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규는 자신을 간신에 비유한 유자광과 김언신에게 분노가 일었다
유자광이 부름을 받고 궁궐에 들어오니, 미리 와서 기다리는 김언신이 보였다. 유자광이 김언신에게 따지듯 물었다.
“네가 말한 바와 내가 글로 올린 바가 비슷하다고 하는데, 어찌 그리 되었나? 내가 너와 서로 친한 것은 남들도 아는 바이니, 우리가 의논했다고 의심할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과 식견은 서로 멀지 않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가리킨 말입니다. 하늘의 해가 내려다보는데 남이 의심하는 것을 어찌 마음에 두겠습니까?”
김언신이 가슴을 내밀고 무엇이 문제가 되겠느냐고 되물으니 유자광도 더 할 말이 없었다.
유자광과 김언신이 함께 어전에 나아가니, 임금이 유자광에게 물었다.
"상소의 내용이 어찌하여 김언신과 이토록 같은 것이오?”
"신이 현석규가 노기와 왕안석과 같다고 하는 것은 근일에 행한 행적이 그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전에 활쏘기 행사를 행하던 날에 공주의 남편인 홍상이 현석규에게 따지기를, ‘나도 임금을 모시고 쏘고자 하는데, 왜 내 이름을 명단에 넣지 않았는가?’ 하니, 현석규가 말하기를, ‘승정원에서 써서 아뢰었는데 주상께서 낙점하시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비록 작은 일이기는 하나 현석규의 간사한 실태를 볼 수 있습니다.”
홍상(洪常)은 우찬성 홍응의 아들로 성종의 누나인 명숙 공주의 남편이었다.
임금이 말했다.
“경이 생각한 바를 숨기지 않고 말해온 것을 과인이 늘 치하하는 바이나, 이번 상소는 언사가 지나쳤소. 또한 현석규가 홍상에게 한 말은 친구 간에 허물없이 한 말이었소.”
“옛말에, 친구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친구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이 현석규에게 어찌 감정이 있겠습니까? 다만 가슴속에 있는 생각을 숨김없이 다 말할 뿐입니다.”
성종은 유자광을 내버려 두고, 김언신을 다그쳤다.
"노기와 왕안석은 자기를 그르게 여기는 자를 헐뜯어서 멀리하고 배척하였으니 소인의 자취가 나타났다. 현석규가 한 일도 이와 같으냐? 그대가 말하기를, 만일 망령된 말을 하여 임금을 속였다면 마땅히 극형을 받겠다고 하였다. 지금 정승들이 모두 현석규는 소인이 아니라고 하니, 그대가 극형을 받겠느냐? 그대가 과인더러 소인을 쓴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그대가 과인을 진(秦) 나라 이세(二世)에 견주었느냐? 과연 이와 같다면, 그대가 벼슬을 버리고 마땅히 멀리 숨어야 옳을 것인데, 어째서 이런 때에 벼슬하느냐? 그대가 도대체 과인을 어떤 임금에 견주느냐?”
김언신은 노기를 잔뜩 품은 임금의 질책에도 굴하는 낯빛이 아니었다. 김언신은 임금의 말이 그치자, 현석규의 잘못에 대해 조목조목 말하였다. 김언신은 유자광을 한번 돌아보고 덧붙여 아뢰었다.
"신이 일찍이 현석규를 음험하고 간사하다고 생각하였는데, 무령군이 말한 두어 가지 일을 보니 더욱 그 음험함을 알겠습니다.”
임금은 김언신의 말에 분을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작은 일을 가지고 현석규를 노기와 왕안석에 견주는 것이 옳으냐? 선왕들께서 대통(大統)을 전하셨는데 하루아침에 과인이 소인을 써서 나라를 그르친다면, 후세 사람들이 무어라 하겠는가?”
정인지 등 재상들이 어전에 나아왔다. 임금은 재상들을 맞으며 말했다.
“유자광의 상소가 비록 너무 지나치나 대신이고 공신이기 때문에 너그러이 용납하지만, 김언신은 죄를 묻고자 하는 데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오?”
정인지가 먼저 입시한 유자광과 김언신을 한번 돌아보며 말했다.
"김언신의 말이 너무 과하기는 하나 간관의 말이 간절하지 않으면 임금의 귀를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청컨대 통촉하소서.”
"현석규가 참으로 소인이라면, 과인이 덕종과 신종이 소인을 쓴 잘못과 같다는 비판을 달게 받겠소. 만일 소인이 아닌데 김언신이 소인이라고 말하였다면, 이것은 임금을 속인 것이오. 어찌 김언신의 죄를 묻지 않을 수 있겠소?”
유자광은 부득부득 현석규를 감싸는 임금이 무언가에 씌어서 현명함을 가리는 듯이 보였다. 유자광은 현석규에 대해들은 나쁜 소문을 임금이 모두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들은 대로 아뢰었다.
"신이 현석규에게 무슨 감정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리석고 곧은 탓으로 가슴속에 품은 바를 감히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석규는 서원군의 사위인데 정양군의 기생을 간음하였습니다. 현석규가 집에서 행하는 것이 이와 같다면 나라에서 행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바른 사람이겠습니까?”
임금은 유자광의 말에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령군은 공신이고 대신이기 때문에 비록 과한 말이 있어도 용서하여야 하겠지만, 김언신은 반드시 국문을 받도록 하겠다.”
김언신은 임금이 자신을 국문하겠다는 말에도 굴하지 않고 아뢰었다.
"신이 죄를 당하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으나, 지금 현석규를 쓰면 후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대신들은 어전에서 물러나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대간인 김언신이 기어이 큰 화를 당할 것이 불을 보듯 분명한 일이었다.
현석규는 경연에서 김언신의 탄핵에 이어, 유자광이 올린 상소로 정승들이 어전에 불러가서 의논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석규는 붓을 들어 상소를 쓰려다 마음을 바꾸었다. 임금에게 보다 사적인 서신을 올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신이 듣건대, 김언신과 무령군이 모두 신의 죄악을 논하여 노기와 왕안석에 비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이 오래 좌우에서 모시었으니, 간사하고 사악한지, 충성을 다하고 정직한지는 성상께서 잘 아시는 바입니다. 다만 홀로 곧았기 때문에 동료와 틈이 생기어 백 가지 비난을 불러일으켰으니 신의 죄가 큽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공론을 따르소서.”
임금은 현석규의 서신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왕으로서 무력감마저 들었다. 성종은 붓을 들어 현석규를 위로했다.
"김언신이 비록 경을 소인이라 하여 노기와 왕안석과 같다고 하였으나, 그 까닭을 물으니 변명하지 못하였다. 또 대신에게 물으니 모두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정치를 하는 데에는 형벌보다 큰 것이 없으니, 경은 형조판서 직을 소중히 여겨라.”
현석규는 임금이 내린 글을 읽고 감격하였다. 하지만 자신을 천하의 간신에 비유한 유자광과 김언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김언신과 유자광은 나하고 근무한 적도 없는데, 나를 어떻게 안다고 노기와 왕안석에 비유한단 말인가. 이는 필시 누군가에게 악의적인 말을 들은 결과일 것이다.’
현석규는 자신에게 대들던 임사홍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석규는 참지 못하고 임금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유자광과 김언신은 신과 일을 함께 한 자가 아닌데, 무엇으로 신이 노기와 왕안석과 같다는 것입니까? 왕안석은 법을 변경하였고 노기는 바른 사람을 음험하게 헐뜯었는데, 신이 형방승지로 4년 동안 있으면서 법을 변경한 것이 얼마나 되며 형벌을 잘못 쓴 것이 얼마나 됩니까? 요전에 대간들은 신이 자급을 올려 받았은 것을 탄핵할 때에도 소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는데, 신을 소인이라고 한 것은 김언신과 유자광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신이 오랫동안 승지로 있었는데, 유자광이 어째서 지금까지 소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전하를 가까이 모시게 하였습니까? 반드시 전하여 들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청컨대 신과 국문하게 하여 대질하게 하소서.”
임금은 현석규를 달랬다.
"과인이 이미 물어서 그들이 변명하였는데, 어찌 경이 반드시 의금부 옥에 나가 국문을 받아야 하겠는가?”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