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대비들이 완강하게 반대하자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고 대비전에서 나왔다. 성종은 축수재의 폐지 문제를 다시 정승들에게 물었다. 정승들은 이구동성으로 임금의 수명을 비는 일이니 유교의 가르침에 안 맞더라도 폐지할 것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축수재는 예전대로 거행하게 하였고, 성수청의 수리도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
경연에서 경서를 강의하는 정 5품 시독관(侍讀官) 안침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전하의 생일에 중(僧)이 복을 비는 것은 지극히 무리한 일이니,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전일에 주계부정이 축수재의 그릇됨을 극력 간하니, 주상께서 이를 좋게 여기셨으나 그 말을 시행하시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은 속히 폐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안침은 사간원 헌납에서 홍문관 교리로 자리를 옮겨 경연의 시독관을 겸하였다. 경연관은 당상관과 낭청(郎廳)으로 구성되었다. 당상관은 정 1품 영사 3인, 정 2품 지사 3인, 종 2품 동지사 3인, 정 3품 참찬관 7인이었다. 영사는 삼정승이 겸했고, 참찬관은 여섯 승지와 홍문관 부제학이 겸직하였다. 낭청은 경연청에 경서를 강의하는 정 4품 시강관(侍講官)과 정 5품 시독관(侍讀官), 그리고 경연을 준비하는 정 6품 검토관(檢討官), 정 7품 사경(司經), 정 8품 설경(說經), 정 9품 전경(典經)이었다. 정 4품 시강관 이하는 홍문관 관원들이 겸직하게 하였다. 또, 별도의 경연 특진관을 문·무 2품 이상 관원 중에서 선임하여 경연에 참여하게 하였다.
임금은 대비들께서 축수재에 대해 하신 말이 생각났다. 성종은 경연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저 군주의 수명과 복을 구하는 일에 대해 신하가 되어서 감히 간(諫)하기는 어려운 일임을 과인도 알고 있다. 목숨이 길고 짧은 것은 정해진 바인데, 어찌 기도로써 목숨을 연장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대비전에서 극구 반대하시니 어쩔 수 없다.”
안침은 다시 나서서 아뢰려고 하다가 멈추었다.
'주상께서 이심원이 어려운 간언을 했음을 밝히시고, 축수재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도 어쩔 수 없다 하시니.....'
안침은 임금이 효심이 뛰어나 대비전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심을 아는 터라 더 이상 말하기가 어려웠다.
성종 8년 10월, 전 성균관 교수 백훈(白勛)은 임금에게 유생들의 복식에 관한 청을 올렸다.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은 서울의 길거리에서는 청색 깃의 예복인 청금(靑衿)과 두건을 착용하여 구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임금은 이것을 좋게 생각하였다. 임금이 경연에 참여하여 대신들에게 의견을 들어보았다.
"성균관 교수였던 자가 말하기를, 유생은 마땅히 그 복식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영사(領事) 김국광이 아뢰었다.
"선왕께서도 일찍이 이를 시행하고자 하였으나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유생으로 하여금 다른 복식을 입게 한다면 성균관에 거(居)할 자가 적어질 까 우려됩니다.”
성종이 말했다.
"유생이 구별하는 옷을 입는 것을 꺼려한다면 이것은 성인(聖人)의 도를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뜻을 세우고 학문을 하는 자는 반드시 꺼려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오. 유생으로 하여금 복식을 구별하고자 한다면 장차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지사(知事) 이극배가 절충안을 내놓았다.
"유생이 길거리에서 청금(靑衿)을 입고 두건 대신에 일반 갓을 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그게 좋겠소.”
임금은 곧바로 예조에 명을 내렸다.
"금후로는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은 서울의 길거리에서는 청색 깃의 예복을 반드시 착용하도록 하라.”
이심원이 남효온의 집을 방문하였다. 남효온은 이심원을 반갑게 맞으며 손을 잡고 방으로 이끌었다. 남효온이 이심원에게 물었다.
“개성은 잘 다녀오셨는가?”
“정몽주 선생이 참변을 당한 선죽교를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네. 하지만 개성에서 못 볼 것도 보았네.”
남효온이 궁금해 하자 이심원은 탄식을 하며 말을 이었다.
“개성 송악산에 주상의 수명과 복을 빌러 왔다고, 국무당(國巫堂)이 궁녀와 환관, 악공, 광대들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거리를 떠들면서 행차를 하고, 공관(公館)에 들어가서도, 노래하고 춤추고 연회를 하였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은 개성유수는 2품의 대신인데도 국무녀(國巫女)와 마주 보고 더불어 춤을 추면서 말하기를, 임금을 위하는 일이니 이렇게 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고 하였네.”
남효온은 악습의 폐단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한심하였다. 이심원은 남효온의 찡그린 표정을 보고 말했다.
“태종께서는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은 운수가 있는데 어찌 중이나 무당의 기도로서 이루겠는가 하시며 축수재를 폐지하라고 명하셨다고 들었네. 또한 세종께서도 국왕의 생일을 맞아 종친과 대신들이 오래 살도록 기도하는데, 예(禮)에 있어서 옳지 않으니 없애도록 하라고 하셨다고 했는데, 어찌 이런 나쁜 풍습이 다시 살아나 백성의 눈을 현혹하고 있는 것인가.”
술상이 들어오자 남효온은 이심원에게 술을 권했다. 남효온도 이심원에게 술잔을 받아 들며 말했다.
“종친과 재상들이 무릎을 꿇고 부처를 섬기며, 군왕은 부처에 의지하여 수명을 연장하는데, 백성들이야 누구를 본받겠는가. 농사나 장사를 하는 자들은 하는 일을 게을리하고 부처에게 부자가 되도록 기도할 것이요, 귀하게 되고자 하는 자는 귀하게 되도록 빌 것이요, 오래 살고자 하는 자는 오래 살도록 빌 것이네.”
“예전에 스승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나네.”
이심원은 남효원이 따라준 술을 마시고 격하게 말했다.
“임금이 정치를 잘하려고 대신들에게 이렇게 바꾸는 것은 어떻겠는가 하고 물으면, 선대(先代)에 정했던 일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니, 임금이 성군(聖君)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자들은 바로 세조 때부터 정승과 판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훈구대신들이네.”
남효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심원의 말에 동조하였다.
“소학계를 중심으로 유생 몇몇이 청금(靑衿, 푸른 깃의 옷)을 입고 두건을 쓰고 다니니 보기 좋았는지, 성균관에서 주상에게 유생들 청금과 두건을 쓰게 하자는 청을 했다고 했네. 주상께서 처음에는 둘 다 허락하였다가, 나중에 고쳐서 청금만 허락하셨다는 소문을 들었네.”
“이것은 필시 전하의 본뜻이 아니고 훈구대신 누군가가 한꺼번에 다 고쳐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는 없으니 갑작스러운 변화는 불가합니다 하며, 두건은 중지하소서 하고 아뢰었을 것이네.”
남효온이 훈구대신들을 비웃었다.
“훈구대신들의 생각은 몸은 유생의 예를 갖추어도, 머리는 그럴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남효온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하고는 이심원에게 술을 권했다.
“주계는 임금이 귀히 여기는 종친이 아닌가.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아뢰어 주상을 세종대왕 이후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역사에 남게 해야 하네.”
이심원은 남효온의 격려에 입술을 깨물었다.
“《소학》에서도신하로서 충(忠)은 임금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며, 이것이 신하가 추구해야 할 도(道)라고 하였네. 배웠으니 당연히 실천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이심원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현실이 안타까웠다.
‘주상은 지금까지 이룬 것에 만족하지 아니하시고 더욱 나아가려고 하시는데, 좌우에 있는 신하들은 예전의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 그대로이니, 선(善)을 좋아하시는 전하를 가로막는 자들은 좌우의 훈구대신들이다.’
이심원은 임금이 친정체제에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훈구대신들에게 자문을 구해 정치를 하는 것을 답답하게 여겼다. 이심원은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작은 일과 큰일 모두를 고루한 재상들에게 물어서 결정하지 말고 옳다고 믿으면 과감하게 결단하소서! 그들은 주상께서 성군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자들입니다.”
이심원은 궁궐 쪽을 찾아 그쪽을 보며 말했다.
“훈구대신의 말대로 선왕이 만든 법을 바꿀 수 없다고 하여 당장 편한 것만 찾고, 멀리 보는 데에 힘쓰지 아니한다면 이것은 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처리하자는 계책입니다. 이것이 어찌 시대의 폐단을 혁파하려는 계책이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뜻을 세우기를 높게 하시고 옳은 말을 들으시거든 어렵다고 여기지 마시며 결단을 하시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