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선대의 제도라고 구애받지 않고 형편에 따라 소신대로 고쳐야 합니다
이심원이 어전에 도착하여 예를 갖추자, 성종은 상소 내용을 말했다.
"경이 축수재 폐지 등을 일찍이 조회에서 말하였는데, 지금 또 이를 말하니 과인이 가상하게 여긴다. 하지만 축수재 시행은 세조께서 시작한 것이고 이를 행한 지 이미 오래된 것이 아닌가.”
임금은 상소를 다시 펼쳐 내용을 짚어가며 말했다.
“그리고 선정전 뒤에는 전(殿)을 지을 장소도 없으며, 또 날마다 경연에 나아가니 아랫사람의 뜻이 상달되지 못한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한 성수청을 고치는 일은 과인이 원한 것이 아니다.”
임금은 펼친 상소를 접으며 이심원에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들어줄 수 없는 말은 아예 하지도 말라!”
이심원은 임금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들어 아뢰었다.
“신하 된 자가 임금에게 진언(進言)함에 어찌 들어줄만한 것만 골라서 말하겠습니까? 성상께서 축수재는 세조 대왕께서 시작하신 것이기 때문에 감히 혁파할 수 없다고 하시니 신은 답답합니다. 또한 성수청을 고쳐 짓는 것은 주상께서 원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신은 전하의 뜻이 아닌 줄 압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주인이 되어서 나라의 책임을 지고 계신데, 전하께서 하신 일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신은 천 년 뒤에 전하가 하신 일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성종이 변명하였다.
“대비전에서 과인의 수명과 복을 원해 치성을 드리기를 원하시고, 말려도 듣지 않으신다. 이것을 정색하고 억지로 말리면 불효가 되니 어려운 일이다.”
“전하께서는 《주역》에 나오는 어머니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내용을 본받아야 합니다. 오로지 지성으로써 감동시키면, 은혜를 상(傷)하게 하지 아니하고 궁내의 다스림이 저절로 엄하게 될 것입니다.”
이심원은 말을 이었다.
“대저 의관이 바르지 못하면서도 능히 마음을 바로 가지는 자는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유생들의 의관을 법으로 엄하게 하여 풍속을 바로 잡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성명(聖明)한 군주로서 소신대로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마음먹은 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면, 마땅히 옛것과 지금의 것이나 낡은 것과 새것에 구애받지 않아야 합니다. 오로지 형편에 따라 시대와 알맞게 맞추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심원은 잠시 멈추었다가 작심하고 진언하였다.
“제(齊) 나라 환공이 곽 나라가 무슨 까닭으로 망했는가 하고 물으니, 선(善)한 이를 좋게 여기면서도 능히 쓰지 못하였고, 악(惡)한 이를 미워하면서도 능히 버리지 못한 것이 나라를 망친 까닭이라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후세의 사관이 이를 두고 말하기를, 혹시 알지 못하는 자에겐 기대해 볼 수도 있으나,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아니하니, 이것이 군자는 세상을 피하여 은거하고, 소인은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꺼리는 바가 없는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주상께서 유의하신다면 국가가 심히 다행할 것입니다.”
입시한 승지들은 이심원의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며 불안하였다. 임금은 다소 노한 어조로 물었다.
“과인이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않으니, 조정에는 군자는 은거하여 없고 소인만 마음대로 날뛴다고 하는 것이냐?”
이심원은 고개를 들어 임금에게 아뢰려다 승지 신준이 이미 어두워지는 하늘을 가리키며 말리는 눈짓을 하자, 말을 거두었다.
성종은 이심원에게 상소를 돌려주며 경고성 당부를 하였다.
“할 수 없는 일을, 뒤에는 다시 말하지 말라!"
성종은 이심원에게 극진한 내용으로 상소를 올린 상으로 표범가죽 한 장을 내려 주면서 한 번 더 경고했다.
“축수재는 세조께서 개설하신 것이기 때문에 손자가 되어 감히 혁파할 수 없다. 너의 말은 들어줄 수 없으니, 앞으로는 들어줄 수 있는 말이 아니면 아뢰지 말라.”
이심원이 다시 나서서 아뢰려고 하자, 승지 신준이 소매 끝을 살짝 잡으며 제지했다. 말하기를 포기하고, 표피(豹皮)를 받아 들고 어전에서 물러나오니 날이 어둑어둑했다. 이심원은 어전을 나와서 어두워진 궁궐의 하늘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이심원은 궁궐 문을 나서 육조거리에 들어섰다. 오른편에 예조의 건물이 보였다. 전 대사간에서 예조참의로 자리를 옮긴 고모부 임사홍을 찾았다. 임사홍은 막 퇴청하려는 참이었다. 이심원은 임사홍에게 자신이 올린 상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임금의 가까운 신하이면서, 어찌하여 주상이 성군이 되도록 힘껏 도우지 않으십니까?”
임사홍은 처조카 이심원이 평소 성격이 괄괄하여 따지기를 잘하고, 자신의 부자를 존중하는 기색이 없어 만나면 편하지가 않았다. 더구나 부친이 성녕대군의 대를 잇는 문제를 이심원과 상의하였다가 면전에서 망신을 당한 이후로 원망이 깊었다. 임사홍은 상소의 말미에 있는 임금의 답을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줄 수 없는 말이면 뒤에는 다시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주상께서도 상소가 지나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신 것이야. 더구나 이제 대간의 직책에서도 물러났으니, 임금에게 아뢰는 일은 내 일이 아니야.”
이심원이 말했다.
“고모부께서 대사간 중한 직책을 맡았을 때, 내가 나라를 위한 이 같은 계책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주상께 간(諫)하여 바로잡게 해 달라고 당부했을 때는 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임사홍은 상소를 흔들며 말했다.
“전하께서도 앞으로 다시 아뢰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이것은 주계를 멀리 하고 싶다는 뜻인지 왜 모르는가.”
이심원은 퇴청하려는 임사홍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옳고 그름을 따져보지도 않고 예전부터 하던 제도이면 그대로 두는 것이 고모부도 마땅하다고 보는 것입니까? 임금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충(忠)이며, 이것은 신하라면 추구해야 할 도리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으나 지금 급하게 갈 곳이 있으니,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지.”
임사홍은 건성으로 말하며 벌레를 털어내듯 이심원을 피했다.
임사홍은 집에 돌아와서 아내 이씨에게 경고했다.
“앞으로 주계를 집에 들이는 것을 삼가시오. 주계는 조정에서 미치광이 유생으로 불리고 있소. 주상께서도 그를 싫어하는 것임이 틀림없소.”
이심원은 임금을 알현하여 나눈 대화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임금이 내려준 표피(豹皮)를 보며 중얼거렸다.
“상소에서 말한 계책은 밤낮으로 생각하여 아뢰었고, 별전(別殿)과 축수재에 그치는 것이 아닌데, 주상께서 하나도 채택함이 없으시니 어찌 된 일인가......”
이심원은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하고자, 평소에 높은 학문과 담백한 품성을 흠모해 온 표연말을 찾았다. 표연말은 신입 관원이 선배 관원들에게 성의를 표시하는 의식인 면신례(免新禮) 소동으로 파직되었다가 3개월 만에 벼슬을 회복하여 예문관에 복귀하였다.
면신례 소동은 스승에게 함께 배운 조위가 예문관 검열로 들어왔을 때 재상 조석문의 후원으로 선배 관원들에게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성대하게 대접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는 가뭄으로 인하여 술과 고기를 금하게 하였는데, 이 자리에 함께 했던 표연말도 징계를 당했다.
표연말은 이심원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이심원이 표연말에게 말했다.
"주상께서 축수재는 선왕께서 하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감히 없앨 수 없다고 하시니 안타깝습니다.”
“선대가 정한 것은 고치지 않고 따르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고, 법은 옛것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하셔서 그럴 것이네.”
예문관 봉교이며 사관인 표연말이 이심원에게 귀중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일전에 세조실록을 본 적이 있었네. 세조께서 아드님 예종에게 말하기를, 일은 세상의 변화에 따라야 한다고 하시며, 만일 부왕의 행적이 걸려서 변화에 미흡하다면 소위 둥근 구멍에 네모난 손잡이를 꽂으려는 것처럼 된다고 하셨네. 세조의 가르침은 후대 왕에게 변화에 뒤떨어지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네.”
이심원은 표연말의 말에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것 같았다.
“세조께서 그리 말씀하셨군요. 이제 주상께 다시 아뢸 명분을 찾았습니다.”
이심원은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붓을 들어 또다시 성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신이 상소하여 말한 일에 대해 전하께서는 축수재는 세조께서 개설하신 것이기 때문에 감히 혁파할 수 없다 하시고, 앞으로는 들어줄 수 있는 말이 아니면 아뢰지 말라 하셨습니다. 신은 삼가 그때에 이미 날이 저물어, 감히 다시 성청(聖聽)을 번거롭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신하 된 자가 군주에게 아뢸 때, 어찌 들을 만한 것만 골라서 말하겠습니까? 그것을 듣고 안 듣고는 군주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신하 된 자가 어찌 미리 헤아리겠습니까?”
이심원은 작심하고 아뢰었다.
“세조께서 예종에게 훈계하시기를, 일은 세상의 변화에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조가 하신 일이니 바꿀 수 없다고 하시며, 들어줄 수 없는 일은 아뢰지 말라고 하신 말은 간언을 거부하는 말씀이 아니신지, 신은 삼가 의심스럽습니다.”
이심원은 붓을 먹에 다시 적셨다.
“송(宋) 나라의 재상 조보(趙普)가 일찍이 사람을 천거하였는데 태조가 허락하지 않자, 이튿날에 다시 아뢰니 역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조보가 이튿날에 또 아뢰니, 태조가 크게 노하여 추천장을 찢어발기어 땅에 팽개쳤습니다. 조보가 엎드려서 수습해 가지고 돌아갔다가 찢어진 서류를 다시 붙여 다시 처음과 같이 아뢰니, 태조가 이에 깨닫고 마침내 그 사람을 썼습니다.”
조보는 송나라를 건국한 태조 조광윤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조보의 학문은 논어 반 권을 읽은 것이 전부인데, 명재상으로 천하를 다스리며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후 ‘논어 반 권의 공부’라는 말은 논어의 중요함이나 지식의 겸손함을 표현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심원은 먹물이 종이에 스며드는 것을 바라보다가, 눈을 드니 임금이 하사하신 표범 가죽이 눈에 들어왔다. 이심원은 붓을 들어 승부수를 던졌다.
“신이 조보와는 비록 위치를 견줄 수 없으나, 다만 종친이라는 이유로 감히 말씀드리옵니다. 전하께서 다시 생각해보시고, 만약 채택할 수 없으시다면, 또한 함부로 상을 줄 필요도 없으니, 제게 내리신 하사품을 회수하였다가 공이 있는 자에게 내리소서.”
승지들은 이심원의 상소를 읽어보고 혀를 찼다.
“만약 채택할 수 없으시다면, 상을 줄 필요도 없으니 하사품을 회수하였다가 공이 있는 자에게 내리소서? 감히 주상께서 내린 하사품을 돌려드린다? 주계가 미친 유생이라고 불린다더니, 지나친 말이 아니군.”
좌승지 신준은 이심원의 상소에 오히려 감탄했다.
“주상께서 단단히 경고를 했음에도 두려움 없이 말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참으로 보기 드문 기개 있는 선비가 아닌가.”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