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쓰지 마소서

군주의 거동은 사관이 낱낱이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니 신중해야 합니다

by 두류산

2부 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쓰지 마소서



1장


성종은 밤중에 야대(夜對, 밤에 하는 경연)에 나아갔다. 아침과 점심, 저녁에 하는 경연인 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에 이어 야대(夜對)는 사헌부 대간 홍귀달이 밤에도 경연을 개최하자고 건의하여 임금이 채택하였다.


홍문관 수찬 겸 경연의 검토관 이창신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지난번 주계부정 심원이 충신의 마음으로 글을 올려 축수재를 파하도록 청했습니다. 성상께서 비록 마침내 그 말을 들어주셨지만,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심원이 이름을 얻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냐고 하셨다고 신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간언하는 자를 모두 이름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신하들이 생각하기를, 내가 말하려고 하여도 나의 말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름을 얻기 위해서라는 책망이 뒤따를 것이니, 누가 마음속을 털어놓겠느냐고 할 것입니다. 아마도 충신의 입이 이로부터 막힐 듯합니다.”


홍문관 관원은 경연에서 경전을 준비하여 읽고 강의하는 직책을 겸임하였다. 품계에 따라 정 4품 응교, 정 5품 교리, 정 6품 수찬은 각각 시강관(侍講官), 시독관(侍讀官), 검토관(檢討官)을 겸하였다.


이창신의 말에 임금의 용안이 붉어졌다.

‘낮말은 새가 듣는다더니, 승지나 사관이 옮긴 것인가?’


홍문관 교리이며 경연의 시독관 안침이 이창신의 말을 거들었다.

"신하 된 자가 군주의 허물을 말하고 혹은 대신의 죄를 논하는 것은 모두 국가의 복이고 말하는 자의 이익이 아닙니다. 군주와 대신이 그 허물을 듣기 싫어하여 이름을 얻으려 한다고 책망하면, 이는 심히 불가합니다.”

"축수재는 선왕조 때의 일인데 당시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다가, 과인의 시기에 이르러 오래된 법을 바꾸고 분쟁을 일으키려고 하니, 이름을 얻으려고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종이 변명하였으나, 이창신은 물러서지 않았다.

"과거에 말하지 못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오늘 말한 것이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세조 때 원각사를 창건할 적에 일찍이 한 사람도 머리를 조아려 말한 사람이 없었고, 양성지가 대사헌을 10여 년을 하였어도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지냈으니 당시의 사람들이 이를 조롱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때 능히 말할만한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과거에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어찌 지금 말하는 자를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이창신은 세조 때의 훈구대신들이 바른말을 할 줄 모르고 오직 자신의 지위 유지에 급급한 신하임을 은근히 비난했다. 안침이 이창신의 말에 동조하였다.

"지금 높은 벼슬을 하는 자가 모두 선대왕(先代王)의 신하입니다. 만약 젊은 신하가 지금 말하는 것을, 옛날에 말하지 않다가 이름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누가 감히 말을 다하겠습니까?”

"주계부정의 말은 정당하고 사사로움이 없었다. 과인이 만약 실로 주계가 이름을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면 어찌 상(賞)을 주었겠는가? 과인은 주계를 의심하여 이름을 구한다고 하지 않았다.”


안침은 임금의 한 번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아뢰었다.

"주역에 이르기를, 집에서 말을 한 것이 천리 밖에서도 감응한다고 했습니다. 군주가 하는 말은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창신도 안침의 말에 동조하며 거들었다.

"군주의 거동은 사관이 낱낱이 기록합니다. 한 마디 말과 한 번의 거동이 만세(萬世)에 전해지는데, 어찌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주상께서 축수재를 혁파하신 것은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밤이 깊도록 진행한 경연을 마무리하기 전에 성종은 성군(聖君)의 풍모를 보였다. 강개하게 주장을 펼치며 임금의 실언을 세차게 나무란 젊은 경연관을 격려하였다.

"과인이 처음에 주계에 대해 이름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 것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너희들이 말을 해주어서 심히 기쁘다. 과인의 행동이나 언행에 문제가 있다면, 이에 대해 빠짐없이 말하라.”


안침은 임금의 도량 넓은 말에 감읍하여 대답했다.

"신은 더 들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아뢰는 사람이 그 인품이 같지 아니하여 말에는 선하고 선하지 않음이 있으니, 그 말이 선하면 따르고 선하지 않으면 버리는 것은 군주의 취사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전하께서 언로(言路)를 열어놓으시면 들을 수 없는 것도 들으시게 되어, 잘못된 행동은 자연히 없어지고 백성의 괴로움도 자연히 제거될 것입니다."

"임금이 간언을 따르면 성군이 된다고 한다. 당나라 태종은 불세출(不世出)의 군주인데도, 위징이 간언을 따르는 것이 점차 처음과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과인에게 바르지 못한 행동이나 언행이 있으면 바로 말해야 할 것이다.”


성종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바른말을 거침없이 하는 홍문관의 젊은 관원들을 따뜻하게 격려했다. 성종은 책을 보관하는 장서(藏書) 기관에 불과하였던 홍문관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집현전 학자들의 단종 복위운동 이후 폐지된 집현전의 직제와 기능을 더하여 홍문관을 언론과 학술기관으로 키웠다. 이후 홍문관은 학문연구는 물론, 올바른 정치를 위한 백관에 대한 감찰과 언론기능도 담당하여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삼사(三司)로 불러지게 되었다.


보성군은 손자 이심원이 나서서 기어코 축수재를 폐지한 일에 대해 격노하였다. 이심원이 사돈인 임원준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어 크게 혼을 내고 싶었으나 명분이 없어 참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일로 손자를 미워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보성군은 아들인 평성도정 이위를 집으로 불렀다.

“심원은 책을 거꾸로 읽은 것이 틀림없다. 신하 된 자로서 임금의 수명장수와 복을 비는 일을 어찌 감히 막을 수가 있단 말인가?”


평성도정은 고개를 조아리며 변명했다.

“심원이 과격하고 불량한 생각을 가진 유생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그들의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제가 그런 유생들과 절교하고 근신하도록 잘 타이르겠습니다.”


이심원이 아버지의 집을 찾아 문안을 드리니, 평성도정은 장남을 보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조부에게 애비가 혼이 났다. 내가 대충 변명하였느니, 장차 조부가 너를 나무라거든 다소곳이 듣고만 있어라.”

평성도정은 괄괄하고 직선적인 아들을 바라보며 불안한 마음이었다.


보성군의 손자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은 훗날 이심원이 김종직의 제자들이 임사홍을 탄핵하는 일에 개입하면서 불에 기름을 붓듯 악화되었다. 이는 이심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불행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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