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신이 한 번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답하자, 임금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김언신은 임금의 노한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말을 이었다.
“현석규는 소인의 마음을 동료들과 다투는 날에 드러내었습니다. 바깥사람은 다 아는데 전하께서 홀로 알지 못하시니, 이것이 신이 크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또 여러 승지가 승정원을 떠나던 밤에 하늘이 뇌성벽력을 내렸으니, 이것이 어찌 잘못된 인사에 대한 하늘의 감응이 아니겠습니까?”
임금은 김언신의 말이 같잖고 기가 막혔다.
"그대가 진정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하느냐?”
"현석규는 참으로 소인입니다.”
임금이 눈을 가늘게 뜨고 김언신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맹자가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어찌 숨기랴?’ 하였는데, 현석규의 험상궂은 용모를 보면 또한 음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금은 분노로 얼굴이 일렁거렸다.
"이런 억지 주장이 있나? 어찌 사람을 용모로 판단할 수 있느냐? 전조(前朝, 고려)의 주열은 얼굴이 추하기가 귀신같으나 마음은 맑기가 물 같았다. 얼굴을 보고 마음을 아는 것은 성인(聖人)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그대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주열(朱悅)은 고려 때 인물로 코가 붉고 얽어, 썩은 귤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외모가 추했다. 원나라의 공주가 충렬왕에게 시집을 왔을 때 잔치를 베풀었는데, 주열이 일어나 축하의 인사와 함께 잔을 올렸다. 공주가 놀라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늙고 추한 귀신이 내 앞 가까이 오게 합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대답하기를, “이 노인이 외모는 귀신같이 추하지만 마음은 물과 같이 맑다오.”라고 하니, 공주가 존경하고 중히 여겨 잔을 들어마셨다고 하였다.
임금의 목소리가 높고 거칠어지자, 입시한 모든 신하들이 숨을 죽이며 얼어붙었다. 김언신은 물러서지 않았다.
"노기가 얼굴이 추하기 때문에 곽자의는 말하기를, 노기는 음험한 자이니, 잘못하면 내 자손은 씨가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용모로도 족히 은밀한 심술을 알 수 있습니다.”
임금은 목소리가 떨렸다.
"현석규는 소인이고, 과인이 현석규에게 농락당하였다고 생각한다면, 과인은 진(秦) 나라의 이세(二世) 황제가 이사에게 속은 것과 같은데,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신이 언관(言官)이 아니어서 감히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현석규가 소인인 것을 좌우의 신하로서 누가 알지 못한다 하겠습니까?”
김언신이 임금의 말에 한 번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답하자, 임금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성종은 좌우의 정승들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석규가 소인인 줄 경들이 알았다면 어찌 말하지 않았는가!”
재상들은 임금의 눈치를 보며 일제히 말했다.
"현석규가 소인인 것을 신들은 알지 못합니다.”
"대신이 소인이라고 하지 않으니, 모든 신하가 현석규가 소인임을 안다는 김언신의 말과 다르다. 이것은 김언신이 임금을 속인 것이다. 정승과 대신들에게 두루 물어서 만일 그대 말이 사실이 아니면, 그대는 임금을 속인 죄를 받아야 할 것이다.”
김언신은 임금의 협박에도 끝내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신이 마땅히 극형을 받겠습니다.”
김언신이 극형을 받겠다고 까지 극언(極言)을 하자 임금은 얼굴이 불덩이처럼 붉어졌다.
임금은 애써 안색을 바로 잡고, 정승들과 이조의 당상관들을 궁궐의 빈청으로 불러 의논하기를 명하였다.
"김언신이 현석규를 노기와 왕안석에게 견주는데, 이 말이 옳은지 그른지 의논하여 아뢰라.”
임금의 명을 받고 빈청에 모인 정승들은 곤혹스러웠다. 대간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도 없고, 임금의 분노도 마음에 걸렸다. 정승들은 의논을 마친 후 임금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신들이 일을 같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석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만일 현석규가 참으로 노기와 왕안석과 같다면 이 두 사람은 모두 나라를 그르친 자이니, 현석규의 진퇴도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데 경들이 알고도 말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 과인이 만일 알지 못하고 소인을 썼다면, 과인이 어떻게 덕종과 신종의 잘못을 말할 수 있겠는가? 경들은 대간을 꺼리지 말고 현석규를 비호하지도 말고 생각대로 다 말하시오!”
좌의정 심회가 나서서 아뢰었다.
"현석규가 소인인 것을 신은 알지 못합니다.”
우의정 윤자운도 아뢰었다.
“신도 현석규가 소인인 것을 실로 알지 못합니다.”
광산군 김국광은 오히려 현석규를 높이 평가했다.
"현석규는 결코 소인이 아닙니다. 평소 힘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의 과실을 말하기를 잘하니, 참으로 강직한 사람입니다.”
임금은 이조 판서 강희맹에게 말했다.
"현석규에게 형조 판서를 제수하고자 하여 가부를 물으니 경들이 말하기를, ‘판서는 정 2품이고 대사헌은 종 2품인데, 너무 과할 것 같습니다.’ 하였으나, 현석규가 소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만일 현석규가 참으로 노기와 왕안석과 같다면 경들이 어째서 그때 말하지 않은 것이오?”
"신들이 만일 현석규가 소인이라고 생각했다면 마땅히 그때 논박하였을 것입니다. 어찌 다만 자급의 높고 낮은 것만 아뢰었겠습니까?”
사헌부와 사간원은 크게 동요하였다. 김언신이 경연에서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가 소인이 아니면 극형의 처분을 받겠다고 하였고 주상은 재상들을 모아 현석규가 소인인지 물어본다고 하였다. 필시 재상들이 현석규가 소인이라고 할 리는 없고 그렇게 되면 김언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임사홍은 급히 사헌부를 찾아가 대사헌을 만났다.
“큰 일 났습니다. 김 지평이 죽게 생겼습니다.”
“사헌부의 장으로서 본부의 관원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대사간도 사헌부를 도와주시오.”
유자광이 현석규 탄핵 상소를 올리고 임금을 알현한 지도 보름이 지났다. 대간들이 현석규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재상들도 대간들의 말을 지지하는데 임금은 홀로 현석규를 감싸고 있었다. 유자광은 작금의 시끄러운 조정은 모두 현석규의 간사함이 임금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임사홍과 김언신, 노공필 등의 주장대로 현석규가 임금을 가까이 모시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더 알아보니, 현석규는 행동이 거칠고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여 적이 많았다. 현석규는 종친 활쏘기 대회에 참여할 사람의 명단을 작성하면서 공주의 남편인 부마의 이름을 빠뜨렸는데, 그 부마가 항의를 하니 사과하지 않고 주상이 제외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거짓으로 둘러대어 원망을 받았다고 했다. 또한 효령대군의 손녀사위인 현석규가 혼인으로 인척이 된 세종대왕의 손자인 정양군이 사랑하는 기생과 놀아났다는 듣기에 민망한 소문도 있었다. 현석규가 도저히 곧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유자광은 현석규의 일로 또다시 주상을 번거롭게 해야만 하는지 곰곰이 짚어보았다.
‘나는 대간도 아니다. 더구나 지난번 현석규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을 때 주상께서 직접 불러 나무라지 않으셨는가.’
어머니가 신신당부한 말도 떠올랐다.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다. 앞장서서 나서다가 화(禍)를 입고 어미가 근심으로 마음을 졸이게 하면 효가 아니다.’
유자광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현석규가 그르다는 말을 주상이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조짐은 조정에 말하는 사람을 없애는 일이다. 말을 하더라도 주상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말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군신 사이에 이렇게 되면 신하는 말하지 않고, 군주는 듣지 않으니, 나라가 어찌 바르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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