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쓰지 마소서 (4)

천재일우의 때를 만나, 어두운 역사를 바르게 할 기회를 살려야 한다

by 두류산

4장


한명회와 정창손, 윤필상, 김국광 등 훈구대신들은 이심원이 올린 상소 내용에 분통을 터뜨렸다. 한명회가 대신들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심원이 올린 글에 세조의 공신은 쓸 수 없다고 말하였으니, 이게 무슨 망발이오?”

정창손이 한명회의 분노를 거들었다.

“세조 때의 공신을 쓰지 말라고 말한 것은 세조 대왕의 공을 부정하고 당시의 신하인 우리를 비난하는 것이에요.”


김국광도 화를 내며 두 사람의 생각에 동조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유생들이 미친 사람 마냥 망령된 주장만 내세우니, 세상이 말세에 이르렀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오.”

한명회가 단호하게 말했다.

“조정과 사직을 어지럽히는 미친 선비들은 더 자라기 전에 미리 싹을 끊어야 하오. 함께 어전에 나아가 성상께 이심원의 죄를 단단히 물읍시다.”


정창손은 당장 일어서서 어전으로 향하려는 한명회를 제지하였다.

“상당군, 기다려보시오. 이심원을 옥에 가두면, 대간들이 반발할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세조 때의 공신은 물러가야 한다는 이심원의 망언이 자칫 호응을 받을 수도 있어요.”

한명회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정창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정창손은 한명회를 달래며 말했다.

“벌집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에요. 이심원의 망령된 글을 이번에는 무시하고 모르는 척 넘어갑시다.”


이심원은 이번 상소로 훈구대신 모두를 적으로 만들었다. 축수재를 폐지하라고 건의하며 조회에서 정승 윤자운을 큰 소리로 비난하여 이미 그들에게 인심을 잃었다. 급기야 세조 때의 공신을 쓰지 말라고 올린 상소는 훈구대신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훈구대신들은 이후로 이심원을 원수같이 여기고 미워했다. 이후로 성종이 이심원의 높은 학문과 넘치는 기개를 좋게 여겨 가까이 두고 쓰려고 할 때마다 훈구대신들은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배척하였다.


이심원이 이제 막 원상들과 대왕대비의 그늘에서 벗어나 친정(親政)을 시작한 왕에게 올린 상소는 앞으로 훈구와 사림 간에 전개될 대립의 서막이었다. 심원의 상소는 터지지 않은 폭발물처럼 위험이 잠복된 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며칠 뒤 남효온의 상소가 올라오면서, 이심원의 상소 내용이 다시 언급되며 조정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남효온은 수락산 자락에 있는 김시습을 찾았다. 이번이 두 번째 길이다. 처음 소문만 듣고 나설 때는 길을 몰라 종일 헤매다 복숭아로 허기를 달래며 어둡기 직전에야 집을 찾았다.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을 알린 지 삼십 년이 다되었으나 한양에는 발걸음도 하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승려가 되어 스승으로 모시기는 어렵지만 그의 학문과 뜻은 흠모했다.

김시습은 찾아온 남효온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며 말했다.

“내가 머리를 깎았기에 가르칠 수 없지만 같이 학문을 논할 수는 있소.”


남효온은 오랫동안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공자는 마음을 잡으면 보존하고 마음을 놓으면 잃는데, 마음은 들고남에 때가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마음대로 들고나는 것입니까?”

“마음이 어찌 마음대로 출입하겠는가?”

“여기에 앉아도 마음은 어디든지 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마음대로 출입하는 것이 아닙니까?”

“마음이 정말로 출입하는 것은 아니네. 마음을 잡는다는 것은 신체의 기운을 순수하게 하여 마음을 잡고 보존한다는 말이고, 마음을 놓는 것은 신체의 기운이 어지럽고 거칠어져 마음의 주인이 밖에 있게 되어 나간다고 하는 것이네.”


남효온은 무릎을 쳤다.

“몸에 있는 욕망을 철저히 지우면 마음이 몸의 주인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외부에 빼앗긴다는 말씀이군요.”

김시습은 빙그레 웃었다.


남효온은 묻고 김시습이 답하며 밤을 새웠다. 남효온이 물었다.

“왜 30년이나 도성을 떠나야 했습니까?”

김시습은 딴 청을 할 뿐,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남효온은 다른 말을 꺼내었다.

“전국 각지를 다녀보니, 어디가 좋던가요?”


김시습은 대답 대신 남효온에게 물었다.

“자네는 평양에 있는 단군묘를 가보았는가?”

“아직 못 가보았습니다.”

“단군이 사천 년 전 무진(戊辰)년에 이 땅에 나라를 세우고 우리를 낳으신 덕에 우리 강산에 사람이 살게 된 것이네.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찾아서 참배를 올리게.”



한참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후, 남효온이 다시 물었다.

“30년이 지나 다시 도성을 돌아올 수 있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번에는 김시습이 답을 해주었다. 조카를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고, 결국 어린 조카를 죽이기까지 한 무도한 세상에 학문을 하여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며 책을 덮고, 도성을 떠나 전국을 방랑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세조와 예종이 죽고 성종이 왕위에 오르고 성군(聖君)이라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자자하여 확인하고자 도성에 돌아왔다고 했다.


남효온이 물었다.

“이제 확인이 되었습니까?”

대답 대신 김시습은 딴 이야기를 꺼내었다.

“상왕복위 운동에 실패해 죽은 여섯 명의 인걸들을 아는가?”

남효온은 고개를 저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였다.

“성삼문과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가 누구인지 아는가?”

“성삼문과 박팽년은 들어보았습니다. 병자년의 난을 일으킨 사람들이 아닙니까?”


김시습이 손을 꼽더니, 남효온을 보고 말했다.

“병자년 때 자네는...... 세 살이었구먼. 이후에 기록된 역사가 없으니 제대로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김시습은 다시 물었다.

“문종의 왕후께서 상왕복위 운동으로 폐위가 되고, 소릉의 묘를 파서 옮기게 된 것을 아는가?”

그날 밤 남효온은 스무 살의 나이에 역사가 감추고 있는 많은 비밀을 알아버렸다. 김시습이 밝힌 어린 왕의 불운과 세조의 패역, 여섯 명의 충신이 죽음으로 보여준 절의정신은 젊은 가슴을 뒤흔들었다. 세조의 형수였던 현덕왕후는 상왕을 낳고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왕후가 죽은 이후 친정 집안이 상왕복위에 연루되어 멸문지화를 당하면서 왕후의 지위 또한 서인(庶人)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게 되고 무덤은 파헤쳐져 옮겨지게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소릉을 폐위한 것은 민심과 천심에 어긋나므로 묘소를 복위하여 예법에 따라 종묘에서 문종과 함께 제사를 지내게해야 한다고 김시습은 목청을 돋우었다.


남효온은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토하듯 말했다

“하루속히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겠지.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닐세. 적어도 세조 때의 공신이 모두 땅속에 묻히고 난 뒤에야 소릉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네. 상왕복위 운동을 일으키다가 역적으로 거열형을 당한 인걸들의 명예회복은 더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하겠지.”

“말씀해주신 여섯 명의 인걸들은 언제쯤이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려 했던 충신으로 역사가 평가하겠습니까?”

“그들이 제대로 평가를 받으려면 적어도 백 년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이네.”


남효온은 자신이 품고 있던 어려운 문제를 명쾌하게 답해주던 김시습이 그리웠다. 구언에 답하는 상소에 자신이 생각하는 문제를 넣어도 될지 정하지 못해 김시습을 찾았으나, 아쉽게도 집에 없었다.

‘상왕의 제삿날이 다가왔으니 영월이 가까운 절에라도 가신 것인가.’


남효온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김시습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수락산을 내려왔다. 남효온은 집으로 돌아와, 추강(秋江, 지금의 행주산성 근처의 한강)에 낚시를 들이우고 상소에 올릴 내용을 생각했다. 임금이 물은 ‘백성들이 고통을 견딜 수 없는데 그 사정을 위에서 모르지는 않는가?’에 대한 답을 생각했다. 남효온은 지난번 정여창, 이심원과 함께 여주를 다녀오면서 목격한 비극이 생각났다.

‘백성들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권세가의 집에서 이자를 높게 쳐주고 곡식을 빌리므로,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노력하는 공이 추수 때가 되면 몽땅 빼앗기는 괴로움으로 되돌아오고 있지 않았는가.’


시급한 일은 궁중에서 쓰는 곡식, 포목, 잡화 등 왕실 재정을 관리하는 내수사(內需司)의 혁파였다.

‘예전 성군(聖君)들은 백성과 더불어 이(利)를 다투지 아니하였고 사사로이 간직해 두지 아니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어찌 그렇지 않은가. 내수사의 관리들과 수많은 노복들은 각 고을에 왕래하면서 사사로이 곡식과 포목을 비축하여 날마다 백성들과 더불어 매매하여 이익을 취하고 백성의 재물을 강제로 빼앗기까지 하면서 쌓아놓아서 썩기까지 한다는 것이 아닌가.’

내수사는 군주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군주의 사적(私的) 기구이면서 국가의 공식 기구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남효온은 오랫동안 가슴에 품은 생각을 곱씹었다.

‘소릉(昭陵)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소릉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이미 결심하지 않았던가? 소릉을 회복하여 과거의 잘못을 고치지 않은 세상은 바른 세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서 어찌 과거를 보고 관리가 되어 녹을 먹을 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남효온은 강 위에 무심코 내려져있는 낚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소릉 복원을 상소에 거론하면 나에게 큰 화를 불러오게 할 것이다. 못해도 귀양이고 심하면 참형을 당할 수도 있다.’


남효온은 눈을 감았다.

‘하늘이 재해를 내린 것은 그동안의 정치를 되돌아보아 반성하고 고쳐나가라는 뜻이다. 평범한 유생으로 어찌 이런 기회가 있겠나. 특별히 구언(求言)의 명을 내려서 하늘이 내린 변괴에 대응할 방법을 듣고자 하시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때를 만나,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말씀을 드려야 한다. 하늘이 내리신 어두운 역사를 바르게 할 기회를 살려야 한다. 소릉을 회복시키고, 바른 세상에서 당당히 입신(立身)하여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치자.’


남효온은 낚시를 거두며 결심했다.

‘어차피 입신양명을 꿈꿀 수 없는 바르지 못한 세상이라면, 귀양을 가거나 참형을 당한 들 무슨 차이가 있겠나?’

남효온은 생각을 정리한 후, 잡은 물고기를 모두 물에 놓아주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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