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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Sep 27. 2022

중국 가는 사신단에 청탁하다 파직당한 재상 (2)

법이 한 번 정해지면 군주라도 어길 수 없습니다

 법이 한 번 정해지면 군주라도 어길 수 없습니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젊은 대간들은 거듭 서거정의 범죄행위를 탄핵하며, 의금부 옥에 가두고 국문해야 한다고 진언하였다.

 "서거정이 범한 죄는 의금부에 가두고 국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4월 19일)


 사간원의 수장 대사간은 따로 상소를 올렸다. 

 "북경에 가는 사람이 수량 이외의 물화(物貨)를 싸가지고 가는 것을 금하는 것은 법령에 실려 있을 뿐 아니라, 전하께서 항상 사신들의 길목인 평안도 고을에서 겪는 폐단을 염려하시어 거듭 경고하시었습니다. 대신된 자가 마땅히 공경하여 국법을 받들어야 할 것인데, 서거정이 의정부의 대신으로서 통사와 결탁한 행위가 장사치와 같으니, 대신의 체면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물며 전하께서 친히 물으실 때에 서거정이 죄를 면하기를 꾀하여 조카에게 미루며 전하를 속였습니다. 죄가 이보다 더 클 수 없습니다. 어찌 훈구대신이라 하여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원하건대, 옥에 가두고 국문하도록 명하시고, 그 죄를 밝게 밝혀서 후일에 징계가 되게 하소서." (성종실록, 재위 8년 4월 19일)


 임금이 대간들의 진언을 허락하지 않자, 경연에서 사간원의 정 5품 헌납과 사헌부의 정 5품 지평이 나서서 서거정을 가두고 국문하기를 거듭 청하였다.  

 임금이 젊은 대간들의 말을 듣고 좌우를 돌아보고 물으니, 영사(領事) 김국광이 대답하였다. 

 "작은 죄로 대신을 가두는 것은 불가한 듯합니다."

 임금이 말했다. 

 "경의 말이 옳다." (성종실록, 재위 8년 4월 21일)

 

 사간원의 헌납이 경연에서 있었던 일을 대사간에게 보고하니, 대사간 이세좌와 간원들은 연명하여 상소를 올렸다. 

 "전하께서 서거정 등을 공신이라 하여 가두고 국문하지 말게 하시었으나, 의금부는 마땅히 공도(公道)에 따라 자세히 조사하여 위임하신 뜻에 부응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의금부가 조사하여 밝히기를 미루고 서팽형에게 베를 어디에서 받은 것이지 유래를 캐어묻지 않으니, 죄인을 비호하고 권세와 결탁한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경연에서 대간이 서거정 등을 국문하기를 청하자, 영사 김국광이 아뢰기를, ‘공신은 조금 죄를 범한 것이 있더라도 가두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하여 죄인을 구원하고 전하에게 진언하는 대간들의 뜻을 저지하였으니, 대신의 도리가 과연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임금이 상소에 답을 내렸다. 

 "의금부는 죄인을 비호하고 권세와 결탁한 것이 아니고, 다만 국문하는 것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과인이 대신에게 물은 것은 생각하는 것을 듣고자 함이고 김국광이 아뢴 것은 자기 생각을 말한 것이다. 어찌 죄에 빠진 사람을 구해 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성종실록, 재위 8년 4월 21일)


 사헌부도 경연에서 돌아온 지평의 보고를 받고, 대사헌과 사헌부 관리들이 연명하여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서거정은 지위가 의정부의 재상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명분과 절의를 닦아서 청렴하고 조심하여 스스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라 법을 범하였으니 이미 대신의 체모를 잃은 것입니다. 전하께서 친히 불러서 물으실 때, 진실을 말하지 않고서 서팽형에게 미루었습니다. 어찌 신하 된 도리이겠습니까? 청컨대 가두고 국문하소서." (성종실록, 재위 8년 4월 21일)

 

 임금이 들어주지 않자, 대사헌은 경연에서 임금에게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였다.

 "신이 보기에 서거정은 죄가 크니 방면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여겨집니다. 청컨대 옥에 가두고 국문하게 하소서."

 임금이 말했다.

 "서팽형이 처음에는 서거정이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가, 형벌하여 다그치자, 서거정의 처가 베를 가만히 주고 그 뒤에 서거정에게 말하였다.’ 하였다. 생각하건대, 서거정이 실로 아는 것인지 서팽형이 그 죄를 모면하려고 서거정에 돌린 것인지 반드시 연유가 있을 것이므로, 국문을 끝낸 뒤에 조처하겠다." (성종실록, 재위 8년 4월 23)

 

의금부는 드디어 이번 일과 관련된 자들의 조사 결과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사역원 판관 조숭손이 천추사(千秋使)의 통사로서 다른 사람의 베와 무역을 금하는 물건을 많이 싸가지고 갔으니, 죄가 《대전(大典)》에 의하면 장(杖) 1백 대에, 도(徒, 노동형) 3년에 해당합니다. 우찬성 서거정, 형조 참의 한언, 전라관찰사 이서장은 중국 물건을 사기 위하여 베와 물건을 몰래 조숭손에게 주었으니, 죄가 《대전》에 의하여 장(杖) 90대에, 4등의 품계를 박탈하는 데 해당합니다."


 천추사는 중국 황제ㆍ황후ㆍ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조선에서 보내던 사신이었다. 


 임금은 형량을 줄여주어, 참의 한언은 1등을 감하고, 서거정과 이서장은 파직만 하게 하였다. (성종실록, 재위 8년 4월 25일)


 사헌부와 사간원의 젊은 간원들은 임금의 조치에 반발하였다. 대사헌 김영유는 서거정과 사마시(司馬試, 소과(小科)라고도 하며 생원과 진사를 뽑는 시험)에 같은 해 동방 급제한 사이여서 젊은 대관들의 반발에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대사간 이세좌는 사간원의 간원들과 함께 서거정의 처벌에 대해 임금에게 이의를 제기하였다. 

 "서거정이 의정부의 대신으로서 법을 범하였으니, 죄가 진실로 큽니다. 하물며 전하께서 친히 물으실 때, 그 죄를 면하려고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서거정이 법을 흔든 것뿐 아니라 군주를 속인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다스리는 법은 도리어 다른 죄인보다 가벼우니, 신들은 세력을 믿고 법을 무시하는 자가 전하가 너그럽게 법을 쓰는 뜻을 엿보아서 징계하는 것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4월 26일)


 임금은 파직 외에 더 이상의 처벌은 하지 않았으나. 서거정은 이번 일로 후배들에게 신망을 잃었다. 


 성종은 서거정의 문장과 학문을 아껴 파직시킨 후 3개월이 지나자, 그의 죄를 용서하고 대제학으로 임명하였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들은 극력 반발하였다. 

 사간원 간원들은 새로 부임한 대사간 손비장을 앞세우고 임금에게 나아와 아뢰었다. 

 "서거정은 사역원의 책임자로서 베를 통사에게 주어, 중국의 시장거리에서 베를 팔고 중국 물건을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일이 발각되어 전하께서 직접 심문하자,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고 군주를 속이었다가 파직되었습니다. 하지만 파직된 지 얼마 안 되어 용서하고 다시 벼슬을 주었으니, 심히 부당하옵니다."

 임금이 말했다. 

 "재상의 자리를 빼앗았으니 이미 징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성종실록, 재위 8년 7월 18일)


 다음날, 종 3품 사간원의 사간(司諫)이 다시 아뢰었다.

 “《대전(大典)》에 공신으로 파직된 자는 1년을 경과하여야만 서용(敍用)하게 되었거늘, 이제 서거정은 파직된 지 오래지 아니하여 다시 서용하였으니, 법에 위배됨이 있습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7월 19일)

 대전은 경국대전을 말함이고, 서용은 죄를 지어 면직되었던 사람을 다시 벼슬자리에 등용하는 것을 뜻한다. 


 임금이 말했다. 

 "법은 그러하지만, 이 사람을 어찌 끝내 임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신을 대우함에 있어 어찌 일반 백성과 같이 할 수 있겠는가?"

 정 4품 사헌부 장령이 나서서 사간원 사간을 거들었다. 

 "법은 백성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법이 한 번 정해지면 군주라도 사사로이 집행할 수 없습니다. 서거정이 비록 쓸 만한 인물이라 하나 법을 지켜서 1년이 지난 시점에 서용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7월 19일)


(성종은 사간원의 반대에 어떻게 대응할지, 또 재상과 권세가들의 비리를 누가 어떻게 밝혔는지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조선 사신단 그림 사진 출처)

https://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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