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은 임사홍이 대간의 말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았다
이심원이 상소를 접수하려 승정원에 들르니, 조정은 새로운 인사를 발표하였다. 도승지 신준을 호조 참판으로, 도승지에 임사홍, 좌부승지에 홍귀달을 임명하였다. 임사홍은 대사간에서 예조참의와 이조참의를 거쳐, 드디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도승지로 옮기게 되었다. 34살의 젊은 나이에 임금의 가장 가까운 신하인 승지들의 장(長), 도승지에 발탁된 것이었다. 이심원은 마음이 무거웠다. 김맹성이 고모부를 소인이라고 공격했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승정원의 승지들은 도승지가 바뀌어 업무의 인수인계를 준비하면서 이심원의 상소를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세조 때의 신하를 더 이상 쓰지 말라니......”
신준은 승지가 전해준 이심원의 상소를 읽어보고 말했다.
“과연 이심원이군!”
신준은 거침이 없는 이심원의 상소가 걱정이 되어 승지들에게 말했다.
“이는 전하의 구언에 답한 상소이네. 비록 지나친 주장이라고 해도 상소로 인해 죄를 얻으면 전하의 성명(聖名)에 누를 끼치는 것이야. 명심들 하게나.”
성종은 승지가 올린 이심원의 상소를 펼쳤다.
“전하께서는 지금의 공경대부들이 모두 어질다고 여기십니까?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가 섞여있다고 여기십니까? 비록 어질지 못한 이가 많으나 어진 이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부득이하여 쓰고 있는 것입니까? 또는 선대왕께서 이미 쓰다가 전하께 넘겨주었으므로 마땅히 어질고 어리석음을 묻지 아니하고 쓰고 있는 것입니까?”
성종은 읽기를 멈추었다.
‘이심원의 주장은 훈구대신들을 조정에서 모두 내치자는 말인가?’
조정의 모든 대신들이 세조 때의 훈구대신이고, 이들을 대체할 세력도 없다. 이심원이 무슨 마음을 먹고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신임 도승지 임사홍은 이 상소를 읽었느냐?”
“신준은 읽었으나 임사홍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성종은 상소를 내리며 승지에게 말했다.
“심원을 속히 들라하라!”
임사홍은 도승지가 되어 정승과 대신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느라 미처 이심원의 상소를 읽지 못하였다가 임금이 승정원에 내린 후에야 상소를 읽을 수 있었다. 임사홍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더 이상 쓰지 말라니? 참으로 미친 자로다. 어찌 이토록 망령된 말을 감히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이심원이 어전에 나아와 절을 올리고 예를 갖추니, 임금이 물었다.
"상소 중의 말 가운데 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쓰지 말라고 한 것은 과인이 이해하지 못하겠다. 네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이를 말하였는가?”
"대체로 창업하는 임금은 뜻이 성공에 있으므로 비록 한 가지의 재주를 가진 자라도 모두 거두어 쓰나, 수성(守成)하는 임금은 이와 달라서 모름지기 재주와 덕을 겸비한 사람을 씁니다. 세조께서는 한 가지 재주에 능한 자는 단점이 나타나도 장점을 헤아려서 쓰지 아니함이 없었으며, 그때의 신하들은 모두 공을 얻어서 훈신(勳臣)이 되었습니다. 전하께서 옛 훈신을 지금까지 모두 쓰고 있으니, 훈신들이 필시 다 어질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오히려 겉과 속이 다른 표리 부동한 훈신이 많습니다.”
임금은 이심원의 말에 흥미를 가지고 물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가?”
“사람들은 몇몇 훈구대신들은 정사를 돌보기보다는 재산 늘리기에만 골몰하고 탐욕스럽기 짝이 없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실지로 그들이 놓은 높은 이자의 사채로 백성들은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채로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한다고 두둔하면서 고리의 사채놀이를 하며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심원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훈구대신이 이런 식으로 어질지 못하고 죄를 범한다면 벌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은혜가 상할 것이고 벌을 주지 아니하면 법을 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漢) 나라 광무제가 공신에게 일을 맡기지 아니한 까닭이며 송(宋) 나라 태조가 병권을 공신들로부터 거둔 까닭입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역사를 거울삼아서 훈구대신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면, 공신을 보호할 수 있고 은혜를 상하게 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때 신임 도승지 임사홍이 입시하였다. 임금은 도승지를 한번 보고, 이심원에게 구체적인 대안을 물었다.
"지금의 대신들은 모두 세조 때의 훈신인데, 이들을 다 버리고 장차 누구를 쓸 수 있는가?”
"신은 옛 신하들을 모두 쓸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재주와 덕을 겸비한 자는 쓰고 어질지 못한 자는 쓰지 말자는 것입니다. 또한 영웅호걸로 숨어 있는 자가 무궁무진하니, 비록 옛 신하는 아닐지라도 어찌 쓸 만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성종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므로 내가 마땅히 참작해서 헤아리겠다.”
이심원의 말은 세조 때의 정치를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종친이라도 감히 말할 수 없는 민감한 문제였다. 이심원은 뭔가 더 아뢰려고 하다가 도승지 임사홍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보고 말을 삼켰다.
‘내가 비록 말할지라도, 주상은 입시한 도승지에게 물을 것이다. 그러면 나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고모부가 뭐라고 주상에게 고하겠는가.'
이심원은 어전에서 물러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하는 훈구대신 전부를 내쳐야 하는지, 일부를 내쳐야 하는지 묻지 않으셨다. 내가 비록 반드시 내쳐야 할 사람으로 인물을 지적하여 말했어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도승지 임사홍은 이심원이 어전에서 물러나자, 임금에게 아뢰었다.
“심원은 진실로 어리석고 망령된 자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조정에서 사람을 쓸 때, 모름지기 오래된 신하를 믿고 써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만약 선왕 때의 신하를 쓰는 것이 부당하다고 한다면, 주공(周公)은 무왕을 도왔으니 성왕과 강왕에 이르러서 버려야 하는 것입니까? 심원은 다만 옛 글을 읽었을 뿐입니다. 시의에 맞추어 대책을 세우거나 행동함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유생일 뿐입니다.”
임금이 물었다.
“심원의 상소는 읽어 보았는가?”
“신(臣)이 상소를 살펴보니, 정극인, 정여창, 강응정을 성현의 무리라고 하였습니다. 정여창과 강응정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나, 정극인은 문종 때 은둔 학자로 천거되었습니다. 사간원의 정언(正言)에 임명되었는데 의롭지 못한 것을 보면 강개한 것이 남과 조금 다를 뿐이었습니다. 어찌 성현의 무리라고 하겠습니까? 이는 심원의 과장된 말입니다.”
임금이 말했다.
"과인은 심원이 상소한 글을 읽고 무언가 뜻을 둔 바가 있다고 생각하여 불러서 물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유자(儒者)들이 보통 하는 말이며 특별한 뜻은 없었다.”
"요즘 조정의 신하들이 말을 쉽사리 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간(諫)하는 말을 따르고 잘 받아들이시니, 이 때문에 대간이 부당한 말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찌 대간의 말이라고 하여 다 따르겠습니까?”
임사홍이 도승지가 되자마자, 대간의 말이라고 다 따를 필요가 없다고 임금에게 아뢰자, 사관은 놀라 붓을 멈추고 임사홍 쪽을 바라보았다. 사관은 임사홍이 임금에게 한 말을 평하며 사초에 실었다.
“신하는 마땅히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도록 임금에게 경계하는 말을 올려야 한다. 임사홍의 말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실언(失言)한 죄를 피할 수가 없다.”
사관은 간관의 수장인 대사간을 역임하였던 임사홍이 대간의 말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임금에게 한 말에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임사홍의 발언은 사관을 통해 예문관과 홍문관의 동료 관원들에게 알려졌다. 왕의 최측근 도승지가 된 임사홍은 이 발언으로 임금에게 아부하는 소인(小人)이라고 젊은 관원들에게 경멸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