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8년 성종 9년 4월 1일, 흙비(土雨)가 무섭게 내렸다. 지난해는 심한 가뭄으로 들판을 휩쓴 메뚜기 떼가 창궐해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다. 이어서 태풍과 산사태를 동반한 홍수가 덮쳤으며 지진까지 발생하였다. 대신들은 왕을 잘못 보필하여 하늘이 내리는 벌을 받게 되었다는 책망을 면하기 어려워 초조하였다. 친정(親政)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성종도 마음이 무거웠다.
성종은 하늘이 내리는 벌이 무슨 연유인지, 이것을 그치게 하려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구언교(求言敎)를 내렸다.
"하늘과 사람의 이치는 같으니, 자연의 재앙은 오직 사람으로부터 감응되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지진이 있었고 이 달에는 흙비가 내리니, 하늘의 질책이 가볍지 아니하다. 하늘이 꾸짖어 훈계하는 데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과인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세금이 과중하였는가? 토목공사가 번거로웠는가? 형벌이 적절하지 못하였는가? 인재를 쓰고 버리는 데 잘못이 있었는가? 현명한 이가 등용되지 아니하였는가? 혼인이 때를 잃었는가? 수령의 탐혹함이 심한데도 감사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못하였는가? 백성들이 고통을 견딜 수 없는데도 그 사정을 위에서 모르지는 않았는가? 허물을 얻은 이유를 깊이 생각하건대, 허물은 실로 과인에게 있는 것이므로 직언(直言)을 들어서 하늘이 내리는 벌에 답하고자 한다. 대소 신료부터 작은 마을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재이(災異, 재앙이 되는 변고)가 일어난 이유와 이것을 그치게 할 방법을 숨김없이 모두 진술하라.”
이심원은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고자 임금이 바른말을 구한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남효온을 찾았다.
“주상께서 하늘의 꾸짖음이 일어난 이유와 이것을 그치게 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셨네. 위에서 모르고 있는 사정이 있으면 남김없이 말해달라고 하신 것이야.”
“주상께서 모르는 사정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셨단 말이지?”
“그렇다네. 백성에게 내린 세금이 과중하지는 않았는지, 인재를 쓰고 버리는 데에 잘못이 있었는지, 수령의 탐학이 심한데도 관찰사가 제대로 감독을 못하였는지 등 주상께서 알고 고쳐야 할 사항은 빠짐없이 알려달라고 하셨어.”
남효온은 얼굴이 환해지며 말했다.
“해와 달이 아무리 골고루 빛을 내리쬐어도 깊은 산중의 굴속은 밝게 할 수 없는 것이지. 백성의 원망이 사라지면 어찌 하늘이 이 땅에 재이(災異)를 내리겠는가.”
“탐욕스럽고 포악한 수령과 간교한 아전들이 세금 외에 여러 명목을 별도로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함부로 재물을 거두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백성들은 견딜 수 없는 지경이지만 쉽사리 고을 수령에게 달려가 시비를 따질 수도 없는데, 하물며 능히 관찰사의 뜰에 가서 시비를 가리고자 하겠는가. 주상이 비록 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백성들이 은혜를 입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진실로 이 때문이네.”
남효온은 이심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옳은 말이네.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에 옳은 사람을 보내야 백성의 원망이 사라질 것이야. 지금 수령으로 있는 자들 중에는 뇌물로 지위를 얻는 등 자격이 없는 자가 너무나 많은 실정이네. 그들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 어둡고 농사철에도 백성에게 부역을 시키는 등 때를 가리지 못하고 있네. 더구나 흉년이 들어도 벌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아니하여 구휼미를 제 때 얻지도 못한 고을이 있다고 들었어. 이러니 백성들이 어찌 나라의 은혜로 내려주는 양식으로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겠는가.”
이심원은 남효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생각을 충심으로 주상께 아뢸 절호의 기회일세.”
“구언교(求言敎)를 받들어 빛이 들어가지 않는 굴속까지 주상의 은혜가 미치도록 우리가 미력이나마 답을 올리세.”
이심원은 눈을 반짝이는 남효온을 보고 물었다.
“자네는 어떤 방책을 주상께 올리려는가? 내 생각으로는 조정의 훈구대신들이 백성들의 고통을 모른 체하고, 고루한 생각으로 낡은 제도를 고치려 하지 않는 것도 하늘이 나무라고 있는 것이 틀림없네.”
남효온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며칠을 두고 신중히 생각해서 방책을 올리겠네. 다만, 무슨 글을 써서 올릴지 의논을 하면 우리의 상소가 비슷해질 것이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모의했다고 의심을 받을 걸세.”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급히 함양으로 내려간 일두가 그립네. 그가 도성에 있었다면 나라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계책을 반드시 주상에게 아뢸 것인데......”
이심원의 말에 남효온도 정여창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심원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을 가다듬어보았다.
‘무엇이 하늘을 분노하게 하였을까? 그동안 잘못한 정치나 바꾸어야 할 제도가 있다면 마땅히 고쳐야 백성들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운은 하늘에도 전달될 것이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조께서는 흠이 많아도 하나의 장점만 보고 쓴 사람이 많았다. 그들이 훈구대신이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탐오와 사치에 빠져있고 개혁을 가로막고 방해하고 있다. 어찌 하늘이 보기에 문제가 없다고 여기겠는가?’
이심원은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이 문제를 아뢰어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세조 때의 신하를 더 이상 쓰지 말라고 하면, 조정이 요동칠 것이다. 이 말은 종친인 내가 주상의 조부인 세조 때의 신하와 정치가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심원은 세조 때의 신하를 더 이상 쓰지 말라는 말을 상소에 넣어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집에 도착했다.
이심원은 이 문제를 두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마음을 정했다. 이심원은 종이와 붓과 먹을 찾았다. 벼루를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포도나무와 포도송이가 멋지게 새겨진 벼루였다. 벼루를 잡고 먹을 갈아 먹물을 모았다. 이심원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붓을 들어 먹물에 적셨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여러 가지 일은 오늘날의 깊은 병통이 아닌 것이 없으니, 이미 아시는데 신이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하지만 구언(求言)의 명을 받으니, 마음속에 근심할 만한 일이 있으면서 어찌 차마 잠자코 있겠습니까?”
이심원은 자신이 직접 목격한 권세를 잡은 대신들의 고리대금으로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실정을 아뢰었다.
“권세 있는 집의 종들이 사채를 놓는데,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취하고 추수할 때에 이르러 빚을 독촉하는 무리가 연달아 와서 자신들 주인의 위엄을 빌어 백성을 겁박하므로, 개와 닭들도 편히 쉬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농가에서는 풍년이 들어도 흉년보다 괴로움이 심하니, 어찌 백성들이 원망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원하건대 권세가의 사채를 금하여 궁핍한 백성을 편히 살게 하소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만약 사채를 금하면 가난한 자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그대로 두어서 굶주리는 것을 구제하는 것이 낫다고 하나,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굶주리는 백성을 구휼하는 것은 수령의 책임이지, 권문에서 사사로이 할 바가 아닙니다.”
이심원은 임금이 물은 현명한 이가 등용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을 쓰려고 하니 기약 없이 함양에 내려간 정여창이 눈에 어른거렸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조선은 땅이 좁아서 등용되지 않은 어진 이는 없을 것이다. 만일 있다면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하고 말하나,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듣고 보아 아는 자도 오히려 두서넛이 있으니, 함양의 정여창, 태인의 정극인, 은진의 강응정입니다. 이들은 모두 성현(聖賢)의 무리입니다. 강태공도 문왕(文王)을 만나지 아니하였으면 일개 어부였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이심원은 잠시 붓을 놓고 눈을 감았다.
‘하늘의 뜻에 부응하는 나라를 만들려면 간사한 이를 버려야 한다. 옛날 제왕들도 누가 간사한가를 알지 못하였으며,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냥 씀으로써 나라를 망한 일이 많았다. 세조 때는 창업과 다름없는 시기였기에, 사람을 쓰는 데에 한 가지 재주라도 뛰어난 자는 모두 썼으나, 아직도 세조 때의 신하들을 여전히 쓰고 있으니 어찌 좋은 정치가 가능하겠는가.’
이심원은 심호흡을 하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문제를 아뢰기 위해 붓을 힘주어 쥐었다.
“물용세조훈신(勿用世祖朝勳臣)! 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더 이상 쓰지 마소서. 세조께서는 사람을 쓰는 데에 한 가지 재주라도 뛰어난 자는 쓰지 아니함이 없기 때문에 반린부익(攀鱗附翼)하여 모두 등용되었습니다. 세조가 쓰신 신하들을 아직도 여전히 쓰고 있으니, 어찌 어긋나고 잘못됨이 없겠습니까?”
반린부익은 용의 비늘을 끌어 잡고 봉황의 날개에 붙는다는 뜻으로, 현명하고 뛰어난 임금을 섬겼기에 신하가 공명(功名)을 얻는 것을 말했다.
이심원은 붓을 쥔 손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예로부터 임금은 누구라도 곧은 사람을 등용하고 굽은 사람을 버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세에 능하고 말을 꾸며서 잘하는 자가 사랑을 받고, 간사한 것을 충성된 것으로 여기고 속이는 것을 곧은 것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秦) 나라의 이사(李斯), 당나라의 양국충, 송나라의 왕안석과 진회와 같은 무리가 그런 연유로 뜻을 펴게 된 것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그때를 슬프게 생각하였는데, 지금을 보는 훗날 사람들이 그때를 보는 것과 같이 안타깝게 생각하게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