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우리 민족은 예전부터 가무(노래와 춤)에 능한 민족이었으니, 뮤지컬 영화가 많이 나올 만 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보기 드문 한국의 뮤지컬 영화다. 국내 최초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라고 한다. 과거에 인기가 있었던 대중가요를 모아 만든 뮤지컬이니, 관객이 접근하기에 쉬운 영화다. 단단한 영화 스토리에 익숙한 노래와 춤이 가미된다면 잘 만든 파스타에 풍미 가득한 소스가 더해진 맛깔난 영화가 아닐까 기대하게 한다.
어떤 영화일까? 같은 제목의 이태리 영화가 생각난다. 인생의 가장 극한적인 상황에서 인생의 밝은 면을 유머스럽게 다룬 감동적인 영화였다. 아마 이 영화도 현실의 어려움이나 슬픔을 사랑과 웃음으로 이겨내는 영화이리라. 아내와 나는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놓치지 않고 챙겨보기로 했다.
영화를 예매하기 전에 작은 아이에게 물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예매하려는데 재미있을까?”
“엄청 웃기고 울린다고 들었어요.”
“굳.”
귀한 뮤지컬 영화가 재미까지 있다니 금상첨화다.
영화관에 들어갔더니 20대 젊은 관객과 40대 이후의 관객이 반반 정도 되는 듯했다. 영화 초반에는 객석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내와 나도 극장 안의 웃음 물결에 함께했다. 영화 후반에 접어들자,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완전히 올라갈 때까지 아내와 나는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영화관을 나오며 아내는 영화에 만족했다고 했다.
“재미있었고, 많이 웃었어.”
나는 영화 보러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울기도 했어?”
“눈물이 좀 나던데.”
“어느 장면에서 그랬어?”
“엄마 염정아가 세상에 남겨두고 가는 자기 아이들이 잘못하는 점 발견되면 자식처럼 야단쳐 달라고 친지들에게 부탁할 때.”
나도 아내와 같은 생각이다. 엄마 입장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다면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최소한 아이들을 대학까지는 안전하게 건네주고 싶었을 것이 아닌가.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실 뻔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당뇨병이 걸렸는데 당시 합병증으로 돌아가실 수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협심증으로 여러 번 돌아가실 위기를 만났는데, 오뚝이처럼 회복하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으면 영화 속 아이들 같이 험한 세상에 의지할 다리를 잃어버린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아내는 나에게 안 울었냐고 물었다.
“나도 친지들에게 아이들을 부탁하는 장면과 아이들이 엄마가 암에 걸린 것을 알고 통화할 때 울컥하였어.”
아내가 배우들을 칭찬했다.
“염정아 배우, 연기 너무 잘하더라. 한 장면 한 장면 표정을 달리하며..... 류승룡은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고.”
아내는 말을 이었다.
“염정아 여고생 역이 육사오에 나오는 박세완이야.”
“맞아, 옹성우가 첫사랑이고. 북한군의 아이유를 다시 보니 반갑더라.”
연기자들의 노래와 안무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 그들의 노고가 보인다. 카메오로 나온 박영규 배우의 노래도 좋았다. 신신애 배우가 출연하는 것을 보고 대박이라고 느꼈다. 신신애 배우는 연기도 잘하지만 ‘세상은 요지경’을 히트시킨 가수가 아닌가. 근데 왜 신신애 배우에게 노래 부르는 역을 맡기지 않았을까. 아쉬운 점이다.
아내가 영화에 대한 평을 보았더니, 한 비평가는 신파라고 평가절하를 하더라고 했다. 신파가 무엇인가. 감정을 억지로 짜낸다는 것이 아닌가. 요즘 관객은 현명하다. 감독이 관객에게 슬픈 감정을 강요한 연출을 한다고 관객들의 감정이 움직일까. 만일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이 슬픔에 잠기고 눈물을 훔쳤다면 감독이 성공한 것이고 관객도 만족한 영화일 것이다.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인생을 두 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에 느낄 수 있다면 대단한 연출이 아닌가. 최국희 감독은 ‘국가부도의 날’도 연출하였다. 이번에 뮤지컬 영화를 연출했으니 다양한 장르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한 비평가는 영화 속의 군무, 집단으로 추는 춤이 스토리와 잘 동화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파트도 있은 것 같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군무나 군중의 합창이 아닌 독창이나 중창 파트는 스토리와 잘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 스토리 전개를 빛나게 하여 즐긴 군무와 합창도 여러 번 있었다. 강진봉(류승룡)이 아내의 암 판정 소식으로 고민하며 동료 선배(고창석)와 술 먹을 때 선술집에서의 집단 춤과 합창, 여고생 오세연(박세완)과 박정우(옹성우) 등 성가대원들의 군무와 합창이 그 예이다.
죽기 전에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나의 인생은 아름다웠노라 하려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 말기암 판정을 받은 오세연이 강진봉(류승룡)에게 원망을 한다. ‘나 죽는데, 괜찮니? 얼마나 무섭니?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하며 묻지도 않느냐’고. 표현을 안 하고 무심히 산 것이 습관처럼 된 강진봉이다.
영국 시인 로버트 해리의 시 ‘지금 하세요’가 생각난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세요.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세요.
오늘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검은 구름이 밀려올지 모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친근한 맛을 주는 영화다. 생크림을 가득 넣은 빵이 아니라 쌀쌀한 날씨에 입에 가져가는 따끈한 붕어빵 맛이다. 앙코 가득한 붕어빵을 입에 넣으며, 주어진 인생을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