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신이 극형을 받겠다고 까지 극언(極言)을 하자, 성종은 정승들과 이조의 당상관들을 불러 의논하기를 명하였다.
"지평 김언신이 현석규를 노기와 왕안석에게 견주는데, 이 말이 옳은지 그른지 의논하여 아뢰라."
정인지와 정승들은 단정적인 답을 하지 못했다.
"신들이 평상시에 현석규와 일을 같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임금이 정승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김언신이 현석규를 가리켜 소인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임금을 속이는 것이다. 만일 현석규가 참으로 노기와 왕안석과 같다면, 이 두 사람은 모두 나라를 그르친 간신이었으니, 지금 현석규의 진퇴는 국가의 흥망과 안위에 관계된다. 과인이 만일 알지 못하고 소인을 썼다면, 덕종과 신종의 잘못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경들은 현석규를 비호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보라."
좌의정 심회와 우의정 윤자운이 나서서 아뢰었다.
"현석규가 소인인 것을 신들은 실로 알지 못합니다."
김국광도 이어서 말했다.
"현석규는 소인이 아닙니다. 평시에 강하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의 과실도 지적하기를 꺼리지 않으니, 참으로 강직한 사람입니다."
이조 판서 강희맹이 아뢰었다.
"신들이 만일 현석규가 소인인 것을 알았다면 마땅히 형조판서를 제수하라고 명하셨을 때 논박하였을 것입니다."
임금이 말했다.
"현석규가 만일 참으로 소인이라면, 내가 덕종과 신종이 소인을 쓴 잘못과 같다는 비평을 달게 받겠다. 하지만 만일 현석규가 소인이 아닌데 김언신이 소인이라고 말하였다면, 이것은 임금을 속인 것이니 어찌 직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5일)
임금은 김언신을 어전으로 불러 물었다.
"노기와 왕안석은 자기를 그르게 여기는 자를 헐뜯어서 멀리하고 배척하였으니 소인의 자취가 나타났다. 현석규가 한 일도 이와 같으냐? 그대가 만일 망령된 말을 하여 임금을 속였다면 마땅히 극형을 받겠다고 하였는데, 지금 정승들이 모두 현석규는 소인이 아니라고 하니, 그대가 극형을 받겠느냐? 그대가 과인더러 소인을 쓴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그대가 과인을 진(秦) 나라 이세(二世)에 견주었느냐? 과연 이와 같다면, 그대가 벼슬을 버리고 마땅히 멀리 숨어야 옳을 것인데, 어째서 이런 때에 벼슬하느냐? 그대가 도대체 과인을 어떤 임금에 견주느냐?"
김언신은 임금의 질책에도 굴하지 않고 말했다.
“신은 현석규를 음험하고 간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임금은 소리쳤다.
"작은 일을 가지고 현석규를 노기와 왕안석에 견주는 것이 옳으냐? 선왕들께서 대통(大統)을 전하셨는데 하루아침에 과인이 소인을 써서 나라를 그르친다면, 후세 사람들이 무어라 하겠는가?"
성종은 김언신에 대한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현석규가 참으로 소인이라면, 과인이 덕종과 신종이 소인을 쓴 잘못과 같다는 비판을 달게 받겠거니와, 만일 소인이 아닌데 김언신이 소인이라고 말하였다면, 이것은 임금을 속인 것이다. 어찌 김언신의 죄를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언신은 임금이 자신의 죄를 묻겠다는 말에도 굴하지 않고 아뢰었다.
"신이 죄를 당하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으나, 지금 현석규를 쓰면 후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5일)
성종은 의금부에 명을 내렸다.
"현석규는 소인이 아니므로 과인이 임용하였고, 대신들도 모두 소인이라 하지 않았다. 지평 김언신은 현석규를 가리켜 소인이라 하고 심지어 과인을 당나라 덕종과 송나라 신종에 견주고, 만일 소인이 아니면 극형을 받겠다고 하며 무리하게 주장하였다. 김언신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국문하여 아뢰라."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6일)
김언신이 의금부 옥에 갇혔다는 소식에 사헌부 대간(臺諫)들이 모두 어전에 나와 아뢰었다.
"신들이 들으니, 지평 김언신을 의금부에 내리었다 합니다. 신들이 비록 직접 현석규를 가리켜 소인이라 한 것은 아니나, 본래 모두 같은 마음으로 탄핵하였는데, 김언신 만을 국문하니 부당합니다. 신들을 아울러 하옥하소서."
임금이 답했다.
"김언신을 하옥한 것은 현석규 때문이 아니고 나더러 소인을 썼다고 한 때문이다. 대저 소인은 국가의 흥망에 관계되니, 그 화가 참혹하지 않은가? 또 김언신은 스스로 말하기를, ‘신이 만일 망령된 말을 하였으면, 신이 극형을 당하겠습니다.’ 하였으므로, 다스리는 것이다."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6일)
조정의 여론은 김언신이 임금에게 무리한 말을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의 강개함을 칭찬하는 분위기였다.
영의정 정창손이 어전에 나오지 못하여, 임금은 승정원 주서를 보내 김언신이 말한 대로 현석규가 소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게 하였다. 정창손이 아뢰었다.
"현석규는 후배이므로 그를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 하였는데, 지금 김언신이 전하에게 현석규를 논박하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이 지나치게 곧으니, 마음이 크고 넓어 구속을 받지 않는 선비입니다. 밝은 임금에 곧은 신하를 보니, 신은 기쁘고 경하하는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5일)
김언신이 국문을 당하게 되자, 승지 손비장이 아뢰었다.
"지금 김언신의 말이 비록 너무 과하기는 하나, 현석규가 소인이고 아닌 것은 후세에 나타날 것이고 전하의 덕에는 손상이 없을 것입니다. 청컨대 간하는 신하를 너그럽게 용서하소서."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6일)
전 도승지인 이조 참판 신정(申瀞)이 상소를 올렸다.
"신이 재주 없는 몸으로 외람되게 후설(喉舌, 목구멍과 혀를 이르는 말로 승지를 칭함)의 직임을 맡아서 7년 동안 시종 하였는데, 전하께서 간언(諫言)을 따르는 것은 예전의 어느 제왕도 미칠 수 없습니다. 지금 지평 김언신의 말은 지나치게 곧은 직언에 불과할 뿐이며, 전하께서 간언을 따른 아름다운 덕이 부른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 김언신의 지나친 말을 너그러이 용서하여 더욱 언로(言路)를 넓히소서."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6일)
예문관 부제학도 상소를 올렸다.
"김언신이 낮은 벼슬의 신하로서, 위로는 군주의 위엄을 범하고 아래로는 대신을 논하여 원망을 샀으니, 무엇이 자기 몸에 이롭겠습니까? 전하의 포용하시는 도량을 믿고 직책을 다한 것에 불과한데, 한 마디 말이 맞지 않아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곧은 기운을 꺾을 뿐이니, 조정에 이로운 일이 아닙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