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신임을 다투다 (10)

전하가 어지시니, 꿋꿋하고 곧은 신하도 있는 것입니다

by 두류산

10장


성종의 입장에서는 신하들 중에 군자와 소인을 어떻게 구별하느냐는 난제(難題) 중의 난제였다. 공자는 ‘행동하는 것을 보고, 마음 씀을 관찰하며, 좋아하는 것을 살피면 사람이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하였으나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 군자가 오히려 화를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성종은 대간이 대신을 탄핵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함부로 소인이라고 규정하고 말하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풍습은 키울 수 없다.'


임금은 의금부에 명을 내렸다.

"현석규는 소인이 아니므로 과인이 임용하였고, 이조와 대신들도 모두 소인이라 하지 않았다. 지평 김언신은 현석규를 가리켜 소인이라 하고 심지어 과인을 당나라 덕종과 송나라 신종에 견주고, 만일 소인이 아니면 극형을 받겠다고 하며 무리하게 주장하였다. 김언신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국문하여 아뢰라.”


사헌부 지평 김언신이 의금부 옥에 갇히자, 조정의 신하들은 동요하였다.

“김 지평은 대단한 강골이야. 주상 앞에서 자신의 간언이 임금을 속인 것이라면 마땅히 극형을 받겠다고 했다더군.”

“타고난 대간인 게지. 주상의 불호령에도 조금도 굴하는 기색이 없이 또박또박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는 게야. 대단한 기개가 아닌가.”

"간관의 말이 간절하지 않으면 주상을 움직일 수 없는 법인데, 이 때문에 옥에 갇히고 국문을 당하게 되었으니......”


사람들은 김언신의 물러서지 않은 기개에 혀를 내두르며, 옥에 갇힌 것을 동정했다. 여러 신하들이 상소를 올려, 김언신을 용서하여 언로를 통하게 하고 대간의 사기를 올려주라고 임금에게 청했다.


성종 8년 9월 8일, 의금부에서 김언신에게 가해질 형벌을 임금에게 아뢰었다.

"지평 김언신이 현석규가 소인이 아닌데도 소인이라 지목하여 군주를 속이고 아뢴 죄는 법에 따라, 장(杖) 1백 대, 도(徒) 3년에 해당합니다.”

도(徒)는 중죄를 진 사람에게 노역에 종사시키는 형벌이었다. 당시 노역의 주된 일은 높은 산봉우리의 봉수대를 관리하는 일, 소금 만드는 일, 쇠를 녹이는 일, 종이나 기와 만드는 일 등이었다.


임금은 의금부 지사를 나무랐다.

"임금을 속인 죄는 마땅히 죽여야 하는데, 어찌 형벌이 이처럼 가벼운가? 법을 다시 살펴서 고쳐 벌을 가하고, 아울러 김언신을 잡아오시오.”

의금부는 임금의 명에 따라 김언신을 승정원 뜰에 끌고 왔다.


김언신이 항쇄(項鎖, 목에 쓰는 칼)를 차고 승정원 뜰에 끌려 나오자, 임금은 내관 안중경을 시켜 물었다.

"그대가 처음에 자신이 극형을 당하겠다고 말하였는데, 지금 죄가 죽기에 이르렀어도 현석규를 소인으로 여기느냐?”

김언신은 목에 칼을 차고도 주저 없이 답하였다.

"신이 처음부터 죽기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고, 또한 잘못 고집한 것도 아닙니다. 현석규는 참으로 소인입니다.”


임금이 김언신의 말을 전해 듣고 혀를 찼다. 임금은 환관을 통해 다시 물었다.

"그대가 죽기에 임하여서도 계속해서 현석규를 소인이라 하고, 과인을 덕종과 신종이 소인을 쓴 것과 견주고 있느냐?”

"신이 죽음이 두려워 현석규를 소인이 아니라고 고쳐 말한다면, 이것은 임금을 속이고 죽는 것입니다.”

임금이 김언신에게 다시 물었다.

"노기와 왕안석은 모두 당류(黨類)가 있었는데 지금 대신들과 이조에서 말하기를 현석규는 소인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현석규의 당(黨)이 되어 숨기는 것이냐?”

"성명(聖明)한 때에 어찌 붕당이 있겠습니까? 왕안석이 소인인 것도 오직 여헌가 한 사람이 알았습니다. 그만큼 소인을 알아보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신이 하늘 아래에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임금이 환관에게 김언신의 말을 전해 듣고 다시 말했다.

"과인이 그대를 죽이면 걸(桀)이나 주(紂) 같은 임금이 될 것이다. 그대가 죽어도 용봉(龍逢)과 비간(比干)하고 더불어 지하에서 놀고자 하느냐?”

용봉은 하(夏) 나라의 어진 신하인 관용봉(關龍逢)인데, 걸왕(桀王)의 무도함을 간(諫)하다가 피살되었고, 비간은 은(殷) 나라 주왕(紂王)의 숙부인데, 주왕의 나쁜 정치를 간하다가 살해되었다.


왕의 말을 전해 듣고 김언신이 결연히 말했다.

"신은 주상에게 바른말을 하다가 죽는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임금은 환관에게 김언신의 태도와 말을 전해 듣고 말없이 천장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함부로 대신을 소인이라고 욕보이고, 경박하게도 목숨을 걸고 잘못된 주장을 계속하던 대간을 엄벌하여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임금에게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게 한 대간이 아닌가.

‘간(諫)하는 신하를 죽이는 왕은 오직 걸(桀)과 주(紂)뿐이다. 간(諫)하는 신하를 죽여서 어찌 어진 임금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성종은 환관을 통해 김언신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그대가 강개하고 굴하지 않는 것을 과인은 대단히 기뻐한다. 당 태종은 간언을 듣는 것이 점점 처음만 같지 못하였다 하였는데, 과인이 어찌 그와 같겠느냐? 그대는 직(職)에 다시 나아가서, 앞으로도 말할 만한 일을 만나거든 극진히 말하라. 과인이 가상하게 여겨 받아들이겠다.”


성종은 김언신을 풀어주게 하였다. 승정원에 명하여 술과 음식을 먹이고 예우하여 보내게 하였다. 조정 신하들은 김언신의 방면 소식에 서로 모여 과연 성군(聖君)의 세상이라고 환호하였다. 승지들도 입을 모아 아뢰었다.

“참으로 현명하신 명이었습니다. 신민들이 전하의 결단에 모두 기뻐하고 있습니다.”


승지들이 물러가자, 환관 안중경이 임금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강직한 신하가 있음은 전하의 홍복이시옵니다. 전하가 어지시니, 꿋꿋하고 곧은 신하도 있는 것입니다.”


성종은 김언신을 풀어준 후 신하들에게 말했다.

"과인이 김언신을 옥에 가둔 것은 본래 죄주자는 것이 아니라 엄히 징계하고자 한 것이다. 만일 과인의 과실을 말하였다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과인이 소인을 썼다고 하는 말은 정사에 관계되기 때문에, 듣고 마음 아파한 것이다. 그러나 그 강개한 것은 발탁하여 쓰고자 한다.”


김언신은 곧 사헌부 지평으로 복직하였다. 두 달 후 모친의 병이 위독해져 사직을 청했다. 성종은 김언신을 한가한 관직으로 바꾸어 임명하여, 모친을 돌보면서 녹봉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성종은 김언신에게 모친의 병에 좋은 약(藥)을 내려주며, 모친의 병이 나으면 다시 대간으로 쓰겠다고 하였다. 임금의 어진 조치에 대간들은 자신들에게 내린 은혜라고 여기며 감동하였다.


임사홍은 김언신 사건 이후 더 이상 현석규를 공격하려는 힘을 잃었다. 대간들이 몇 번 더 현석규를 탄핵해 보았지만 임금이 흔들림 없이 그를 비호하자, 결국 현석규에 대해 말하기를 그쳤다.


임사홍의 은밀한 공격으로 시작된 두 달간에 걸친 도승지 탄핵 사건은 역사에서 이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덮어진 이 사건은 뇌관이 되어 훗날 엄청난 폭발력 있는 사건으로 재등장하게 된다. 이 사건에 관련된 임사홍과 유자광 등의 인물들은 김종직의 제자들과 얽혀 치명적인 화(禍)를 입게 된다. 역사의 물줄기가 이렇게 흐를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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