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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Sep 16. 2022

직권을 남용한 병마절도사,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직권을 남용하여 사사로운 일에 군사를 내었습니다 

 충청 절도사와 홍주목사가 직권남용죄로 조사를 받았다

 

 직권 남용은 관리가 직무를 핑계하여 자기 권한 밖의 행위를 함부로 하여 업무의 공정함을 잃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관리들에게 청렴성과 공정한 법집행은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뇌물죄와 직권 남용(職權濫用) 죄는 법을 엄하게 적용하여 다스렸다. 


 성종 때 충청도 병마절도사와 홍주(洪州, 지금의 홍성지역) 목사가 직권 남용죄로 조사를 받았다. 임금은 훗날 연산군이 되는 원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사면령이 내려져, 모든 범죄가 용서가 되는 사항임에도 예외적으로 이들을 엄하게 처벌하였다. (성종실록, 재위 8년 1월 24일)


 종 2품 무관인 충청도 병마절도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펼쳐보자.


 성종 7년 12월 14일, 의금부 지사가 급히 어전에 나아와 임금에게 아뢰었다.   

 "충청 절도사 이종생과 홍주목사 최호는 공사(公事)가 아닌데도 관아에서 아전 6명과 포졸 30여 명을 보내어 홍주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는 모든 물건을 빼앗고, 배에 탄 사람들을 잡아다가 여러 날 씩 가두었습니다.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니, 청컨대 일에 관여된 사람들을 모두 잡아서 국문하게 하소서.”

 “자세하게 말해 보라.”

 “상당군 한명회의 노복 도치가 충청도 절도사의 관아를 찾아가서 말하기를, 상당군의 종이었던 김성(金成)이 주인의 위세를 빌어 각 지역에서 물건을 팔고 다니면서 나타나지 않은 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물건을 싣고 홍주에 와서 배를 대었으니, 물건을 몰수하여 주기 바란다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충청 절도사 이종생이 그 말을 듣고 홍주 목사에게 연락하여 물건을 빼앗아 상당군의 노복에게 준 사건입니다.”


 한명회는 세조의 즉위를 도운 후, 예종, 성종의 3대째 공신이며, 임금의 장인으로 조정 최고의 권세가였다.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이 사건을 알게 되었는가?”

 “이 사건에 대해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의금부에서 접수하였습니다. 홍주 목사는 배에 실은 물건을 모두 몰수하고 배에 탄 사람들도 가두었는데, 무과에 급제한 자도 포함되었습니다. 관련된 자들을 국문하여 제대로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금은 의금부에 철저한 조사를 명했다.

 “철저히 조사하여 누구라도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라.”  


 성종은 다음날 경연에서 영사(領事)로 참석한 한명회를 나무랐다. 

 "정승의 종이 주인의 권세를 믿고 폐단을 만들었는데, 절도사 이종생이 제 직무가 아닌데도 홍주 목사에 이첩하여 남의 재물을 빼앗아 관에 몰수하였으니, 과인은 이를 매우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바이오. 정승이 시킨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고, 종의 무리가 세력을 믿고 그랬겠으나, 정승은 모름지기 경계하여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 하오."

 한명회가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물건의 임자는 신의 종이온데, 신을 믿고 이(利)를 불리고 남의 물건을 억지로 빼앗으므로, 신이 싫어한 지 오래입니다. 어느 날 절도사 이종생이 글로 알리기를, ‘종 아무가 의롭지 않은 일을 많이 하는데 참으로 종이냐?’고 하였기에, ‘감사(監司)에게 넘겨 다스리도록 하라.’고 신이 답하였는데, 저 무인(武人)이 사리를 모르고 홍주 목사에게 넘겼고, 홍주 목사도 직무를 분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신은 황공하여 대죄(待罪)합니다." (성종실록, 재위 7년 12월 15일) 


 사헌부 대관들은 나라를 지키는 장수가 조정의 최고 권세가인 한명회에 아부하고자 공권력을 동원하여 장삿배를 습격하여 물건을 압수한 직권남용 사건을 묵과할 수 없었다. 성종 7년 12월 17일, 대사헌 윤계겸이 경연에서 아뢰었다. 

 "이종생은 사사로운 일에 군사를 내어 남의 재물을 강탈하여 권세 있는 집에 아부하였으니, 잡아와서 의금부 옥에 가두고 추국해야 할 것입니다."

 임금이 말했다.

 “이종생은 파직을 시켰고, 그가 올라오거든 국문하라고 명하였으니 당장 잡아올 수는 없다.”


 윤계겸이 다시 아뢰었다. 

 "신들은 대신에게 아부하느라고 군사를 내어 백성을 겁탈한 것은 죄가 막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조 때에는 대신에게 아부한 자가 있으면 반드시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모름지기 이종생을 잡아 오고, 또 백성들이 국가에 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성종은 좌우를 돌아보고 물었다. 

 "모두들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연의 영사와 경연관들 모두 한 목소리로 답했다. 

 “대사헌이 아뢴 바가 옳습니다."

 임금이 신하들의 의견을 듣고 승지를 통해 의금부에 명했다. 

 "이종생을 당장 압송하여 오라." (성종실록, 재위 7년 12월 17일)


 의금부에서 이종생을 압송하여 심문한 후, 사실 확인을 위해 한명회의 국문을 요청하였다. 성종은 정승 한명회를 국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과인이 이종생이 한보(韓堡, 한명회의 아들)에게 보낸 서신을 보니, 정승에게 관계된 것이 아니다. 이종생이 처음부터 어찌 도치가 정승의 종인 줄 알았겠는가? ” 

 임금은 의금부 지사에게 추가로 지시하였다.   

 "한명회의 노복은 충청 관찰사에게 소장(訴狀)을 제출해야 마땅한데, 변경을 지키는 장수인 절도사에게 고하였고, 충청 절도사 이종생은 관찰사가 있는데도 본인이 움직였으니, 어째서 직권을 어기고 그리하였는지 그 까닭도 조사해야 할 것이다.” (성종실록, 성종 8년 1월 11일) 


 한명회는 의금부가 자신을 국문하기를 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어전에 나와 임금에게 아뢰었다. 

 "이종생이 한보에게 보낸 서신을 찾아내었으니, 저의 일이 밝혀질 것입니다. 의금부에서 신을 국문하기를 청하였는데, 국문하지 말라고 특별히 명하셨으니, 성상의 은혜를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노신(老臣)이 죽지 않은 죄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임금이 한명회를 위로하며 말했다. 

 "과인이 의금부에 이미 말하였거니와, 이것은 정승이 아는 바가 아니라, 도치가 정승의 말이라고 핑계하여 이종생에게 말하였는데 이종생이 듣고 따랐으니, 이종생의 잘못이다. 정승이 어찌 남의 물건을 빼앗았겠는가?”  (성종실록, 재위 8년 1월 11일)


 임금이 직권남용을 하게 만든 당사자인 한명회는 모르는 사실이었고 이종생이 알아서 아부한 것이라고 판단하자, 사헌부 관리들은 불만이었다. 사헌부 장령 경준(慶俊)과 사헌부 대간들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예전부터 공신이 마지막까지 잘 보전하지 못하고 망한 까닭은 스스로 잘못하기도 했지만, 임금이 공신들을 잘못 대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근래에 한명회가 공을 믿고 방자하여 죄를 범하는 일이 한 번뿐이 아닌데도 전하께서 번번이 용서하시니, 이 때문에 한명회가 날로 더욱 교만하고 방자해집니다. 이종생은 나라의 한 지역을 맡은 대장으로서 한명회가 시키는 대로 홍주에 이첩하여 장사하는 물건을 빼앗았는데, 이래도 엄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법이 장차 행해지지 않을 것이니, 청컨대 이종생의 죄를 더하고, 한명회도 아울러 국문하소서."

 임금이 대간들을 보고 말했다. 

 "그대들은 의금부가 조사한 문건을 보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한다. 이종생이 한보에게 글을 보내어 정승에게 알리게 하였으니, 아부하여 뜻을 맞춘 것은 이종생의 잘못이다. 정승에게는 관계되지 않으므로 당초에도 국문하지 않았다.” (성종실록, 성종 8년 1월 21일)


 이종생이 범한 죄를 물어 엄하게 처벌을 하자니, 이미 모든 죄를 용서하는 대사면령이 내려진 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법적 신뢰와도 관계되는 문제여서 조정은 신중하게 이 문제를 다루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www.seosanpost.co.k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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