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와 사간원은 현석규에게 두 품계를 한꺼번에 올려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양사의 관리들은 서둘러 모여 이 일을 의논하였다.
“현석규가 쳐들어오는 적을 막았습니까? 난리를 평정했습니까? 어찌 갑자기 두 자급이 뛰어 올라갑니까?”
"다른 승지들은 승급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옮겼는데, 현석규만이 자리를 옮기면서 등급을 뛰어 올린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대사간 임사홍은 흥분하는 대간들을 진정시키며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지시했다.
“나와 대사헌은 빠질 터이니 대간들은 모두 어전에 나아가서 의논한 대로 불가함을 아뢰시오.”
사간원과 사헌부의 대간들이 어전에 나와 임금에게 아뢰었다.
"이미 현석규를 그르다고 하고서 두 자급을 뛰어 올리셨으니, 신들은 벼슬의 가치가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과인이 현석규를 신임하여 오랫동안 도승지를 맡겨서 시키려고 하였는데, 그대들의 말을 따라서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하지만 그가 죄가 없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두 자급을 올린 것이니, 다시는 말하지 말라!”
"대저 두 자급을 뛰어 올리는 것은 적을 막았거나, 난리를 평정한 연후에야 주는 것입니다. 지금 현석규가 무슨 공이 있어서 갑자기 두 자급을 뛰어 올리십니까? 벼슬은 가볍게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종은 대간의 말을 반박했다.
"과인이 어리석은 사람과 소인을 등용하였으면 옳지 못하거니와, 현석규는 과인이 신임하는 사람인데도 특별히 그대들의 청으로 도승지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두 자급을 올려 준 것이다. 태평한 시대에는 사람이 어질면 벼슬을 올려 주는 것이지, 어찌 적의 기(旗)를 빼앗는 공이 있기를 기다린 뒤에나 주겠느냐?”
임금이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하였는데도 대간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비록 명(命)하였다고 하더라도 만약에 그것이 옳지 못하면, 고치는 것이 어찌 해롭겠습니까?”
임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현석규를 지금 대사헌으로 임명하였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사헌부의 관리들은 임금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자신들이 공격한 현석규가 본부의 장(長)으로 오는 것이다.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하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들이 탄핵한 자가 본부의 장(長)이 되었으니, 신들은 안심하고 직책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피혐하고자 합니다.”
임금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사헌부 관원은 전원 교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헌부 대간들은 임금에게 절을 올리고 물러갔다.
사간원의 간관들은 물러나는 사헌부 대간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탄핵을 입은 사람에게 갑자기 언관(言官)의 장(長)을 임명하시고 사헌부 관원들을 모두 다른 자리로 옮기시니, 신들은 언로(言路)가 막힐까 두렵습니다.”
"대간들의 말에 따라 도승지를 옮겼는데, 언로(言路)가 막힌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앞에서 말을 이미 다하였으니, 다시 말하지 말라!”
임금의 단호한 말에, 사간원 간관들도 더 아뢰지 못하고 어전에서 물러나왔다.
사간원으로 돌아온 간관들은 대사간 임사홍에게 현석규가 대사헌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임사홍은 쥐고 있던 붓을 꺾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두 자급을 올린 것도 모자라, 사헌부의 장(長)이라니!”
임사홍은 임금이 이 정도로 현석규를 감쌀 줄은 몰랐다. 현석규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여 공격을 하였는데, 결과는 원하는 대로 따라오지 않았다. 임사홍은 속이 타들어갔다.
임원준은 임사홍을 급히 집으로 불렀다.
“유자광이 현석규를 공격하는 상소를 올리기 전에 네가 유자광의 집을 찾았다는 것을 들었다. 유자광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이다. 그자랑 엮이지 않는 것이 좋다.”
“무령군도 현석규를 옳지 않게 보았습니다.”
임원준은 아들의 투박한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상과 대간들이 현석규를 중간에 두고 대결하는 양상이 되었다. 주상이 현석규를 대사헌에 임명한 것은 그만들 하라는 신호이다. 주상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때가 아니다 싶으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네가 맡은 대사간과 현석규가 맡은 대사헌은 언관(言官)의 두 바퀴다. 한 바퀴가 다른 한 바퀴를 탓하고 부서뜨리면 같이 망하게 된다.”
임사홍은 아버지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임원준은 아들의 태도에 입이 말랐다.
“주상과 현석규 사이에는 네가 아는 이상의 끈끈함이 있다. 이것을 거스르면 현석규와의 싸움이 아니고 주상을 상대해야 한다. 그럴 수는 없다. 이제 물러서야 한다.”
임사홍은 입술을 깨물고, 반박했다.
“대간과 대신들이 모두 현석규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헌부에 새로 임명된 대간들도 현석규를 탄핵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주상이 현석규를 감쌀수록 모든 조정의 신하들이 그자에게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대사헌 현석규는 곧 현 아무개로 무너질 것입니다.”
임원준은 격해진 감정을 드러내는 아들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현석규가 어전에 입시하여 임금에게 아뢰었다.
"대사헌의 직책은 실로 중합니다. 신은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니, 어찌 다른 사람의 잘못을 탄핵하여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명을 거두어 주소서.”
"경이 사양하리라 짐작하였다. 대저 정직한 사람은 남의 과실을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꺼리는 법이다. 경은 본래 정직하니, 대사헌이 적임이다. 사양하지 말라.”
임금이 경연에 나아가니, 새로 임명된 사헌부 지평이 본부의 장(長)을 공격하였다.
"승지로서 벼슬을 뛰어 임명된 자는 세조조(世祖朝) 때에 한명회와 신숙주, 윤필상 등이 있었으나, 이들은 모두 기록할 만한 공로가 있었습니다. 지금 현석규는 공이 없는 데다 죄가 있는데도 벼슬을 제수하시기를 공신과 같이 하셨으니, 이것은 벼슬을 가볍게 주신 것입니다.”
임금은 소리를 높였다.
"현석규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이냐?”
"현석규는 아랫사람을 제대로 거느리지 못했고, 또 동료와 더불어 화합하지 못하였으니, 실책이 큽니다. 그리고 대신들도 모두 현석규의 잘못을 말하니, 말 그대로 좌우가 모두 옳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좌우가 모두 옳지 않다고 하고 나라 사람이 모두 옳지 않다고 하더라도, 옳지 않은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그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 과인은 현석규가 옳지 못한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승급하여 벼슬을 주어 그가 죄가 없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새로 임명된 사헌부 장령도 대사헌을 탄핵하였다.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 구순(寇恂)과 가복(賈復)의 고사(故事)를 살펴보건대, 염파와 인상여의 다툼은 염파가 시작했고, 구순과 가복의 다툼은 가복에게 원인이 있었으나, 인상여와 구순은 예(禮)를 갖추고 싸움을 피하여 후세에서 어질다고 칭합니다. 현석규는 노기를 누그러뜨리고 점잖게 나무라야 아랫사람을 대하는 예의인데, 성을 내고 힐난하였으니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염파와 인상여는 중국 전국 시대 조(趙) 나라 장군과 재상으로 나라의 두 기둥이었다. 전공(戰功)이 많았던 염파는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오른 인상여를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이에 인상여는 염파와 분쟁하면 나라의 안위가 걱정되니, 아예 염파를 피해 다녔다. 염파는 인상여의 뜻을 알게 되어, 그에게 사과하고 마침내 두 사람은 문경지교(刎頸之交, 대신 목 베임을 당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의 기원이 되었다. 중국 후한(後漢) 광무제 때 구순이 가복의 부하 장군을 죽였으므로, 가복은 이를 수치로 여겨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광무제가 이것을 듣고 두 사람을 불러, 천하가 안정되지 않은 이때에 사사로운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고 타일러 화해시켰다. 이후 두 사람은 벗이 되어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되었는 고사(故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