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들도 더 이상 현석규를 공격할 수 없다. 조정의 대신들은 전하의 현석규 신임을 여러 차례 확인했으니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이다. 대간도 대신도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서 임금에게 말할 수 있는가?”
임사홍의 머리에 섬광처럼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임사홍은 평소 유자광을 따르며 친하게 지내는 형조 정랑 김언신을 앞세워 유자광의 집을 찾았다. 유자광은 무인처럼 강직함을 겸비한 김언신과 대간 시절에 한명회를 탄핵하여 기개를 높이 평가했던 임사홍을 반갑게 맞았다. 유자광은 임사홍에게 축하인사부터 했다.
“대사간 직임을 맡게 된 것을 축하하오. 앞으로 더 큰 활약이 기대되는 바이오.”
임사홍은 유자광이 권하는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유자광에게 물었다.
“대감은 현석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현석규에 대해 잘 모르오. 하지만 현석규의 이름이 조정을 들썩이고, 다만.....”
“다만, 무엇입니까?”
“내가 도총부에서 허종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현석규를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들었소.”
김언신이 유자광의 말을 재촉하였다.
“어떤 이야기였습니까?”
“허종의 숙부가 노비 송사를 다루는 일을 맡았을 때, 형방승지였던 현석규가 노비의 일로 여러 차례 압력을 가하여 감정이 상했다고 했소.”
술상이 들어오자 유자광은 두 사람에게 술을 권하였다. 임사홍은 유자광에게 술을 올리며 말했다.
“현석규는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언관(言官)이 자신의 일을 탄핵하면, 마땅히 반성을 하며 전하의 명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데, 간관이 말이 있으면 현석규도 말을 하고, 심지어 대간의 말을 가지고 어디서 들었는지를 따졌습니다. 이것은 현석규가 승정원 안에서만 승지들을 업신여겼을 뿐만 아니라, 간관이 말하기를 꺼리게 하려는 음험하고 간사한 짓입니다.”
임사홍은 현석규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상세히 말했다.
“현석규는 홍귀달이 자기와 의논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아뢴 것 때문에, 노여움이 극에 달해 팔뚝을 걷어붙이고 같은 계급에 있는 동료의 이름을 불러 하대하고 모욕하였습니다. 홍귀달이 순서를 어기고 아뢴 죄보다 현석규가 예(禮)를 지키지 못해 조정을 능욕한 죄가 더 크다고 봅니다.”
김언신도 임사홍을 거들었다.
“현석규도 스스로 말하기를, 노여움이 극에 달해 입에서 거품이 나왔고, 더위가 심해 소매를 걷어 올리고 홍귀달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현석규는 조정을 욕되게 한 죄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유자광은 김언신의 기개와 호방함을 좋게 보았는데, 김언신이 임사홍을 형제같이 대하고 지지하는 것을 보니 임사홍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임사홍은 김언신의 말을 보태었다.
“비록 승정원의 하관(下官)이라도 이름을 불러 욕해서는 안됩니다. 현석규가 동료를 업신여김은 일말의 예의와 겸양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유자광은 근심으로 묵묵히 잔을 비우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자가 성명(聖明)한 주상전하를 가까이에서 모신다니......”
임사홍이 유자광의 눈치를 보며 말을 더했다.
“현석규는 진실로 군자가 아닌데, 재주 있고 능란한 수완을 보여 전하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유자광은 굵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예의와 겸양의 덕이 없고 사납고 모진 기운만 있으면서 재주가 있다면, 소인(小人) 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인물인 것이오.”
임사홍은 유자광의 반응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전하께서 우리 승지들을 모두 승정원에서 내치시고 현석규만 홀로 전하 곁을 지키게 하던 날에 하늘에서 홀연히 뇌성벽력이 내렸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하늘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김언신이 유자광의 잔을 채우며, 맞장구를 쳤다.
“가을 우레는 소리가 약한 것인데 천둥소리를 크게 낸 것은 실로 음양(陰陽)이 크게 어그러져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무언가 하늘의 감응이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사홍은 유자광을 자극했다.
“이번 일에 무령군께서 어찌 가만히 계십니까? 혹시 도승지 현석규가 전하에게 큰 신임을 받기 때문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