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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Oct 07. 2022

신(臣)은 극형을 받을지언정 왕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헌부 대관(臺官)은 대사헌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탄핵을 하였다


 대통령이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자격 없는 사람으로 임명했을 때, 평검사가 공개적으로 임명권자와 임명된 사람을 비판할 수 있을까. 감사원의 과장이 새로 임명된 감사원장에 대해 부적절한 인사라고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말할 수 있을까? 조선의 선비들은 종종 조직의 수장이라 하더라도 잘못이 있으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잘못을 논하고 비판하였다.


 조선시대 사헌부는 관리의 부정과 비리를 규찰하는 역할을 하여 오늘날 검찰과 감사원에 해당한다. 관리들의 죄를 캐어 밝힐 뿐 아니라 임금의 말이나 행동에 잘못이 있을 때에도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간절히 말하였으므로 오늘날 언론기관의 역할도 했다.


 사헌부에 소속된 대관(臺官)들은 누구보다도 자부심이 강했다. 대관들은 권세가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심지어 임금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자기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었다.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일지라도 잘못이 있으면 바로 탄핵했다. 사헌부는 관리의 죄를 묻고 처벌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성종 8년 8월, 정 5품 사헌부 지평(持平)은 사헌부의 수장으로 임명된 신임 대사헌의 인사에 문제가 있음을 임금에게 진언하였다.

 "현석규가 대사헌이 된 것은 옳지 못합니다."

 임금이 이유를 묻자, 사헌부 지평은 대답하였다.  

 "현석규는 공이 없고 오히려 죄가 있는데도, 분에 넘치게 대사헌의 벼슬을 내렸습니다. 전하께서 현석규에게 분수에 넘는 지나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평검사가 새로 임명된 검찰총장의 인사에 반기를 든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현석규가 도승지 시절, 대간들은 그가 동료 승지들을 겁박하여 예를 잃었으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탄핵하였다. 성종은 조그만 실수 때문에 최고 신임하는 가까운 신하를 잃을 수 없어 대간(臺諫)들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간들의 탄핵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자 결국 현석규를 도승지에서 물러나게 하고, 대신 대사헌에 임명하였다. (성종실록, 재위 8년 8월 26일)


 성종은 자신의 인사가 부당하다고 한 대관에게 노한 기색으로 물었다.

 "대사헌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느냐?"

 사헌부 지평이 아뢰었다.

 "현석규는 아랫사람을 제대로 거느리지 못했고, 동료와 더불어 화합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실책입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8월 28일)


 다음날 정 4품 사헌부의 장령(掌令)도 대사헌의 인사가 잘못되었음을 아뢰었다.

 "현석규가 품계를 뛰어넘어 사헌부의 수장이 되었으니, 사헌부 관리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8월 29일)

 

 이번에는 부장검사 정도의 검찰청 간부가 자격 없는 인물이 검찰의 수장이 된 것이므로, 검찰청에 근무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한 것이다. 사헌부 대관들은 자격이 없는 인물이 대사헌에 임명되었다고 담대히 조직의 수장을 탄핵한 것이었다.


 성종은 사헌부 관리들이 대사헌 임명에 반발하자, 어쩔 수 없이 현석규를 대사헌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대신 직급을 올려 형조판서에 임명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8월 29일)


 임금의 파격적인 인사에 대간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성종 8년 9월 5일, 사헌부의 정 5품 지평 김언신은 경연에서 형조판서 현석규를 탄핵했다.

 "신이 생각하건대, 현석규가 음험한 것이 한 가지가 아닙니다. 현석규가 도승지로서 전하를 가까이 보좌할 때, 칠원(오늘날 경남 함안지역) 현감이 대신들에게 뇌물로 준 물건을 몰수하지 못해 원망이 주상께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바르고 곧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것이 한 가지 이유입니다."


 김언신은 말을 이었다.

 “현석규가 동료 승지에게 눈을 부라리고 팔뚝을 뽐내며 여러 승지로 하여금 모두 자기 말을 듣고 자기 뜻을 어기지 못하게 하려 하였으니, 이것이 또 다른 이유입니다. 사람의 은밀한 심보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제일 잘 압니다. 같이 일한 승지가 모두 용렬한 사람들이 아닌데, 화합하고 협력하지 않았으니 이것도 그가 음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평검사가 법무부 장관의 잘못을 논하며 임금에게 파직을 요구한 것이다. 성종은 현석규를 변호하였다.

 "그대가 어디서 듣고 말하는지 모르지만, 팔뚝을 뽐냈느니 하는 말은 모두 간관이 만든 말이다. 또 칠원 현감이 증여한 물건을 몰수하자고 대간들이 말했지만 이미 사면령이 내렸기에 법에 의해 추징하지 않은 것인데, 어찌 현석규의 과실이겠는가?"


 임금은 김언신에게 물었다.

 "그대는 현석규가 음험하다고 말하니, 그를 소인(小人)으로 여기는 것이냐?"

 김언신은 임금의 노기를 느꼈으나 소신대로 답했다.

 "사람됨이 음험하면 간사한 소인입니다. 전하께서 현석규의 간사한 것을 살피지 못하시니, 신이 깊이 근심하는 것입니다. 덕종(德宗)과 신종(神宗)은 모두 예전의 뛰어나고 총명한 임금이지만, 덕종이 일찍이 이필(李泌)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이 노기(盧杞)가 간사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 하니, 이필이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노기가 간사한 까닭입니다.’ 하였고, 신종이 왕안석(王安石)의 간사함을 알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창생을 그르쳤습니다. 현석규가 노기와 왕안석의 간사함을 겸하였는데 전하께서만 알지 못하시니, 이것은 현석규가 참으로 간사한 까닭입니다."


 노기는 당(唐) 나라의 재상으로 간신의 대표적 인물이었고, 왕안석은 송(宋) 나라의 재상으로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과 대립하여, 주자학파들에게 소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다.


 성종이 목소리를 높여 다시 물었다.

 "그대가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하느냐?"

 김언신은 기개를 보이며 답했다.  

 "참으로 소인입니다."


 성종은 대신들을 돌아보며 현석규가 과연 소인인지 물었다. 대신들이 답을 하였다.

 "신들은 현석규가 소인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임금은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신이 모두 소인이라고 하지 않으니, 이것은 김언신이 임금을 속인 것이다. 이 자리에 없는 정승들에게도 두루 물어서, 만일 그대 말이 실상이 없다면 그대는 임금을 속인 죄를 받아야 할 것이다."


 김언신은 임금의 겁박에 굽히지 않고 말했다.

 "신이 마땅히 극형을 받겠습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5일)


 (사헌부 지평 김언신은 임금에게 형조판서가 소인이니 파직해야 한다고 간하고, 자신이 판단을 잘못했으면 극형을 받겠다고 단언했다. 과연 김언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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