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온은 먹과 벼루를 챙기고 종이를 꺼내었다. 벼루에 물을 따른 후 왼손으로 벼루를 단단히 잡고 오른손으로 천천히 먹을 갈기 시작했다. 남효온은 며칠을 두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서판(書板) 위에 종이를 넓게 펼쳐 얹은 다음 추강에서 얻은 매끈한 조약돌로 고정했다. 남효온은 붓끝에 힘을 모았다.
“이달 초하루에 하늘에서 흙비가 내리자 전하는 성왕(聖王)이면서도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기지 아니하시고 아랫사람에게 구언(求言)하시므로, 신은 초야에 사는 한 백성으로서 붓을 잡았습니다.”
남효온은 먼저 임금이 질문한 ‘감사가 제대로 지방수령에 대한 관리감독을 못하는가?’의 답을 올렸다.
“백성들은 먹고살기 위해 권세 있는 집에서 높은 이자로 곡식을 빌리므로, 추수 때가 되면 손발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노력하는 공이 권세가의 노복에게 몽땅 빼앗기는 괴로움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런데도, 감사가 된 자는 백성의 근심을 묻지 않으니, 수령들과 권세가의 노복들이 마음대로 백성의 고혈을 착취해도 예사로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실정에 우리 백성이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남효온은 붓을 단단히 잡고, 임금이 ‘인재를 쓰고 버리는 데에 잘못되었는가?’라는 물음에 자신의 생각을 아뢰었다.
“전하께서는 경연(慶延)에게 벼슬을 주고 최소하를 거두어 썼으니 사람을 쓰는 것이 마땅하였습니다. 즉위하신 7년에는 송희현이 재물을 탐함으로써 사형을 받았고, 9년에는 김주를 뇌물을 받은 관리로서 귀양을 보냈으니 사람을 버리는 일이 마땅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연(慶延)이 이산(尼山, 지금의 논산지역) 현감으로 귀임하였습니다. 신은 경연이 늙어서 물러가 죽을 날이 이미 가까웠는데, 6년을 지방에 있으면 재능이 녹슬게 될 것이 염려됩니다.”
경연(慶延)은 아버지의 병환을 구하기 위하여 한겨울에 잉어를 잡아 바친 일화와 이웃 동네 백정 형제 3명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였는데, 경연의 효성이 지극함을 듣고는 개과천선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졌다. 성종이 그의 효행을 듣고 발탁하여 종 6품 중앙 직에 임명하였다가 외직인 이산 현감(尼山縣監)으로 옮긴 것을 남효온은 지적하였다.
남효온은 이어서 임금이 물은 ‘백성들이 고통을 견딜 수 없는데 그 사정을 위에서 모르지는 않는가?’의 답을 써 내려갔다. 왕실이 사사로이 재물을 모아 쌓아 두는 것을 비판하며, 국왕의 부는 백성에게서 오는 것인데 왕이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는 것은 이(利)에 불과하고 의(義)가 아니라고 했다.
“내수사의 재물과 곡식은 모두 우리 백성에게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밝게 살피시고 하루속히 내수사를 혁파하여, 내수사 노비는 장례원에 소속시키고, 미곡과 포목은 호조에 소속시키소서. 민심이 기뻐하면 하늘의 재앙은 그칠 것입니다.”
남효온이 제기한 내수사 혁파는 이후 조선시대 내내 개혁의 주요 대상이 되었으나 왕실 입장에서는 왕실의 사사로운 주머니를 없애기 어려운 과제였다.
남효온은 무속의 폐해를 지적하였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유교를 숭상하고 이단을 물리쳐서 무당을 성 밖으로 내쫓고 중(僧)을 저자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니, 온 국민의 복이며 유자(儒者)들의 기쁨입니다. 그러나 국가적 행사로서 굿을 주관하도록 도성에 국무(國巫)가 그대로 있으니, 신은 그 무당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말하기를, 나라도 성수청이 있는데 우리들이 어찌하여 무당을 섬기지 아니할 것인가 하며, 생사화복(生死禍福)이 모두 무당에게서 말미암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국무(國巫)는 명산대천에서 왕실의 복을 기원하는 제사와 기우제 및 왕비나 대비들이 의뢰한 굿을 집전하고 담당하였다. 성수청 등의 국가기관에 국무당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남효온은 일반 무당은 도성 안에서 영업을 못하게 도성 밖으로 쫓아내었는데 왕실을 위한 성수청이 건재하고 이곳에 소속되어 있는 국무당은 도성에 그대로 두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남효온은 왕실이 이단을 믿는 것을 거론하였다.
“백성들은 말하기를, 위에서도 부처를 믿는데 우리가 어찌 부처를 섬기지 아니할 것인가 합니다. 사람의 수명과 귀천, 그리고 죽은 후의 일이 모두 부처에게서 말미암는다고 생각하니, 하늘에 방자하고 신(神)을 속이는 것이 이보다 심함이 없어, 천지의 화기를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더 심하게 따라 하는 자가 있으니, 전하께서 먼저 국무(國巫)를 없애면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이 저절로 없어질 것이며, 왕실이 먼저 부처를 멀리하면 불사(佛事)는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그칠 것입니다. 이단이 없어지고 하늘과 사람이 화합하면 재이(災異)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효온은 붓을 멈추었다. 붓을 든 채로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제부터가 실로 내가 가슴에 품고 있던 말이다. 이 글은 나에게 큰 화를 불러오게 할 것이다.’
남효온은 눈을 뜨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나는 소릉(昭陵)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소릉이 복원되지 않은 세상에서는 과거를 보지 않기로 이미 결심을 하지 않았는가. 옥에 갇히고, 귀양을 갈지언정, 말할 기회가 왔는데 어찌 입을 다물고 있겠는가.’
남효온은 붓을 다시 들어 가슴속에 있는 말을 토해내듯 글을 써 내려갔다.
“신이 삼가 살피건대, 소릉이 이십여 년 동안 폐함을 당하여 원혼이 의지할 바가 없을 것이니, 하늘에 계시는 문종의 영(靈)이 어찌 홀로 제사받기를 즐겨하시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바로 하늘의 마음이며 사람의 기운은 바로 하늘의 기운입니다. 하늘의 마음과 하늘의 기운에 순응하지 아니하는 것이 재이(災異)를 내리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남효온이 소릉 복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세조의 행위를 패륜으로 보는 시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위험을 무릅쓴 결단이었다. 세조의 직계 자손인 성종이 왕위에 있고, 소릉을 폐묘로 만든 당시의 대신들이 거의 모두 조정의 대신으로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감히 누구도 이 문제를 거론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효온은 상소를 마무리하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좌승지 손순효는 승정원에 접수된 남효원의 상소를 읽어보다가 머리털이 곤두섰다.
‘감히 일개 유생이 어찌 소릉 복원을 주장하는 것인가? 이것은 반역의 죄에 해당되는 것인 줄 모른단 말인가.’
승지들은 상소를 돌아가며 읽어보고 서로 얼굴을 보며 놀라워했다. 도승지 임사홍도 승지에게 건네받은 상소를 읽어보고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임사홍은 이번 기회에 이심원을 제대로 잡기로 마음먹었다. 임사홍은 승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상소를 주상께 올리시오. 내가 알기로 남효온은 이심원과 함께 어울리는 자이오. 이들은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성종은 승지가 올린 유생 남효온의 상소를 펼쳐 읽었다. 상소는 수령의 자질 문제와 내수사 혁파를 주장하고 있었다. 성종은 상소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보았다.
“몸이 옥당(玉堂)에 있고 지위가 당상에 이른 자는 녹이 적지 아니한데, 홀로 되어 걸식하는 누이 한 명을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풍속을 손상시키는데, 하물며 밑의 사람들이겠습니까? 신의 어리석고 망령된 생각으로는, 전하께서 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그 나머지 사람을 경계하여 교화를 행하면 풍속이 바르게 될 것이며, 교화를 행하여 풍속이 바르게 되면 재이(災異)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균관 유생들은 가르치기에 적합한 스승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비록 학문의 이치를 궁구하는 참되고 올바른 선비가 있을지라도 참된 스승이 없으니, 그들은 성균관에 나가 배우기를 즐겨하지 아니합니다. 도(道)를 배우려 하나 저 사람은 도가 없으며, 학업을 배우려 하나 저 사람은 학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효온이 성균관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의 낮은 수준을 지적하자, 성종은 선산부사로 내려간 김종직이 생각났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현인 군자를 얻어서 성균관에 유생을 가르칠 스승으로 삼으면 유생들의 학문이 저절로 바르게 되며 인재가 나올 것입니다. 인재가 나와서 명신(名臣)이 많이 나오게 되면 하늘의 변괴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임금은 소릉 복원을 주장하는 내용에 눈길이 꽂혔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소릉을 폐한 것은 사람의 마음에 합하지 아니한 것이니, 하늘의 마음에도 합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릉을 복원하여 민심을 달래고 하늘의 벌에 답하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겠습니까? 세조께서도 예종께 훈계하시기를, 만약 내가 한 일이라고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융통을 부리지 못하면 나의 뜻을 따르는 바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전대(前代)에 얽매여 형편에 맞게 고치지 아니하겠습니까?”
성종은 상소 읽기를 멈추었다.
‘소릉 복원을 주장하는 것은 세조 때의 정치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어찌 이 유생은 감히 이 문제를 거론하는가?’
성종은 남효온의 상소를 마저 읽었다.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 유의하시어 채택하시면, 어찌 재이(災異)만 그치게 할 뿐이겠습니까? 옛사람이 이르기를, 천심(天心)이 인군(仁君)을 사랑하여, 재이를 보이는 것은 그 덕을 굳게 하려는 것이며, 화(禍)를 보이는 것은 그 뜻을 삼가게 하려는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그 덕을 굳게 하고 그 뜻을 삼가면 오늘의 흙비가 내일의 감로와 예천이 될 것입니다.”
감로(甘露)와 예천(醴泉)은 단맛이 나는 이슬과 단물이 솟는다는 샘을 일컬으며, 나라가 태평하면 하늘에서 좋은 징조로 내려준다는 말이 전해져 왔다.
성종은 남효온이 올린 대담한 상소를 읽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임금은 승정원에 상소를 내려, 승지들이 상소의 내용을 의논하여 의견을 아뢰라고 명하였다.
도승지 임사홍은 임금의 명을 받고 승지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내가 이야기한 대로, 남효온은 이심원과, 또한 이심원이 지난번 상소에 천거한 강응정 등과 어울리는 자이오. 이들을 이대로 두고 볼 수가 없게 되었소.”
좌승지 손순효가 말했다.
“그들 무리는 서로 공자와 안연이라고 일컬으며 성현의 이름을 희롱했다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망령된 자들입니다.”
또 다른 승지가 거들었다.
“상소에 이르기를, 저 사람에게서 도(道)를 배우려 하나 저 사람은 도가 없고, 저 사람에게서 학업을 배우려 하나 저 사람은 학업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남효온은 한낱 유생으로서 성균관에서 가르치는 스승이 제대로 된 학자가 아닌 것을 부끄러워하며 거론함은 매우 방자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