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고, ‘엉엉’ 울며 통곡을 했다.
홍명희 선생은 신문을 펼쳐 창씨개명을 했다는 나의 기사를 읽었다.
“강원야원(江原野原)이라...... 에하라 노하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옆에 있던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냈던 선생의 아들이 신음을 토하듯 말했다.
“신불출도 어쩔 수 없이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었네요.”
선생은 탄성을 질렀다.
“그래! 연극 양산도(梁山刀)에서 양산(梁山)이 여동생의 말리는 손을 뿌리치며 이 칼은 못 놓겠다! 에하라 놓아라 하고 외친 대사야!”
홍명희 선생은 어리둥절한 아들을 보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에하라 놓아라. 못 놓겠다! 일제를 향한 저항의 칼을 나는 못 놓겠다, 이런 뜻을 가진 이름이란 말이다!”
어리둥절에 하는 아들을 보고, 홍명희 선생은 파안대소를 하며 무릎을 쳤다.
“과연 신불출이야!”
*****
종로 경찰서 취조실은 마달영과 형사들의 거친 말투와 살기 띤 눈초리가 숨을 막히게 했다. 미와가 취조실로 들어와 음산한 목소리로 외쳤다.
“구로다 규이찌(玄田牛一)? 칙쇼(畜生)? 조센징들에게 은혜를 내려 총독 각하가 창씨개명을 허락하였는데, 조롱거리로 만든다? 신불출, 네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나는 뭔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목이 잠겼다.
“뭐? 미나미 타로(南太郎)? 덴노 헤이카(天皇陛下)?”
미와는 ‘덴노 헤이카’라는 말을 하다가 자세를 바로 했다.
“네가 진정 죽으려고 정신 줄을 놓은 게야!”
미와 경부는 손바닥을 쫙 벌려 나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에하라 노하라? 이건 무슨 말장난이야? 또 다른 칙쇼인가?”
미와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창씨개명 때문에 여러 사람이 자결을 해?”
미와는 다시 한번 사정없이 빰을 갈겼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 따위 헛소리를 지껄여? 창씨개명을 반대하자고 선동하는 것이야?”
미와가 손짓을 하니 형사들은 나의 머리를 벽에다 패대기쳤다. 나는 걸레처럼 짓이겨졌다. 얼마나 맞았는지 정신이 혼미하였다. 마달영이 소리를 치며 추궁했다.
“에하라 노하라 뜻은 뭐야? 에하라 놀아라, 망할 놈의 세상이란 뜻이야? 무슨 장난인 지, 빨리 불어?”
나는 목구멍을 컥컥거리며 간신히 말했다.
“그건 그냥……”
일본 경찰은 정신을 잃은 나를 경찰서 유치장에 던져 넣었다. 온몸의 통증으로 눈이 떠졌다. 정신이 드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만해스님이 써 주어 방에 붙여둔 글귀가 떠올랐다.
‘항상 새벽처럼 깨어 있으라. 깨어있음은 죽지 않는 길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날까지 만해스님의 글이 나를 따라다녔다.
아침이 되자 다시 취조실로 끌려와 심문을 받았다. 마달영이 득의만만하게 소리쳤다.
“신불출! 에하라 노하라는 너의 희곡 양산도에서 나왔어.”
털끝이 쭈뼛하였다. 종로경찰서 고등계 최고 악질 형사답게 냄새를 맡은 듯했다.
‘나의 모든 희곡을 다 뒤져 읽은 것인가? 독사 마달영이 독하다고 소문이 났더니만.
마달영이 따져 물었다.
“양산도가 노동쟁의가 격렬하게 일어난 양산(梁山) 노동분쟁을 계기로 만든 것이렷다?”
나는 눈을 감았다. 마달영이 밤새 잠도 안 자고 나에 관련된 자료를 다 읽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허탈하였다.
‘일본을 위해서 온 몸을 다해 노력하는 자이다.’
“이것만 봐도 너는 사회주의에 깊이 물든 불온한 자야.”
마달영은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칼을 들고 에하라 놓아라, 못 놓겠다 하고 외치는 대사는 일본에 저항하는 칼을 못 놓겠다는 암시임에 틀림없어. 바른대로 말해!”
폭행으로 이미 망가진 몸과 마음이, 마달영의 집요한 추적으로 무너져 내림을 느꼈다. 나는 남아있는 힘을 다하여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 녀석, 안 되겠어. 비행기 타는 맛을 보여줘!”
마달영의 지시에 사복형사들이 나를 뒷짐을 지워 결박을 시켰다. 그리고는 의자 위에 올려 세워 놓고 동아줄의 한쪽 끝을 천정에 매단 후 내가 서있는 의자를 발길로 차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했다. 몸이 시계추처럼 흔들어 댈 때마다 바닥이 흔들리고 벽이 달려들었다.
미와(三輪)가 취조실로 들어왔다. 마달영은 미와에게 그동안 조사한 내용과 취조 결과를 보고 했다. 미와는 마달영에게 지시했다.
“저 녀석을 감옥에 쳐 넣어! 이번에는 콩밥을 제대로 먹이고.”
미와는 취조실을 나가면서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저 빠가야로, 다시는 내 눈에 띄지 않게 해!”
윤치호 교장선생님이 나를 위해 나섰다. 종로경찰서에 내가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종로경찰서장을 만났다. 경찰서장은 선생이 조선총독도 가까이 지내며 조선 통치를 위해 종종 자문을 구하는 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경찰서장은 윤치호 선생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 미와를 불렀다.
“신불출을 당장 석방시키게.”
어리둥절해하는 미와에게 서장이 말했다.
“지금 조선 최고의 인기인이 누구야? 만담왕 신불출이야.”
미와는 서장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그런 유명인을 창씨개명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시키면 신문에서 가만히 있겠어?”
미와는 대답을 미적거렸다. 서장은 그런 미와를 보고 싸늘하게 말했다.
“미와 경부!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기사가 나와서 총독부와 총독을 망신시켜도 괜찮아?”
미와는 서장에게 자세를 바로 하고, 즉시 조치하겠다고 대답했다. 당황하며 서장실을 나가는 미와의 뒤통수를 향해 경찰서장은 말을 던졌다.
“경부까지 올랐으면, 정무적인 감각을 가지고 일해야지.”
미와는 마달영을 불러 지시했다.
“즉시 신불출을 풀어줘!”
눈을 동그랗게 하고 쳐다보는 마달영에게 미와가 말했다.
“신불출은 지금 조선 최고의 인기인이야.”
미와는 멍하게 서있는 마달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신불출을 감옥살이를 시키면, 신문들이 가만히 있겠어? 무대에 올라 창씨개명을 반대하고 조롱해서 감옥에 갔다, 이렇게 기사를 쓸게 분명하잖아. 그래도 괜찮아?”
마달영은 머뭇거리다, 떠듬떠듬 말을 꺼냈다.
“하지만, 양산도 건도 있고......”
미와는 마달영의 말을 끊고 나무랐다.
“대일본제국의 경찰이라면, 정무적인 감각을 가지고 일해야지.”
경찰서에서 풀려나 집에 돌아온 후 며칠 동안 정신없이 앓았다. 온몸이 쑤시고 마음도 아팠다. 무대에서 15년을 보냈다. 꿈같은 시간들이었다. 이제 무대는 끝났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일제의 통제와 강압은 늘 공포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위태로운 경계선을 끊임없이 넘고 싶었다. 피하고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선을 넘고야 말았다. 불이 뜨거운 줄 알지만 나방이 피하지 않고 더 가까이 다가가듯이.
*****
1941년 12월,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신문들은 일제히 진주만 공습의 성공을 찬양하며 보도하였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겪으면서 점차 일본의 힘에 압도된 조선의 지도급 인사들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거의 친일로 돌아섰다. 일본을 상대로 독립을 쟁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차라리 ‘내선 일체론(內鮮一體論)’을 받아들이고 일본제국의 일원이 되는 것이 조선을 위한 길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지도급 친일 인사들은 태평양전쟁은 아시아 민족의 해방을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며, 조선의 젊은이들은 전장에 나가서 일본과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죽일 놈들, 제 놈들 살자고 조선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몰다니.’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는 시절이 더욱 엄혹하여 풍자와 비판하는 말은 아예 입을 틀어막아 침묵을 강요했다. 일제로부터 요주의(要注意) 인물로 무대에 오르지도 못하게 하고 깊은 침묵을 강요받으니, 극도의 우울감이 몰려왔다. 세상이 더욱 미쳐 돌아가는 듯하여 답답하고, 밤에 잠도 자주 깨었다. 나라와 나의 현실을 생각하면 분노와 슬픔이 교차되다가 이내 무기력해지고 울적해졌다. 한 번 잠이 깨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울한 조선 사람을 위해 웃음으로 위로했는데, 내가 우울병에 걸리다니.’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다. 대문을 걸어 잠갔다.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소리를 질러대었다. 아무 노래나 부르다가 내가 아는 욕설이라는 욕설은 다 뱉어보기도 하였다. 몸을 뒤집어 거꾸로 섰다가, 대굴대굴 굴러도 보았다. 허공에 주먹질도 했다가 악도 써보았다. 천장을 향해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웃었다가, 방바닥을 치며 소리 내어 통곡을 하였다. 미쳐가는, 아니 미쳐버린 세상에서 내 방에서나마 미친 짓을 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겠나. 나는 내방을 우울증을 해소하는 방이란 뜻으로 해울실(解鬱室)이라고 이름 지었다.
어둠이 짙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캄캄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힘은 너무나 강해 보였다. 한용운 스님의 예언이 생각났다. 분수를 모르고 큰 나라와 대적하고 있으니 일본의 운명은 다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막무가내의 어둠이 동트기 전의 암흑이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1945년 8월 15일, 수요일.
이날도 매미들은 아침부터 떼 지어 큰 소리로 울어대며 일본을 욕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일왕 히로히토가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그토록 천하무적으로 보이며 미국을 이긴다고 선전하던 일제가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렸다. 깊은 잠을 자다가 누군가 흔들어 잠이 깬 듯이 놀랍고 어리둥절하게 해방이 찾아왔다.
집 밖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목이 터져라 부르는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목구멍에서만 감돌던 외침이었다. 큰 소리로, 그것도 백주대낮에 이렇게 마음대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수 있다는 것은 해방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볼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아프다!’
꿈은 아니었다.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내렸다. 나는 방에서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고, ‘엉엉’ 울며 통곡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