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신임을 다투다 (3)

임금은 처음으로 유자광을 괘씸하게 여겼다

by 두류산

3장


유자광은 두 사람을 배웅하고 마당에서 서성이며 생각을 정리하였다.

‘조정의 신하와 대간들이 모두 현석규를 옳지 않다고 하는데 전하만 현석규에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자광은 실마리를 찾았다.

'주상께서는 다섯 승지가 그릇된 의견을 말했는데 현석규가 홀로 불가(不可)하다고 하였으니 현석규가 옳고 곧으며 다섯 승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밤이 되니 가을을 느끼게 하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주상은 현석규를 곧고 정직하다고 보지만, 김주가 대신들에게 뇌물로 준 물건을 결국 몰수하지 못하게 되어 원망이 주상께 돌아가게 하였다. 이는 도승지도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주상 곁에 곧고 정직한 도승지가 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무리에 갇힌 달빛이 제법 밝았다.

'친정체제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는 주상전하의 곁에서 보필하기에 현석규는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유자광은 방에 올라 지필묵을 꺼내었다. 서판 위에 종이를 펼치고, 벼루에 먹을 갈았다. 연지(硯池)에 모인 먹물에 붓을 적셔, 먼저 오랫동안 마음에 앙금이 남은 김주의 뇌물 사건에 대해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장리(贓吏) 김주와 뇌물을 주고받은 사람이 무려 백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김주를 잡고 김주의 장부도 드러났으니 마땅히 진상을 조사해서 죄를 물어 부끄러움을 아는 풍속을 장려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대신들의 죄를 다스리지 않으십니까? 엎드려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이래 백성들을 위해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시는데, 조정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도(道)가 상실되고 뇌물을 뿌리치지 못하니 탄식과 통곡을 금치 못할 따름입니다.”


유자광은 또한 예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현석규가 동료 승지에게 화를 내고 상스럽게 말한 처사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현석규는 시정(市井)의 무뢰한 무리들이 한 그릇의 밥과 한 사발의 국을 놓고 다투는 것같이 예의를 무너뜨렸으니, 그 사람됨을 알 수 있습니다. 조정에서 먼저 예(禮)를 무너뜨리면, 사방에서 어찌 풍속이 순박하게 될 수 있겠습니까? 비록 탁월한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예(禮)가 부족하다면, 어찌 하루라도 군주의 곁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현석규가 예(禮)를 지키지 못해 조정을 능욕한 죄는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스리지 않으면, 아마도 정승이 된 자는 판서들의 이름을 불러서 능욕하고, 판서된 자는 참판 이하의 이름을 불러서 능욕하여 사방에서 본받을 듯합니다.”


유자광은 붓끝에 힘을 모아 상소를 마무리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로 간(諫)함을 받아들이기를 너그럽게 하시어 비록 꼴 베고 나무하는 사람의 말일지라도 몸을 굽혀 따르지 않음이 없으셨습니다. 또한 대간의 말이 합당하지 못하다 하여 그 말의 근원을 물으며, 간언(諫言)을 싫어한 뜻을 보이셨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 현석규의 일에 대해서만 간관에게 누구에게 들었는지 하문(下問)하십니까? 만일 전하가 현석규에 대한 사사로운 정(情)이 지극하여 간언을 거절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지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신은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성종 8년 8월 23일, 도승지 현석규는 등청하자마자, 승지가 보고하는 유자광의 상소를 보고 머리를 세게 맞은 듯했다. 상소를 읽으면서 손이 떨렸다. 현석규는 대간들의 움직임이 잠잠해져 이미 마무리된 것으로 생각했는데, 유자광의 상소는 꺼져가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직감했다.

현석규는 승지를 시켜 유자광의 상소를 임금에게 올리게 하였다. 유자광의 상소를 들고 어전으로 가는 승지의 뒷모습을 보며 현석규는 한 숨을 쉬었다.


성종은 승지가 유자광의 상소를 올리자, 내용을 궁금해하며 펼쳐 보았다.

“노기와 진회의 간계(奸計)가 마침내 나라를 그르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데도 당시의 군주가 이것을 알지 못하였으니,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이를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이를 갑니다.”

노기(盧杞)는 당(唐) 나라의 재상이었으며, 진회(秦檜)는 남송(南宋) 때의 재상으로, 간신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젊은 임금은 유자광이 현석규를 노기나 진회와 같은 간신에 비유하자 불쾌했다.

‘현석규를 노기와 진회에 비교한 것은 결국 과인을 정치를 그르친 당의 덕종과 남송의 고종에 비유한 것이 아닌가.'


성종은 상소가 못마땅했으나, 유자광은 마음속에 품은 바가 있으면 그대로 말하는 성정(性情)임을 생각하고 계속 읽었다.

"전하께서는 현석규에게서 무엇을 취하셔서 능히 버리지 못하십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장차 현석규와 같이 가깝고 친밀한 신하가 비록 나라를 그르치는 일을 저지르더라도, 사람들이 전하에게 경솔히 말하지 못하고, 대간은 입을 열지 않고 서로 경계할 것이니, 임금의 총명을 가리는 화(禍)가 이로부터 생길 듯합니다.”


성종은 유자광의 글을 읽으며 질긴 고기를 씹는 듯했다.

“엎드려 바라건대, 현석규의 죄와 김주의 일을 밝게 다스리셔서 조정의 무례한 풍습을 막으시고 조정의 염치와 절의의 풍속을 권장하시고 언로(言路)를 여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백 년 동안 좋은 풍습을 쌓았더라도, 이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하루도 넉넉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열성조(列聖朝)가 대대로 계승하신 예절과 풍습을 현석규 때문에 무너뜨릴 수 없으며, 대신들의 탐오를 사사로운 정으로 흔들리게 할 수 없습니다.”


성종은 이마를 짚으며, 상소의 마지막 부분을 마저 읽었다.

“신은 비록 언관(言官)의 반열에는 있지 않으나, 대간이 하는 말을 전하께서 윤허하지 않으시고 조정의 일이 예(禮)에 합당하지 않으면, 재상의 품계에 있는 사람은 아뢰는 것이 또한 그 책무입니다. 전하께서 지난번에 간관의 상소에 답하시기를,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게 되고 임금은 간언(諫言)을 따르면 성군(聖君)이 된다 하니, 이 말을 새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대저 신민(臣民)이 전하의 이 말을 서로 말하면서 모두들 기뻐한 지가 겨우 수개월이 지났는데, 지금 대간의 말을 윤허하지 않으시면 어떠하겠습니까? 신은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 만 번 죽기를 무릅쓰고 성총(聖聰)을 번거롭게 합니다.”


성종은 다 읽은 상소를 내려놓으며 혼잣말을 했다.

“유자광의 이번 상소는 지나치니,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임금은 승지에게 명하여 유자광을 당장 어전으로 불러들이게 하였다.


유자광이 인식하였던, 못 하였던 간에 이번에 성종에게 올린 상소는 지금까지 올린 상소와는 결이 달랐다. 성종 즉위 후 유자광의 상소는 권력을 독차지하여 왕권을 위협하는 한명회와 훈구대신들을 탄핵하였고, 심지어 대신들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대간들도 공격하였다. 성종은 그동안 유자광의 상소가 거칠고 저돌적이었지만, 결국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였으므로 기개와 충성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유자광은 물론 이번에도 임금을 위한 충정으로 상소를 올렸지만, 성종의 입장에서는 현석규를 보호하려는 자신의 뜻을 심각하게 거역하는 것이었다. 현석규를 탄핵한 상소는 성종으로 하여금 유자광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임금은 처음으로 유자광을 괘씸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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