오해를 풀려고 했을 뿐이다.”
임금이 모든 것을 덮으려 하자, 박효원이 다시 나서서 현석규를 공격하였다.
"현석규는 예(禮)를 갖추어 동료를 대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이름을 불러 체통을 잃었으니 조정의 기풍을 떨어뜨렸습니다. 듣건대, 현석규가 아랫사람을 대할 때 거만하다고 하더니, 과연 사람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현석규는 도리어 대간들이 말을 만들어내서 분란이 일어났다고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스스로 반성하지 아니하고 먼저 사람을 의심함이 옳겠습니까?”
"그대들은 실체가 없는 말을 가지고 도승지를 탄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박효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현석규는 더워서 소매를 걷어 올렸고 또 입에서 침이 튀긴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현석규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억지로 꾸며서 하는 말입니다. 또 반성하고 처분을 기다려야 마땅한데 성상의 수레 곁에서 다투었으니, 그 죄가 더욱 큽니다.”
임금은 정승들을 돌아보며 의견을 물었다. 영사(領事) 심회가 나서서 대답했다.
"낮은 관직에 있더라도 반드시 화합한 뒤에야 일을 해나갈 수가 있거늘 승정원은 후설(喉舌)의 지위인데 이와 같으니, 신들도 이를 듣고 섭섭함이 있습니다.”
"승지들이 예전과 같지 못하여 아래에 있는 자가 위를 공경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승지 손순효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선비가 이 세상에 나와 열심히 책을 읽고 벼슬하여 소원이라면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것입니다. 신은 성은(聖恩)을 지나치게 입어, 승지가 되었습니다. 근래에 신들이 위로 성덕(聖德)에 누(累)를 끼치고 아래로 조정에 누를 끼쳐, 신은 사직을 청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승정원을 모두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주소서.”
심회도 손순효의 말을 거들었다.
"신의 뜻도 또한 승지를 모두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임금은 현석규도 임사홍도 잃고 싶지 않았다.
‘승지들이 순서를 뛰어넘어 도승지 몰래 아뢴 것을 나무랐을 뿐이다. 어찌 도승지에게 허물이 있다고 하겠는가.'
성종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죄가 있는 자는 마땅히 그만두어야 하나, 어찌 모조리 바꿀 수야 있겠는가? 다만 사헌부는 승지들을 추궁하여 죄의 실상을 조사하라.”
사헌부 지평 김제신이 나서서 말했다.
"대간들은 전하의 눈과 귀라는 소임을 맡았으므로 무릇 보고 들은 바는 숨기지 않고 말하였으나, 근자에 전하께서는 그 말의 근원을 물으시니 이후로는 신 들은 보고 들은 것을 감히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박효원이 김제신의 말에 한 발 더 나아갔다.
"지난번 말의 근원을 물으시니 신들은 송사(訟事)하는 자와 같았습니다. 전하께서 언관(言官)을 대하시기를 송사하는 자와 같이 하시니, 이것은 신들이 부족하기 때문이옵니다.”
성종은 박효원을 사납게 노려보고 말했다.
"앞으로는 말의 출처를 묻지 않겠다고 과인이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과인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거늘, 그대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어찌해서인가? 과인이 그대들을 대접함이 참으로 이와 같았던가?”
성종은 입을 꽉 다문 채로 말없이 앉아 있다가 자리에 일어나 경연장을 떠났다.
사헌부는 승지들이 심문에 제대로 응하지 않으므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도록 임금에게 청하였다. 임금은 사헌부에 물었다.
"무엇을 근거로 승지들을 의금부에 내려 추국하려고 하는가?”
사헌부 지평 김제신이 아뢰었다.
"서로 힐책한 정황이 현저하게 드러났는데도 승복하지 않습니다.”
임금은 정승들에게 사헌부의 의견에 대해 물었다. 정창손이 나서서 아뢰었다.
"승지는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이므로, 마땅히 예의로써 서로 대해야 하는데, 현석규와 임사홍 등이 서로 분을 내어 다투었으니 진실로 잘못입니다. 하지만 서로 꾸짖고 나무란 흔적은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 일로 인해 옥에 가두고 국문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성종은 이번에는 대간들에게 물었다.
"승지들이 말을 잘못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예(禮)가 없었다고까지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일은 내버려 두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사간 손비장이 아뢰었다.
"근신(近臣)들이 서로 힐책하였으니 그 잘못이 대단히 큽니다. 이는 조정의 기풍에 문제가 되는 것이니,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 꾸짖고 야단친 자취가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다. 모두 그만두고, 지금부터는 없는 죄를 무고하는 말을 하지 말라.”
대사간 손비장이 다시 나서서 아뢰었다.
"현석규는 전하가 아끼는 중신입니다. 신들이 비록 어리석더라도 조금은 의리를 압니다. 어찌 감히 없는 죄를 만들겠습니까? 현석규의 죄는 홍귀달보다도 지나치니, 결단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승지들을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여 실상을 밝혀주소서.”
"죄가 국가에 관계되지 않으니, 승지들을 의금부에 내려 옥에 가두고 심문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다만 대간과 함께 정승들이 승지들을 심문하도록 하라.”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정승들이 승지들을 심문하였다. 정승들의 심문에 현석규가 대답했다.
"제가 비록 용렬하지만, 너라고 일컬으며 욕을 하였겠습니까?”
임사홍은 정승들의 물음에 답하며, 현석규의 잘못을 드러내었다.
“도승지가 저보고 뜻이 있어서 노공필을 찾아가 말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노공필을 만났을 때 우연히 말한 것이지,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다만, 주상께서 승지를 대하실 때에도 이름을 부르지 않으시는데, 도승지가 귀달이라고 이름을 부른 것은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꺼리는 예법이 있었다. 다만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낮게 대우하여 이름을 부르곤 했다.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니 대개 존중하는 뜻으로 이름 대신 호(號)나 자(字)를 사용했다.
심문을 마치고 정승들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승지들의 말을 들어 보니, 비록 분을 품고 다툰 것은 아닐지라도 서로 비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손비장과 대간들이 이어서 아뢰었다.
"임사홍이 말하기를, 도승지가 실지로 홍 승지를 귀달이라고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급관리인 아전을 대할 때나 하는 일이니, 간원의 상소가 잘못이 아닙니다. 또한 두 사람은 진실로 서로 힐책한 것이니, 청컨대 사헌부에서 청한 대로 의금부에 내려 추국하게 하소서.”
임금은 정승과 대간들의 말을 모두 듣고 정승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승지들이 화합하여 협력하지 못하니, 임사홍과 한한, 손순효로 하여금 다른 직책으로 바꾸어서 함께 있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데, 어떻겠는가?”
정창손이 나서서 아뢰었다.
"이것은 작은 잘못에 불과한 데, 이것으로써 갑자기 세 사람을 바꾸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하지만 대간들이 말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므로, 임금은 명하여 임사홍과 한한, 손순효를 승지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성종은 현석규가 사헌부와 승정원에서 일한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현석규는 사헌부 대간으로 있으면서 강개한 진언을 많이 하였다. 훈구대신들의 부당한 행동을 과감히 탄핵하며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대간이었다. 동부승지로 발탁하자마자 도성과 지방의 옥에 갇힌 죄수들의 현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옥에 갇힌 백성들의 원통함을 풀어주기 위해 충청, 천라, 경상 지역에 어사를 파견하여 실정을 파악하고 바로 잡지 않았는가. 그리고 정치가 어려울 때마다 내 곁에서 무거운 마음을 위로하며 가볍게 해 주었다. 현석규는 내 곁에 오래 두어야 할 사람이다.’
현석규가 험상궂게 생겼고 행동이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생각이 깊고 일처리가 뛰어나 신임을 잃게 한 적이 없었다.
‘현석규는 일찍이 세종대왕께서도 알아본 인재였다.’
현석규는 열일곱 살 되던 해에 세종을 뵈었다. 세종이 효령대군의 정자인 희우정에 들르는 길에 외모가 기이하게 생긴 젊은 유생을 만났다. 세종이 그를 보니 곰보자국으로 다소 험상궂게 생겼으나 총명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세종이 불러 나이를 물으니 청년이 답하였다.
“열일곱 살입니다.”
경전과 역사에 대해 물으니 그 대답이 물 흐르듯 하였다. 세종이 감탄하며 물었다.
“장가를 들었는가?”
“아직 장가들지 못했습니다.”
세종대왕이 옆에 있는 효령대군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반드시 집안을 크게 일으킬 것입니다 비록 한미한 출신이지만 재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습니까? 형님께서 이 자를 받아들여 손녀사위로 삼으십시오.”
효령대군은 세종의 권유로 손녀인 서원군의 딸을 그에게 아내로 주어 장가들게 하였다. 성종은 현석규와 세종대왕의 귀한 인연이 담긴 이야기를 좋아하였다.
현석규는 임금이 대간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홀로 애쓰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고 민망했다. 현석규는 임금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대간들이 신에 대해 공격하는 것을 그치지 않으니, 뻔뻔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진실로 편안치 못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신을 내치셔서 대간들의 마음을 풀어주시옵소서.”
임금은 현석규를 위로하며 감쌌다.
"군주는 사람을 얻기가 어렵다. 옛말에 이르기를, 어진 이를 구하는 데는 수고하지만, 임용하고 나면 편안해진다고 하였다. 경이 형방승지가 되면서부터 옥에는 사형수가 없어 과인의 마음이 편안하였다. 사람이 곧으면 세상이 시기하게 마련이다. 경의 일은 과인이 잘 아는 바이니, 다시 사직을 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