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신임을 다투다 (8)

유자광의 말은 어찌하여 김언신의 말과 이토록 같은가

by 두류산

8장


유자광은 어떻게 해서라도 주상이 현석규에 대한 생각을 올바르게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금을 섬김에는 숨기는 것이 없이, 말할 것이 있으면 반드시 아뢰라고 하였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자식이 아비를 섬기는 것과 같은데 어찌 망설일 수 있겠는가?’

유자광은 평소 앞날이 유망한 선비라고 생각하는 임사홍, 노공필, 김언신 등의 기대에도 부응하여 그들과 더욱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더구나 이들은 장차 훈구대신을 이어서 조정의 대들보가 될 것으로 기대받는 인물이 아닌가.


유자광은 마음을 정하고, 붓을 들었다.

"신은 미천함에도 벼슬이 최고의 품계에 이르렀고, 형제와 족친의 세력 없이 세상에 외롭게 홀로 서서, 할 말이 있으면 과감하게 아뢰니 믿는 것은 다만 전하의 일월(日月) 같은 밝으심입니다. 신이 듣건대, 제갈공명이 촉나라 2대 황제 유선에게 말하기를, 어진 신하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한 것이 한나라가 흥하고 융성한 까닭이며, 소인을 가까이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한 것이 한나라가 기울고 위태하여진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자광은 본격적으로 현석규가 곧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현석규가 말하기를, ‘노공필의 아우 노공유는 송익손의 사위이니, 노공필이 이런 관계로 신을 중상한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이것은 임사홍이 가만히 사주한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신(臣)이 생각하건대, 아비는 자식을 위하여 숨기고 자식은 아비를 위하여 숨기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입니다. 송익손이 아들을 위해 비록 부탁을 하더라도 현석규가 듣지 않으면 됩니다. 또한 신이 아는 노공필은 아우의 처가를 위해 현석규를 중상할 위인이 못됩니다. 그리고 임사홍이 무슨 원한으로 현석규를 몰래 사주하기까지 하겠습니까?”


유자광은 먹물에 붓을 담갔다가 붓끝의 먹물을 조절한 후, 다시 붓을 종이에 대다가 문득 쓰기를 멈추었다.

‘현석규가 활쏘기 대회에서 부마를 실수로 빠뜨리고 변명했다는 것은 실지로 주상께서 뺀 것일 수 있으니 이걸 가지고 그를 간사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정안군 기생을 취했다는 소문은 확실한 증거도 없이 드릴 말이 아니다.’


유자광은 상소를 마무리하면서 오늘따라 붓 끝에 힘이 모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주상 전하는 현석규가 아니라 임금을 공격하는 상소라고 여기실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지금까지 해온 대로 주상전하를 위해 할 말이 있으면 앞뒤 재지 않고 말할 뿐이다.’


유자광은 붓을 내려놓고 글씨의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다가, 다시 붓을 들었다. 상소의 말미에 몇 자 글을 덧붙였다.

“신의 아비가 말하기를, ‘네가 국가의 은혜를 입은 것이 천지같이 끝이 없으니, 마땅히 충절을 다하고 스스로 보전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겠다.’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신을 나무라는 자는 반드시 말하기를 ‘대간도 아닌데 왜 나서느냐?’ 하겠으나, 신이 어찌 감히 스스로 피하여 전하께 충절을 다하지 않고, 또 지하에 있는 아비로 하여금 눈을 감지 못하게 하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 신이 미천하다 하여 그 말을 소홀히 여기지 마소서.”


성종은 친정(親政)을 시작하자마자 대간들의 탄핵으로 오랫동안 신임하던 도승지 유지를 외직으로 내보내야 했다. 유지의 후임으로 도승지가 된 현석규마저 도승지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성종은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임금은 현석규를 놓고 싶지 않았지만 대간들의 말을 계속 거부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현석규가 죄가 있어서 물러나게 한 것은 아니기에, 현석규를 대사헌과 형조판서에 거듭 임명하였다. 성종은 홀로 주먹을 쥐었다.

‘대간들과 대신들은 과인이 젊어서 오기와 억지를 부린다고 하겠지만, 현석규는 곧고 그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뿐이다.’


이런 차에 현석규가 죄인이라는 유자광의 상소가 올라왔다. 성종은 불편한 마음으로 상소를 펼쳤다.

“신은 당나라의 덕종이 노기의 간사함을 깨닫지 못했듯이, 현석규가 노기와 같은 간사함이 있는데도 전하께서 미처 살피지 못하시는 듯합니다. 송나라의 왕안석은 조정 안팎에서 모두 그 재주에 탄복하여 인물을 얻었다 하였는데, 홀로 여헌가만이 천하의 일을 그르칠 자는 왕안석, 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시대에서 보면 왕안석이 대신이 되는 것은 모두 바란 것이고 소박한 모습으로 남을 속이는 자취는 없었으므로 여헌가도 홀로 이런 말을 입 밖에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나 과감히 탄핵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사마광조차도 여헌가의 탁견에 미치지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종은 당나라와 송나라의 간신들을 현석규에 비유하자 김언신의 말이 떠올랐다. 임금은 짧은 신음을 토해내었다.

‘유자광도 현석규를 노기와 왕안석에 비유하는가.’


성종은 가슴 가득히 숨을 채우며 불편한 마음을 삭였다.

“현석규의 음험하고 바르지 못한 자취가 나타나자, 공론이 모두 불가하다 하는데 홀로 전하께서 살피지 못하시니, 이것은 현석규가 참으로 간사하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요순의 성스러움과 일월(日月)의 밝음이 계신데 어찌하여 현석규의 간사함을 밝히지 못하시며, 어찌하여 현석규의 직책을 도리어 높이어 신민(臣民)의 분한 마음을 더하십니까?”


성종은 유자광의 상소를 거칠게 덮었다. 상소를 밀쳐두고, 황해도 관찰사가 보낸 장계를 펼쳐 읽었다. 장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임금은 유자광의 상소를 다시 펼쳤다.

“신이 생각하건대, 현석규는 재주가 있는 자이나, 소인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재주가 넉넉하고 덕이 부족한 자가 소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소인이 재주가 있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가 있는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임금은 눈을 감았다. 성종은 읽던 상소를 다시 덮어버리고, 보다가 두었던 황해도 관찰사의 장계를 펼쳤다.


임금은 관찰사의 장계에 대한 답을 내리고, 유자광의 상소를 한참 노려보다가 다른 서류를 보았다. 더 이상 살펴볼 문서가 없게 되자 유자광의 상소를 다시 펼쳤다.

“전하께서 여러 승지를 승정원에서 내보내던 날에 하늘이 홀연히 뇌성벽력을 내렸는데, 가을 우레는 소리가 작아야 하는데도 도리어 크게 소리를 낸 것은 실로 음양이 크게 어그러진 것입니다. 반드시 하늘이 인사(人事)에 대해 말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찌 현석규가 소인으로서 홀로 직위를 보존하여 전하의 좌우에 있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전하의 덕으로서 무슨 잘못이 있어서 뇌성벽력이 그렇게도 요란하였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현석규의 죄를 밝게 다스려서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응하고 하늘의 경고에 답하시면 심히 다행이겠습니다.”


성종은 노기와 왕안석 이야기가 나왔을 때 김언신이 한 말을 생각했는데, 승지들이 승정원을 떠난 날 뇌성벽력이 친 것을 하늘의 감응이라는 이야기를 읽는 순간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성종은 상소 읽기를 마치고 승지에게 상소를 내려주며 말했다.

"정승들에게 유자광의 상소를 보여주고, 의논해서 아뢰라고 하여라.”

임금은 승지에게 명을 내렸다.

“유자광이 상소에서 한 말이 어찌하여 김언신의 말과 이토록 같은가? 유자광과 김언신을 즉시 들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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