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모아 특별전시전을 개최하는 현대갤러리를 찾았다. 광화문에 사무실이 있는 덕택으로 평일 점심시간을 이용했다. 운 좋게도 유홍준 문화재 청장이 작품 설명을 해주었다.
유 청장이 물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그림을 그린 화가가 누구인지 아세요?”
머릿속에 조선시대의 화가들이 떠올랐다.
‘신윤복, 김홍도 그리고 겸재 정선.’
정답은 세 사람 외에 윤두서가 있었다. 정약용의 외증조 이기도 한 윤두서가 그린 자화상도 국보로 지정된 그림이었다.
유 청장은 이어서 물었다.
"앞으로 100년 뒤 후세들이 국보가 된 대한민국 작가의 그림을 즐긴다면 어느 작가의 작품이 될 것으로 생각하나요?”
우리에게 친근하고 대단한 작가들이 있다.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유 청장의 생각도 큰 차이가 없었다.
“아마도, 박수근 작가와 김환기 작가가 우선적으로 꼽힐 것 같습니다.”
박수근은 서양화라는 새로운 조형 어법을 우리 것으로 토착시킨 화가이고, 김환기는 모더니즘을 구현한 화가다. 대부분 한국 사람은 두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아마 이중섭과 장욱진 화백의 친근한 그림도 국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갤러리 신관과 별관에서 훗날 국보가 될 김화백의 작품을 찬찬히 감상했다. 구상화로 시작하여 추상화 순으로 보았다. 작가의 추상적인 선과 점이 무엇을 말하는지 유 청장의 설명을 들었다.
유 청장은 김향안 여사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한국 최고 시인 이상의 아내이면서, 또 한국 최고 화가 김환기의 아내다. 김향안은 이상의 죽음을 곁에서 지켰고, 죽어서는 김환기의 곁에 묻혔다.
눈과 귀를 함께 즐긴 날이 되었다. 아름다운 색조가 주는 감동을 아내와 함께 하고 싶었다. 휴일 아내와 함께 다시 현대갤러리를 찾았다.
아내는 출발 전부터 행복했다. 아내에게 유 청장의 말을 전하며, 김환기 화백의 작품 중에 어떤 그림이 미래의 국보가 될 그림인지, 골라보자고 했다. 아내와 나는 '항아리와 매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꼽았다.
선비들은 사군자(四君子)인 매난국죽(梅蘭菊竹) 중에서도 매화를 으뜸으로 꼽았다. 매화는 차가운 눈 속에 홀로 꽃을 피워 군자의 기풍으로 맑은 향기를 내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백자 달 항아리는 조선의 미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넉넉함과 눈처럼 흰 자태는 담백함을 지향하던 선비들의 이상과도 맞았다.
김환기 작가는 ‘항아리만을 그리다가 달로 옮긴 것은 형태가 달처럼 둥글어서 그런지도 모르고, 내용이 은은한 것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환기 작가의 뜰에는 한 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있었다. 작가는 항아리를 보면, 놓여있는 것 같지가 않고 공중에 둥실 떠있는 것 같다고 기록했다. 달밤이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인해 온통 뜰에 달이 꽉 차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김환기 작가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작가가 쓴 글에서 밝혔듯이 김광섭 시인의 시 구절에서 그림 제목을 가져왔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수많은 파란색 네모와 점들로 이뤄진 이 작품은 김환기가 말년 뉴욕 생활 중에 고국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면서 그린 것이다. 김환기 작가는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별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100년 뒤 후세들이 빛바랜 김환기 작품을 감탄하며 보고 있을 생각을 떠올리며 전시장을 나왔다.
(사진 출처: 환기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