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치를 기대하다 (5)

공주의 새 집을 너무 사치스럽게 짓고 있습니다

by 두류산

5장


임원준은 분해하며 임사홍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임사홍은 아버지가 젊은 처조카에게 망신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런 괘씸한! 나이도 어린것이 어찌 연로한 사돈을 모욕하는 것인가.”


임원준은 보성군을 만나 이심원을 만난 결과를 전해주었다.

“심원이 말하기를, 조부로 하여금 성녕대군의 후사를 잇게 하는 것은 증조부 효령대군의 뜻이 아닌데, 어찌 부친의 뜻을 어기고 조부가 제사를 받들고자 하겠습니까 했습니다. 심원은 면전에서 나를 나무란 셈이오.”

임원준이 혀를 차며 말하자, 보성군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1477년 성종 8년 10월, 도성에는 임사홍의 아들과 며느리인 공주가 거처할 집을 짓는데, 대궐 같은 규모라고 수군거렸다.

“공주의 집은 최고로 지어야 50칸이라고 법에 정해져 있다던데, 무슨 요술을 부리는지 100칸도 넘게 보이는 대궐이야.”

“임사홍이 아들 집을 대궐 수준으로 짓는 것은 공주를 등에 업고 권세를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네.”


사헌부 장령 구자평은 감찰과 소유(所由)를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게 했다. 소유(所由)는 사헌부 감찰의 업무를 뒷받침하며 정보를 수집하거나 죄인을 잡아들이는 일을 맡아보던 직책이었다.

구자평은 경연에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현숙 공주의 집은 매 칸에 앞 뒤 퇴(退)가 있어서 넓기가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습니다. 칸수만 고려하면 비록 법을 어기지는 않았으나 공주 집의 한 칸은 다른 집의 대여섯 칸의 크기를 넘습니다.”


사간원 헌납 안침이 구자평을 거들었다.

“공주의 집만 그럴 뿐이 아니라, 위로 공경으로부터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투어 집을 크고 웅장하게 짓는 것을 숭상하니 사치하는 풍습을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칸의 크기인 척수(尺數)를 제한하여, 마음대로 크기를 늘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칸의 수가 법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데, 어찌 다시 칸의 크기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있겠는가? 사헌부에서 규찰하기에 달려 있다. 공주의 집은 완성된 부분은 지난 일이니 허물할 것이 없고, 완성되지 않은 것은 마땅히 물어서 사치하여 법을 어기지 않도록 하게 하라.”


당시의 법은 집의 규모를 크게 하여 사치와 화려함을 쫓는 것을 경계하여 신분에 따라 집 칸수를 규제하고 자재와 장식에도 제한을 두도록 하였다. 경국대전에는 왕의 적자인 대군(大君)은 60칸, 왕자나 공주는 50칸, 옹주와 종친, 2품 이상의 문무관은 40칸, 3품 이하면 30칸, 일반 백성은 10칸으로 신분별로 지을 수 있는 최대 크기를 정했다.


칸은 대개 기둥 두 개 사이로 이루어진 공간을 가리켰다. 따라서 칸에는 절대적인 크기가 없고 같은 한 칸이라도 크기는 다양했다. 퇴(退)는 칸 안에다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조금 좁은 칸을 퇴라고 하였다. 건물의 내부를 일정한 간격으로 갈라서 사이를 나누는 칸에다 퇴를 여러 개 세우면 칸을 훨씬 넓게 하여 규모가 큰 집을 지을 수가 있었다. 칸수를 제한하여 집의 크기를 제한하는 법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편법으로 퇴(退)를 중간에 넣어, 칸의 크기를 넓게 하여 집의 규모를 다투어 키우려 하자, 칸수만이 아니라 칸의 크기도 제한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 것이었다.


대사간 임사홍은 경연에서 대간들이 공주의 집을 거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에 불이 났다. 들고 있던 붓을 두 손으로 꺾으며 신음을 토했다.

“사헌부 장령과 본원의 헌납이 감히 공주의 집을 거론해? 간이 배밖에 나온 자들이 아닌가.”


대사헌은 사헌부 장령이 공주의 집 규모에 대해 비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임금의 사돈인 임사홍에게 민망하였다.

‘임사홍은 필시 장령이 나에게 허락을 맡고 이야기한 것으로 오해할 것이야.'

대사헌은 사간원을 방문하여 임사홍을 찾아 변명하였다.

“미안하게 되었소. 장령이 공주에 관련된 일을 미리 의논도 안 하고 주상에게 고할 줄은 미처 몰랐소.”

대사헌이 변명하니 임사홍이 말했다.

“사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간들이 우리와 의논도 안 하고 합의되지도 않은 사항을 마음대로 말하니, 이러한 버릇은 자라게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다음날 두 사람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리들을 모두 조방(朝房)에 불러 모았다. 조방은 조정의 신하들이 조회 시간을 기다리며 대기하던 방이었다. 조회가 없는 날에는 관청별로 회의실로도 활용하였다.

대사헌과 대사간은 대간들이 동료들과 의논하지 않고 단독으로 말한 일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질책했다. 먼저 임사홍이 정언 권경우를 지목하며 말했다

“권 정언은 주상에게 진언할 때, 왜 동료들과 의논하지 않고 홀로 말하는 것이오?”


임사홍은 이어서 사간 김계창을 질책했다.

"김 사간은 몇몇 사람을 지방 수령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논하였는데, 어찌 이런 일을 동료들과 의논하지 않고 단독으로 말하는 것이오?”

대사간의 나무람에 사간원 간관들의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대사헌 이숭원도 사헌부 대관들을 꾸짖었다.

"구 장령은 현숙 공주의 새집이 화려하다고 비난하였는데, 어찌 동료와 의논하지 아니하고 아뢴 것이오. 문득 생각이 나서 아뢴 것이오?”

임사홍이 거들었다.

“구 장령이 공주의 집을 이야기할 때 본원의 안 헌납도 동료들과 사전 상의 없이 아뢴 것은 마찬가지요. 이런 버릇은 내버려 둘 수가 없는 일이오.”


사간원 헌납 안침이 임사홍의 말에 발끈하였다.

“대간들이 장관(長官)과 더불어 의논하지 않고 주상께 말하였다고 꾸짖는 것입니까? 대간으로서 장관에게 질책을 받았으니 마땅히 스스로 피혐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임사홍이 당황하며 안침을 매섭게 쏘아보자, 대사헌이 나서서 말했다.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는가? 꾸짖으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잘하자고 약속하려는 것뿐이다.”


대사헌과 대사간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안침, 권경우 등 젊은 대간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들은 따로 모여 대책을 의논하였다.

“주상께 간한 일로 공공연하게 질책을 당했으니, 대간의 직책을 유지하기가 민망한 일이오.”

“사헌부와 사간원의 장이 대간들을 이토록 가볍게 보아도 되는 것입니까?”

“주상에게 나아가 피혐(避嫌)을 청하며 부당함을 아룁시다.”


피혐은 잘못이나 죄과에 대해 탄핵을 받은 벼슬아치가 일단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벼슬을 내려놓는 것을 말했다. 조정의 관리들은 대간 등에게 탄핵을 당하면 혐의가 풀릴 때까지 벼슬을 사직하는 것이 관례였다.


대간들은 임금에게 나와 부당함을 아뢰었다.

"대사헌 이숭원과 대사간 임사홍이 신들에게 동료와 의논하지 아니하고 단독으로 아뢰었다고 비난하니, 청컨대 피혐하게 하여 주소서.”

“무슨 일인지 자세하게 말해보라.”


사간 김계창이 나섰다.

"신들이 경연에서 정윤증 등이 고을 수령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간하였는데, 이숭원과 임사홍이 신들에게 동료와 의논하지 아니하고 아뢰었다고 힐책하니, 청컨대 피혐하게 하여 주소서.”

사간원의 안침도 나서서 아뢰었다.

"신이 경연에서 장령 구자평과 더불어 현숙 공주의 새집이 규모가 크고 화려한 사실을 논하였는데, 이숭원과 임사홍이 신들에게 동료와 더불어 의논하지 아니하고서 아뢰었다고 하면서 이를 책망하니, 청컨대 피혐하게 하여 주소서.”


성종은 안침의 말에 낯빛이 어두워졌다.

'대사간이 며느리인 공주의 집을 짓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 기피하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러한 일로 대간들을 꾸짖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 아닌가?'


임금은 승정원에 명하여 대사헌과 대사간을 불러서 대간들이 집단으로 사직을 원하는 일의 연유를 물어보고 보고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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