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徒)는 중죄를 진 사람에게 노역에 종사시키는 형벌이었다. 당시 노역의 주된 일은 높은 산봉우리의 봉수대를 관리하는 일, 소금 만드는 일, 쇠를 녹이는 일, 종이나 기와 만드는 일 등이었다.
임금은 의금부 지사를 나무랐다.
"임금을 속인 죄는 마땅히 죽여야 하는데, 어찌 형벌이 이처럼 가벼운가? 법을 다시 살펴서 벌을 내리고, 아울러 김언신을 잡아오시오."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8일)
임금이 김언신에게 중벌을 가하려고 하자, 신하들은 김언신을 구제하려고 나섰다. 우선 가까운 승지들이 나서서 아뢰었다.
"김언신의 말은 참으로 너무 과하나, 대간으로서 말한 것입니다. 지금 만일 죄를 주면 일을 말하는 자가 품은 바를 다 말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8일)
종 2품 동지중추부사 김유(金紐)도 어전에 나와 아뢰었다.
“대저 능히 대신의 일을 말하는 사람이 적은데 김언신이 두려워하지 않고 숨김없이 다 진달 하였으니, 마땅히 포상을 가하여야 할 터인데, 도리어 죄로 책망하면 뒤에 누가 감히 대신의 일을 말하겠습니까?"
임금이 답했다.
“김언신이 과인더러 소인을 썼다 하기 때문에 대신에게 물으니, 모두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하였다. 김언신이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이 극형을 받겠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너무 심한데, 경같이 상소하는 사람이 또한 많다. 과인이 헤아려서 결정하겠으니, 경은 물러가라."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8일)
조금 뒤에 의금부는 임금의 명에 따라 김언신을 승정원 뜰에 끌고 왔다. 김언신이 항쇄(項鎖, 목에 쓰는 칼)를 차고 승정원 뜰에 나왔다고 아뢰니, 임금은 내관 안중경을 시켜 김언신에게 물었다.
"그대가 처음에 자신이 극형을 당하겠다고 말하였는데, 지금 죄가 죽기에 이르렀어도 현석규를 소인으로 여기느냐? 당초에 고집한 것이 잘못이냐?"
김언신은 목에 칼을 차고도 주저 없이 답하였다.
"신이 처음부터 죽기를 두려워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잘못 고집한 것도 아닙니다. 현석규는 참으로 소인입니다."
임금이 김언신의 말을 전해 듣고 혀를 찼다.
임금은 환관을 통해 다시 물었다.
"그대가 죽기에 임하여서도 계속해서 현석규를 소인이라 하고, 과인을 덕종과 신종이 소인을 쓴 것과 견주고 있느냐?"
"신이 죽음이 두려워 현석규를 소인이 아니라고 고쳐 말한다면, 이것은 임금을 속이고 죽는 것입니다."
임금이 김언신에게 다시 물었다.
"노기와 왕안석은 모두 당류(黨類)가 있었는데 지금 대신들이 모두 말하기를 현석규는 소인이 아니라고 하니, 이것은 현석규의 당(黨)이 되어 숨기는 것이냐?"
"전하의 밝은 정치에 어찌 붕당이 있겠습니까? 왕안석이 소인인 것도 오직 여헌가 한 사람이 알았습니다. 그만큼 소인을 알아보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신이 하늘 아래에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임금이 환관에게 김언신의 말을 전해 듣고 다시 말했다.
"과인이 그대를 죽이면 걸(桀)이나 주(紂) 같은 임금이 될 것이다. 그대가 죽어도 용봉(龍逢)과 비간(比干)하고 더불어 지하에서 놀고자 하느냐?"
용봉은 하(夏) 나라의 어진 신하인 관용봉(關龍逢)인데, 걸왕(桀王)의 무도함을 간(諫)하다가 피살되었고, 비간은 은(殷) 나라 주왕(紂王)의 숙부인데, 주왕의 나쁜 정치를 간하다가 피살되었다.
왕의 말을 내관에게 전해 들은 김언신이 결연히 말했다.
"신은 주상에게 바른말을 하다가 죽는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임금은 김언신의 태도와 말을 전해 듣고 환관을 통해 말했다.
“어찌 임금으로서 간하는 신하를 죽이겠느냐? 과인이 그대를 옥에 가둔 것은 그대가 고집하기 때문이었다. 당 태종은 간언을 듣는 것이 점점 처음만 같지 못하였다 하였는데, 과인이 어찌 그와 같겠느냐? 그대가 강개하고 굴하지 않는 것을 과인은 대단히 기뻐한다. 그대는 직(職)에 다시 나아가서, 앞으로도 말할 만한 일을 만나거든 극진히 말하라. 과인이 가상하게 여겨 받아들이겠다.”
성종은 김언신을 풀어주고, 승정원에 명하여 술과 음식을 먹이고 예우하여 보내게 하였다.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8일)
성종은 김언신의 지나침을 징계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의 간청과 그의 강개함을 높이 평가하여 방면하고 복직시켰다. 성종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과인이 김언신을 옥에 가둔 것은 본래 죄주자는 것이 아니라 엄히 징계하고자 한 것이다. 만일 과인의 과실을 말하였다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과인이 소인을 썼다고 하는 말은 정사에 관계되기 때문에, 듣고 마음 아파한 것이다. 그러나 그 강개한 것은 발탁하여 쓰고자 한다."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9일)
사헌부 지평으로 복귀한 김언신은 얼마 후 모친의 병이 위독해지고, 자신도 어지럼병이 생겨 사직을 청했다. 성종은 모친을 돌보면서 녹봉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김언신을 한가한 관직으로 바꾸어 임명하였다. 성종은 김언신에게 모친의 병에 좋은 약(藥)을 내려주며, 병이 나으면 다시 대간으로 쓰겠다고 하였다.
"품계를 올려 한가한 관직으로 바꾸어 임명하겠으니, 병이 낫기를 기다렸다가 쓰겠노라." (성종실록, 재위 8년 11월 12일)
실로 밝은 임금 아래 곧은 신하가 나는 법이다. 성종이 대간들의 말을 귀 기울여 받아들이니, 대간들도 두려워하지 않고 바른말을 할 수 있었다.
대간들의 담대한 기개를 느끼게 하는 실록의 기록이다.
“신들이 비록 직접 현석규를 가리켜 소인이라 한 것은 아니나, 본래 모두 같은 마음으로 탄핵하였는데, 김언신 만을 국문하니 부당합니다. 신들을 아울러 하옥하소서."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6일)
"신이 죽음이 두려워 현석규를 소인이 아니라고 고쳐 말한다면, 이것은 임금을 속이고 죽는 것입니다. 신은 주상에게 바른말을 하다가 죽는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성종실록, 재위 8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