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류산 Nov 11. 2022

향룡유회, 높은 곳에 오른 용은 후회가 있다

너무 높아 교만하여 백성을 무시하면  민심을 잃고 후회를 하게 된다

 넷플릭스 영화, ‘도망자 카를로스 곤의 이상한 이야기’를 보며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가 있었다. 주역에 나오는 글귀인 ‘항룡유회(亢龍有悔)’였다. 항(亢)은 높을 향으로, ‘향룡유회’의 뜻은 높은 곳에 오른 용은 후회하게 된다는 말이다. 높고 귀한 지위에 올라간 자가 교만함을 경계하지 않으면 실패하여 후회하게 됨을 경계하는 말이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르노의 부사장이었던 카를로스 곤은 르노가 공동 소유한 일본 닛산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당시 닛산은 2조 엔이 넘는 부채로 재무상태가 엉망으로 무너져가는 회사였다. 카를로스 곤은 일본의 종신 고용 문화를 배제하고 과감한 인력감축으로 재무 상태를 호전시키고 닛산을 되살렸다. 카를로스 곤의 구조조정 성공은 닛산의 주가를 300%나 상승시켰다. 가혹한 인력감축을 비난하던 일본 사람들도 그를 지구를 구한 슈퍼맨에 비유하는 등 찬사가 쏟아지며 셀레브리티로 대우하였다.

 

 카를로스 곤은 이러한 업적을 바탕으로 르노 본사의 회장이 되었다. 이때 일본 닛산의 회장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는 상식을 깨고 두 직책을 겸직하였다. 이로서 르노와 닛산 양쪽으로부터 수백억의 엄청난 보수를 받게 되었다. 카를로스 곤은 성공으로 오만해졌다. 자신의 제국에서 왕 노릇을 지속하며 누구의 조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를로스 곤의 운명은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 검찰에 전격적으로 체포되면서 급전직하로 불행한 결말로 치달았다. 그는 5억 엔의 엄청난 보석금을 주고 일본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여 레바논에 도착하였다. 그가 동양의 고전에서 나오는 ‘항룡유회’라는 말을 들어보았으면 지금쯤 이 말을 곱씹고 있을 듯하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향룡유회’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선조 재위 2년, 퇴계 이황이 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임금에게 병을 핑계로 귀향을 청하였다. 선조는 몇 번 만류하다가 드디어 허락하고 이황을 어전에 불러 물었다.

 "경은 지금 낙향할 것인데 과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황이 작심하고 아뢰었다. 

 "옛사람은 ‘치세(治世)를 걱정하면서, 명주(明主, 총명한 군주)가 위태롭다.’ 하였습니다. 명주는 남보다 뛰어난 자질이 있으므로 교만하여 백성들을 제어하고 신하들을 경시하는 마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성상의 자질이 고명하시어 일을 논의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독단하여 세상을 이끌어가려는 조짐이 없지 않아, 식자들은 그 점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신이 전일에 《주역》의 건괘(乾卦)에 ‘높이 오른 용이 후회가 있다(亢龍有悔)’는 말에 대해 아뢰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임금이 지나치게 스스로 뛰어난 체하여 신하들과 마음을 같이하고 덕을 함께 하지 않으면 어진 이들이 아래에서 도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이른바 높이 오른 용이 후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조수정실록, 재위 2년 3월 1일)


 항룡은 하늘 끝까지 다다른 용으로, 곧 승천한 용이다. 그 기상이 한없이 뻗쳐 있지만 하늘에 닿으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자는 주역의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항(亢)이란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며, 존재하는 것만을 알고 멸망하는 것을 모르며,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절정까지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높아 교만하기 때문에 백성을 무시하여 민심을 잃고, 너무 스스로 높아 어진 신하들의 적절한 보필을 받을 수 없다. 이러면 무엇을 하여도 후회를 하게 된다.”


 공자가 해석한 뜻과 퇴계 이황이 선조에게 간언한 말은 오늘날 높은 지위에 위치한 모든 리더의 마음에 새길만하다.  






(일러스트 출처)

https://kr.freepik.com

매거진의 이전글 신은 극형을 받을지언정 왕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