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신임을 다투다 (6)

정 2품 판서의 붉은 관복을 입은 현석규를 보니, 임사홍은 속이 뒤집혔다

by 두류산

6장


성종은 마음이 무거웠다. 현석규가 성품이 곧고 형옥(刑獄)을 잘 다스렸기에 대사헌 직을 임명하였으나, 기존의 사헌부 관원뿐만 아니라 새로 교체된 대관(臺官)들마저 사헌부의 장(長)인 현석규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임금은 고개를 돌려 재상들에게 물었다.

“대사헌으로서 본부의 관원들로부터 탄핵을 당하게 되었으니, 이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소?”

영의정 정창손이 나서서 아뢰었다.

"사헌부는 다른 관청과 비할 바가 아니니, 함께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임금이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낮고 조용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마땅히 대사헌의 자리를 옮겨야 하겠다.”


대간들이 현석규의 대사헌 임명을 반대하고 대신들도 이에 동조하니, 결국 왕은 조정의 공론(公論)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성종은 현석규를 대사헌으로 임명한 바로 다음날 임명을 취소하였다. 임금은 또 한 번 권위와 체면을 상하였다. 성종은 다시 한번 조정을 뒤흔드는 명을 내렸다.

"대간들이 현석규를 도승지에 그대로 두는 것을 불가(不可)하다고 말하므로 대사헌에 임명하였다. 하지만 새로 임명된 사헌부 관원들이 함께 있기가 어렵다고 하니, 옮겨주어야 할 것이다. 대사헌이 아니면 형옥(刑獄)의 최고 책임자인 형조판서가 적임이니 현석규를 승진시켜 형조 판서로 임명하라.”

현석규가 대사헌에서 물러나고, 대신 형조판서로 승진했다는 소식은 사간원과 사헌부는 물론 조정을 들썩이게 하였다.


성종 8년 8월 29일, 임금은 현석규의 후임 대사헌에 이숭원을, 사헌부 지평에 김언신을 임명하였다. 형조 정랑 김언신은 형조참의 손순효와 더불어 형조의 대청 위에서 작은 술상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때 형조의 아전이 달려와 소식을 알렸다.

“정랑께서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답니다!”

손순효와 옆에 있던 사람이 모두 김언신을 축하하였다. 김언신은 가슴을 펴고 대간이 된 포부를 말했다.

“옛사람은 아침에 대간 벼슬에 임명되면 저녁에 글로 간(諫) 하기도 했다는데, 평생에 마음에 쌓인 바를 오늘날에야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죽음으로써 주상께 힘을 다하여 간할 것입니다.”


김언신은 승지로 일했던 손순효에게 물었다.

“내가 대간이 되었으니 현석규의 잘못을 따지려고 합니다. 그의 심보가 어떠한지 알려주십시오.”

손순효는 손을 저었다.

“내가 비록 현석규를 알지라도 자네가 간관(諫官)이 되었는데, 어찌 함부로 말하겠는가?”


임사홍은 먹을 부서져라 벼루에 내리찍었다. 먹을 갈고 있다가 현석규가 형조판서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날벼락같은 일이었다. 현석규를 공격하면 할수록 오히려 벼슬과 품계를 올려주고 말았으니 맥이 풀렸다.

임사홍은 육조거리에서 형조로 들어가는 현석규를 먼발치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구름 속에 기러기가 있는 흉배를 가슴에 붙이고, 금박의 허리띠를 두른 정 2품 판서의 붉은 관복을 입은 현석규를 보니, 임사홍은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임사홍은 사헌부 지평이 된 김언신의 집을 찾았다. 김언신은 임사홍이 왔다는 전갈을 듣고 반갑게 맞으며 방으로 안내했다. 임사홍의 축하를 받은 김언신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늘이 나를 대간으로 만들었으니, 반드시 현석규를 끌어내리겠네.”

“사헌부와 사간원이 합심하여 현석규를 탄핵했으나 주상의 허락을 얻지 못한 것을 명심하게나.”


김언신은 임사홍에게 나쁜 이야기를 많이 들어 현석규를 뼛속 깊이 미워하였다.

“내가 현석규를 끌어내리도록, 간곡한 상소를 지어서 전하께 올리겠네.”

임사홍은 고개를 저었다.

“상소보다는 경연에서 대신들과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격하는 것이 좋을 듯하네. 김 지평의 힘찬 기개에 현석규가 자리에서 끌어내려지면 자네의 이름은 조정에 우레처럼 울려 퍼질 것일세.”

김언신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김언신은 임사홍에게 청을 했다.

“지난번 무령군이 현석규를 탄핵한 상소의 필사본을 보여주시게.”

임사홍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집에 도착하는 대로 사람을 보내겠네.”

임사홍은 담대하고 당찬 성격을 가진 김언신에 대한 기대가 컸다.


성종 8년 9월 5일, 지평 김언신은 경연에서 현석규의 일에 대해 아뢰었다.

"신이 생각하건대, 현석규가 음험한 것이 한 가지가 아닙니다. 바르고 곧은 것이 남의 꺼림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 도승지가 전하를 가까이 보좌하는 데, 김주가 증여한 물건을 몰수하지 못해 원망이 주상께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바르고 곧다는 말로 임금을 속인 것입니다. 사람의 은밀한 심보를 알기로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제일입니다. 같이 일한 승지가 모두 용렬한 사람들이 아닌데, 화합하고 협력하지 않은 마음이 있었으니 이것도 그가 음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금은 새로 임명된 사헌부의 지평이 현석규를 자세히 안다는 듯이 조목조목 탄핵하니 가소로웠다.

“현석규를 음험하다고 말했는가? 그렇다면 현석규를 소인(小人)으로 여기는 것이냐?”

"사람됨이 음험하면 간사한 소인입니다. 전하께서 현석규의 간사한 것을 살피지 못하시니, 신이 깊이 근심하는 것입니다. 당나라의 덕종과 송나라의 신종은 모두 예전의 뛰어난 임금이지만, 덕종이 일찍이 이필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이 노기가 간사하다고 말하는데 그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고 하니, 이필은 이것은 바로 노기가 간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신종이 왕안석의 간사함을 알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일을 그르쳤습니다. 현석규가 이 두 사람의 간사함을 겸하였는데 전하께서만 알지 못하시니, 이것이 현석규가 참으로 간사하다는 까닭입니다.”


노기(盧杞)는 당(唐) 나라의 재상으로 간신의 대표적 인물이었고, 왕안석은 송(宋) 나라의 재상으로《자치통감》을 쓴 사마광과 대립하여, 주자학파에게 소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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