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치를 기대하다 (8)

고루한 대신들은 옛것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고 변혁은 불가하다고 합니다

by 두류산

8장


이심원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종이와 붓과 먹을 찾았다. 아끼어 평소에 쓰지 않고 넣어둔 벼루도 꺼내었다. 포도나무와 포도송이가 새겨진 귀한 벼루로 증조부인 효령대군이 주신 것이었다. 벼루를 잡고 먹을 천천히 가니, 묵향이 방안 가득히 번졌다.


이심원은 눈을 감았다.

‘주상께 간언한 것이 비록 여러 차례 있었으나, 아직 한 번도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과연 이번 상소는 받아들이실까?’

이심원은 눈을 뜨며 다짐했다.

‘이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어찌 마음속에만 지닐 수 있겠는가. 종친으로서 조금이라도 할 말이 있으면 대신들이 헐뜯고 욕하더라도 하는 것이 나의 도리이다.’


이심원은 붓을 들었다. 임금이 성군(聖君)으로 요순시절을 이 땅에 실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신은 종친으로 은혜를 외람되게 입었으므로, 나라를 사랑하고 군왕을 향한 견마지성(犬馬之誠)에서 매양 말할 만한 것이 있으면 너무 간절하여 참지를 못하겠습니다. 이것이 조정에 있는 신료들이 신(臣)을 모욕하고 헐뜯으며 미쳤다고 하고 분수를 모르고 지나치게 나선다고 하는 까닭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광망(狂妄)하고 지나친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신의 진실하고 정성스러운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살펴 주시옵소서.”


이심원은 나라와 임금을 위하는 마음을 담아 네 가지 계책을 아뢰었다. 이심원은 가까운 종친으로서 임금이 후궁들을 자주 찾고 가까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금이 무척 싫어하겠지만 그 일을 첫 번째로 간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이(程頤)가 이르기를, 군주가 하루 중에 사대부를 접견하는 때가 많고 환관과 궁녀를 가까이하는 때가 적으면, 자연히 기질이 덕(德)스러운 품성을 성취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에 성군들은 신하들과 정치를 의논하다가 물러나면 작은 방으로 가서 일에 집중하고 궁중 깊숙한 곳에 머무르지 아니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주들은 그렇지 못하여 궁중 깊이 거(居)하니, 항상 더불어 거처하는 자가 환관과 후궁의 무리였으며, 항상 보고 듣는 것이 실없는 농담이나 저속한 일이었습니다.”


정이(程頤)는 형 정호(程顥)와 더불어 중국 송나라 도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성리학 원류의 한 사람이다. 염계(濂溪) 주돈이의 학문이 정호와 정이 형제를 거쳐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것이 성리학이다.


이심원은 성군이 된 임금의 모습을 상상하며 붓 끝에 힘을 주었다.

“신(臣)은 전하께서 작은 침실을 선정전(宣政殿) 뒤쪽에 짓도록 명령하시어, 마음에 새기고 경계할 만한 글을 골라서 좌우에 걸어 놓고 병풍을 설치하소서. 경전과 사서(史書)의 서적도 좌우에 배치하여 쌓아 두고 정사(政事)를 돌보는 여가에 항상 이곳에 거처하시되, 반드시 옷깃을 여미고 꼿꼿이 앉아서 때때로 글을 익히고, 혹은 정사를 생각하기도 하소서. 또한 경연관과 여러 신하들 가운데 한두 사람을 불러 예(禮)로 우대하고 편안하게 이야기하시며, 새로 임명된 관리가 부임하기 전에 임금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가는 자나 외직을 마치고 들어오는 자가 있거든 품계가 높고 낮은 것을 논하지 말고 모두 접견을 하소서. 이와 같이 하시면, 충성스러움과 간사함이 구별되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이심원은 붓을 멈추고 상상하였다. 주상이 자신이 건의한 대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나라는 절로 태평성대가 되리라 믿었다. 이심원은 풍습을 바로 잡으려면 축수재 폐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화와 복은 모두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어찌 선한 일을 하지도 않은 자가 귀신에게 아첨하고 기도하였다고 복을 얻을 수 있겠으며, 또한 악한 일을 하지도 않고 바르게 살았는데, 어찌 귀신에게 기도하지 않았다고 화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심원은 다음 계책으로 축수재 폐지를 다시 간곡히 청했다.

“군왕의 탄생은 실로 천명을 받은 것입니다. 덕을 닦고 정사를 행하여 억조창생들을 편안하게 구제한다면, 재앙을 멀리하고 수복을 비는 기도하기를 어찌 수고롭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심원은 나라를 위하고 임금이 성군이 되는 세 번째 계책으로 음사의 폐지를 아뢰었다.

“전하께서 이미 무당들을 모조리 성 밖으로 쫓아내고, 선비와 일반 백성들의 집에서 음사를 행하지 못하도록 하시고, 이를 어기는 자는 벌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 행해지지 아니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이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이심원은 네 번째로 유생들의 의관(衣冠)을 아뢰었다.

“유생은 예(禮)의 모범인데, 유생이면서도 예를 지키지 않는다면 예가 어떻게 행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의관을 바르게 하고 글을 배우고 항상 스스로 조심하여서 예를 지켜야 합니다. 듣건대, 성균관에서 전하께 유생들로 하여금 길거리에서는 두건을 착용하고 청금(靑衿)을 입고서 다니도록 하라고 청하니, 전하께서 처음에는 이를 허락하시었습니다. 이후 다시 명령하시기를, 청금(靑衿)만 입도록 하시고 두건은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몸은 유생이 되어야 하지만, 머리는 유생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심원은 붓끝의 먹을 조절하고 다시 붓을 종이에 대었다.

“신이 듣건대, 태종께서 이러한 유생의 의관을 행한 것인데, 이후 폐지되었습니다. 고루한 대신들은 일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모두 옛것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고, 변혁시키는 것은 불가(不可)하다고 합니다. 태종께서 이미 행하신 조처를 가지고 세상을 놀라게 하고 풍속을 놀라게 하므로, 본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까?”


이심원은 임금이 성군(聖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소를 마무리했다.

“나라를 일으키고 나라를 잃는 이치가 모두 서책(書冊)에 실려 있으니, 나라를 위하는 계책을 신이 어찌 더 보태겠습니까만, 오직 네 가지 일만을 조목별로 열거하여 올리는 바입니다. 전하께서는 헤아려 살피옵소서.”


성종은 승지가 올린 이심원의 상소를 펼쳤다. 형님인 월산대군과 같은 나이인 이심원과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왕래를 하여 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신들이 과격하다고 나쁘게 말하여 걱정이었다. 이심원이 조회에서 축수재를 폐지하라는 제안을 한 후에 정승들이 한 말이 떠올랐다.

“주계부정이 조회에서 지나치게 거칠게 말하고 심지어 정승을 능멸한 것은 이름을 날리고자 함입니다. 이런 버릇은 자라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종은 이심원의 상소를 읽다가 ‘나라를 위해 네 가지 계책을 올린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성종은 첫 번째 계책을 읽으니, 따로 별전을 지어 정사에 집중하고 궁중에 깊숙이 머무르지 말라는 제안이었다. 두 번째 계책은 축수재 폐지였다.

“지금 훈구대신과 종친들이 함께 주상의 수명과 복을 비는 것이 으레 하는 일로 되었으나, 마음으로 요망한 일이라 생각하고 무의미한 것을 알고서 하는 짓이니, 아첨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찌 이것이 임금을 정성으로 섬기는 도리이겠습니까?”


성종은 이심원이 정승 윤자운을 조정의 신하 앞에 당당히 나무라는 장면이 생각났다.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아첨하는 말을 기뻐하지 마시고, 중과 무당이 요망하게 기도하여 현혹하는 일을 일절 금지하소서. 신이 전에 조회에서 아뢸 때에 대략 이러한 뜻을 가지고 천총(天聰)을 번거롭게 하였는데, 그때 자리에 있던 자들이 말하기를, 만수무강을 부처에 비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위하는 일인데, 비록 정도(正道)가 아니더라도 고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서는, 이것은 군자가 도(道)로써 임금을 섬기는 말이 아닙니다. 신하가 되어서 임금에게 수복(壽福)을 평안히 누리도록 바라는 것은 곧 인지상정이지만 어찌 예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불상에 아첨하여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은 축수재 폐지는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대비전에서 과인의 수명과 복을 원해 치성을 드리기를 원하시고, 이미 대비들께서 폐지는 불가하다고 하셨는데, 이것을 억지로 폐지한다면 어찌 효심이라고 할 수 있겠나.’


성종은 이심원의 상소를 다 읽고 승지들에게 말했다.

"주계부정의 상소 중에 따로 전(殿)을 지어서 사대부를 맞이하도록 하자는 말이 있는데, 내가 하루에 세 차례 경연을 열고 밤에도 편전에서 사대부를 접견하는데, 어찌 별전(別殿)을 다시 지어야 하겠는가? 또 축수재와 성수청은 선대부터 행한 지 이미 오래되는데, 갑자기 혁파하기가 어렵다. 심원이 들어줄 수 없는 제안을 하는데, 이름을 날리고자 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좌승지 신준이 대답하였다.

"전일 조회에서 심원이 이일을 아뢰었는데, 감히 말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진실로 훌륭하다고 하겠습니다. 오로지 성상께서는 그 말이 옳다면 취하시고, 옳지 않다면 버리시면 될 일입니다.”


신준은 신숙주의 다섯째 아들로 성종 1년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병조참의를 거쳐 승지로 발탁되었다. 좌부승지 손비장도 신준을 거들었다.

"불교의 나쁜 점을 신이 대간이었을 때에도 일찍이 논하였습니다. 심원의 이러한 말은 잘못된 점이 없습니다."


성종은 승지들이 정승들과는 달리 모두 이심원을 칭찬하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임금은 이심원을 따로 불렀다.

“심원을 입시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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