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책을 당한 대간들이 모두 임금에게 사직을 청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임사홍은 당황하였다. 곧바로 사헌부의 이숭원을 찾아 이 일을 의논했다.
“영공과 나는 대간들을 나무란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의논하여 말하자고 한 것뿐입니다.”
대사헌 이숭원은 임사홍이 말한 뜻을 알았다.
승지들은 임금이 명한대로 대사헌과 대사간을 불러 일의 연유를 묻자, 대사헌이 먼저 대답하였다.
"일이 급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대개 동료들과 의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단독으로 아뢰는 것은 불가(不可)하다고 말하였을 뿐입니다."
이어서 임사홍도 변명하였다.
"대간이 경연에 들어가서 말하면 주상께서 반드시 동료들과 의논하여 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의논이 없었는데 홀로 말하니 어찌 올바르겠습니까? 대간들이 지닌 소견을 동료와 더불어 의논하지 아니하고 홀로 아뢴다면, 폐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들이 대간들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단지 동료들과 의논하여 말하자고 약속한 것뿐입니다.”
대간들은 대사헌과 대사간의 변명에 반발하였다. 임금에게 다시 나아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시위했다.
"신들이 단독으로 아뢴 말에 대해, 전일에는 이숭원과 임사홍은 모두 가(可)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주의 일을 말하고는 틈이 생겨서 면전에서 질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들은 감히 직무를 행할 수가 없습니다.”
성종은 대간들의 말을 듣고 말했다.
"양사의 장은 대간이 단독으로 아뢴 것에 대하여 가(可)하다고 하다가, 나중에 불가(不可)하다고 명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또한 대사간이 공주의 집을 짓는 일을 말했다고 개입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미 저물었으니, 내일 대사헌과 대사간을 함께 불러, 옳고 그름을 가리도록 하겠다.”
다음날 성종은 이숭원과 임사홍을 어전에 불러 물었다.
"대사헌은 대간들이 아뢴 것에 대하여 처음에는 가(可)하다고 하다가, 지금에는 불가(不可)하다고 하는 것은 어째서이며, 대사간이 공주의 집을 짓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 기피하지 아니하고 하료(下僚, 낮은 직책에 있는 동료)를 책망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대사헌이 먼저 아뢰었다.
"신은 대간이 간한 말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더불어 의논하지 않고 아뢰었기 때문입니다. 신이 임사홍과 더불어 이것을 말하였더니, 임사홍도 신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신들이 다음날 약속하여 조방(朝房)에 모였는데, 먼저 여러 동료들에게 묻기를, ‘무릇 간쟁할 일을 같이 의논하여서 할 것인가? 각각 스스로 아뢸 것인가?’고 물으니, 일부 대간은 ‘같이 의논하여서 아뢰는 것이 가(可)하다.’고 동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안침은 말하기를, ‘우리들이 장관(長官)과 더불어 같이 의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말하였다고 하여 우리를 꾸짖는가? 우리는 마땅히 스스로 피혐해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임사홍도 이숭원의 말을 거들며 아뢰었다.
"대사헌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는가? 꾸짖으려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려는 것뿐이다.’고 하였으나, 안침은 듣지 않고 피혐하였습니다. 말이 전달되는 사이에 오해가 있었습니다."
임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서로 책망한 것이 아니라, 약속한 것뿐이로다.”
임금은 승정원에 명하여 사직을 청한 대간들도 어전으로 부르게 하였다. 임금이 대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꾸짖은 것도 아니고 서로 약속을 한 것인데, 하관(下官)이 불평한 것은 어찌하여서인가?”
안침이 나서서 아뢰었다.
"큰일이 아니면 양사의 대간이 한꺼번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약속을 하는 일이라면 각각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하여도 가(可)할 것입니다. 어제의 모임은 신들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 이숭원과 임사홍이 처음에 비난하는 말이 없었으나, 오로지 공주의 저택을 말하자 모임을 가졌습니다.”
임금이 임사홍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사간은 공주의 집을 짓는 일에 대하여 어찌하여 스스로 기피하지 아니하였는가?”
임사홍은 안침을 향한 싸늘한 눈빛을 급히 거두고 아뢰었다.
"공주의 집은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구자평이 함부로 아뢰었기 때문에 신이 말했습니다. 옛날에 자기 아들을 천거한 자도 있었는데, 신이 공주의 일에 어찌 기피하여 말하기를 꺼려하겠습니까?”
임사홍이 뜻밖의 말에 입시한 승지가 놀라 임사홍을 쳐다보았다.
‘저런 발칙한 말이 있나!’
임금은 임사홍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대간들이 단독으로 말한 것을 일일이 지적하여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같이 의논하지 아니하였으면 홀로 아뢰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같이 의논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안침은 임사홍의 말에 참지 않고 반박했다.
"같이 의논하는 폐단도 또한 어찌 작다고 하겠습니까? 반드시 같이 의논한 뒤에 아뢴다면 사사로이 이를 저지하는 자도 있을 것이므로, 아랫사람이 말을 다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임금이 정색하고 반발하는 대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상관(上官)과 하관(下官)이 서로 용납을 못하고 있구나."
대간들이 어전에서 물러가자, 승지들이 나서서 아뢰었다.
"임금의 앞에 있더라도 마땅히 각각 자기 뜻을 말하여야 하는데, 임사홍이 하료(下僚)를 억눌러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니 무례한 것 같습니다. 청컨대 임사홍을 국문하게 하소서.”
"그의 태도가 본래 그렇다. 과인은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성종은 임사홍을 변명하여 국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임사홍이 며느리인 공주의 사치스러운 집을 대간이 지적한 것을 시비 삼은 것을 나쁘게 여겼다. 임금은 대사간 임사홍과 함께 대사헌 이숭원도 동료들과 화합하고 협력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대간의 장(長)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공주의 분에 넘치는 집으로 인해 벌어진 대간들 간의 문제는 성종의 현명한 인사(人事)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 일은 심지에 불이 붙지 않은 뇌관으로 남아 있다가 훗날 다시 점화되었다.
이심원은 조회에서 축수재 폐지를 주장할 때, 임금이 이를 받아들일듯하여 기대에 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임금으로부터 아무런 명령이 떨어지지 않으니 실망스러웠다. 이심원은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오랫동안 가고 싶어 했던 개성의 선죽교(善竹橋)를 방문했다. 이심원은 절의와 충성의 상징인 정몽주 선생의 학문을 이어받았기에 돌아가신 현장을 둘러보고 싶었다.
개성의 자남산 남쪽 자락에 있는 선죽교는 돌로 된 다리였다. 놀랍게도 선죽교를 건너면서 보니 다리 가운데 핏빛 붉은색 자국을 가진 돌이 보였다.
‘필시 저 자리에서 참변을 당하신 것이리라!’
다리를 받치고 있는 평평한 돌 위의 붉은빛은 실로 선생의 혈흔처럼 보였다.
선죽교는 원래 선지교(善地橋)라 불렸는데, 정몽주가 피살되던 날 밤 다리 옆에서 대나무가 솟아 나와, 그날 이후 선죽교로 고쳐 불렀다고 했다.
이심원은 선생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태조가 선생님을 지극히 아꼈기에, 만약 마음만 바꾸었다면 개국공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끝내 죽음을 택함으로써 후세에 절의를 지킨 충신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이심원은 선죽교의 혈흔 자국에 절을 하며 다짐했다.
"조사(祖師)님의 학문을 이어받은 이심원이 찾아와서 절을 올립니다.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언제나 임금과 나라에 충(忠)을 앞세우겠습니다."
이심원은 참배를 마치고 개성 관아로 향했다. 개성유수는 부친 평성도정과 친구여서 아버지의 안부도 전해드려야 했다. 선죽교에 가까이 있는 개성 남대문을 들어서며 개성 관아로 향했다.
남대문을 들어서니 풍악소리가 들리는데 사람들이 길에 도열하여 구경하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화려한 옷을 입은 자들이 개성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한양에서 온 국무당(國巫堂) 무리였다. 개성 송악산에 왕실의 복을 빌러 왔다고 했다. 국무당이 궁녀와 환관, 악기를 다루는 자들과 노래 부르는 자들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거리를 들썩거리면서 행차하고 있었다. 선죽교에서 받은 맑은 기운이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개성유수를 만나 인사하니 객관에서 잔치가 있다고 참석하라고 했다. 곧이어 국무당과 거리에 행렬을 이루는 무리들이 들어와 노래하고 춤추고 연회를 하였다. 개성유수가 국무녀(國巫女)와 마주 보고 더불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심원이 개성유수에게 은근히 핀잔을 주며 말했다
“정 2품의 대신께서 어찌 무녀와 어울려 춤을 추시는 겝니까?”
“주상을 위하는 일인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이심원은 개성유수의 말에 혼자 중얼거렸다.
“무당의 거짓되고 요망함을 알면서도, 좌도(左道, 옳지 못한 도)에 의지하여서 하늘의 은택을 바라는 것이 어찌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종은 이심원이 제기한 축수재 폐지에 대해 대비들에게 여쭈었다.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단호하게 반대했다.
“사대부 집안에서도 조부가 정한 법도는 자손이 함부로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세조께서 정하신 것을 어찌 주상께서 쉽게 파할 수 있겠습니까?”
할머니인 정희대비도 며느리의 말을 거들었다.
"당나라 헌종은 군주를 오래 살기 위한 것이라면 한 주(州)의 인력을 번거롭게 하더라도 무엇을 아끼겠는가 하고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축수재는 국왕의 수명과 복을 비는 일이니 어찌 없앨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말이 감히 조회에서 나오는 것은 주상께서 지나치게 어지신 탓입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으나, 축수재는 폐지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