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쓰지 마소서 (8)

사관의 눈에 비친 임사홍은 간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by 두류산

8장


한명회는 조정에 갓 들어온 젊은 사관에게 일격을 당하자 머쓱하였다. 한명회는 법을 집행하는 대사헌 유지에게 눈길을 주었다. 유지는 임금에게 아뢰었다.

"구언(求言)한 것은 시대의 폐단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부도(不道)한 말에 대해서는 국문하여도 무방하다고 생각되옵니다.”

임금이 좌우를 둘러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사간원의 정언 성담년이 남효온과 이심원을 변호하였다.

"임금이 바른말을 널리 구하는 구언(求言)에 응하여 상소를 올렸는데, 옥에 가두고 심문한다면 앞으로 언로(言路)를 막을까 두렵습니다.”

성담년(成聃年)은 훗날 남효온과 함께 생육신으로 불리던 성담수의 친동생이며,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6촌 동생이었다.


영사 노사신도 성담년의 말을 거들었다

"이 사람들은 구언(求言)으로 인하여 말하였으니, 말이 비록 이치에 맞지 아니할지라도 이는 젊은 선비의 어리석은 일이므로 옥에 가두고 국문하는 것은 지나친 일입니다.”

성종은 흡족한 눈빛으로 사관을 돌아보았다. 사관 안윤손은 고개 숙여 한자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붓을 재빨리 놀리고 있었다.


성종은 경연을 마치고 어전으로 돌아와, 이심원과 남효온의 상소에 분개하고 있는 훈구대신들에게 글을 내리도록 승정원에 명하였다.

"심원이 옛 신하를 쓰지 말라고 한 것과 남효온이 소릉을 복원하자는 등의 말은 과인도 그것이 잘못임을 안다. 그러나 구언(求言)하고서 잘못되었다고 죄를 가하면 어찌 옳겠는가? 상당군 한명회는 이미 과인의 뜻을 다 알 터인데 오히려 과인이 그들의 말을 믿는다고 말하니, 의정부에 글을 내려서 여러 공신들로 하여금 과인의 뜻을 밝게 잘 알아듣도록 하라.”

이심원과 남효온 그리고 소학계를 만들어 뜻을 나누던 젊은 선비들이 붕당 죄로 몰려 하마터면 큰 화를 당할 뻔하였다. 성종이 이심원을 아끼는 마음이 컸고, 구언으로 인한 상소의 내용을 문제 삼아 처벌하는 것은 언로를 막는 일이라는 뜻이 확고하여 자칫 일어날 뻔한 참화를 막은 것이었다. 성종은 옛 제도와 훈구대신들을 반대하며 용기 있게 개혁을 주장하는 젊은 선비들을 보호하면서, 젊은 선비들의 과격한 말을 위험하게 생각하고 미워하는 한명회와 훈구대신들에게 따로 글을 내려 보내 그들의 불만을 다독거렸다. 아직 22살의 젊은 임금에게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세조 때 훈구대신의 위세는 여전히 강력하였다.


1478년 성종 9년 4월, 밤사이 도성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어두운 밤중에 바람마저 세게 불어 수백 집의 민가가 한꺼번에 불에 타버렸다. 대간들은 흙비에 이어 화재를 내린 하늘의 꾸짖음에 대한 대응으로 금주(禁酒)를 하자는 의견을 올렸고 성종은 허락하였다.


도승지 임사홍은 대간들이 권하여 술을 금하는 명을 내렸다는 말을 듣고 언짢았다. 대간들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요즈음 대간은 주상이 시를 짓는 것을 보면 옳지 못하다고 하고, 활을 쏘아도 옳지 못하다고 하고, 술도 마시지 못하게 하니, 그렇다면 주상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임사홍의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흙비는 봄철마다 찾아오는 것이고, 도성의 화재도 부주의하면 일어날 수 있다. 술을 먹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술을 금한다고 해결될 일이겠는가? 더구나 곧 단오가 다가오는데 술도 없이 어떻게 명절을 즐길 수 있겠는가?’


문득 대간들이 공주를 위해 건축한 집의 규모가 크다고 탄핵한 것이 떠올랐다. 임사홍은 대간들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술을 금한들 사간원의 간관들은 태연히 마실 것이고, 조정에서 벼슬하는 사람은 적발당하는 일이 없이 오직 힘없는 백성들만 죄를 받을 뿐이다.’


사간원은 법을 집행하고 관리를 규찰하는 사헌부에 비해 근무 분위기가 자유로워 간관이 근무 중에 술을 마셔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사간원의 간관을 대우하여 사간원 안으로 금위군조차 들어갈 수 없게 하였으니 금주령이 내려도 단속할 방법도 없는 상황이었다.


임사홍은 직접 임금을 알현하여 말하려고 하다가 임금이 대간의 언론 기능을 강화하고 힘을 실어주고 있음을 생각하여 차분하게 글로서 아뢰기로 하였다.

"술이란 것은 본시 사람이 마시는 것으로, 임금이 큰 재변을 만난 뒤에 몸을 정결히 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술을 금한 것은 한갓 형식 치레일 뿐입니다. 흙비는 때가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인데, 어찌 하늘이 내리는 경고이겠습니까? 이번 화재도 재변이라고 하는데, 민가의 집과 담이 가까이 붙어 있는데 조심하지 못해서 불이 나자, 마침 바람이 불어 연달아 탄 것이니, 괴이할 것도 없습니다. 대간은 전하께서 시를 지으면 옳지 못하다고 하고 활을 쏘아도 옳지 못하다고 하니, 그러면 문무의 도(道)를 폐해야 옳겠습니까? 대간이 또 사대부의 집이 지나치게 크다고 말하며, 칸의 넓이를 정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신은 생각 하건대, 칸수는 이미 법으로 정했으니, 다시 세분화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대저 간사한 꾀는 측량하기 어려우니, 이러한 법을 아무리 세울지라도 반드시 법 밖에서 교묘하게 짓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임금은 도승지가 직접 말하지 않고 글을 올려 흥미를 가지고 펼쳤다.

“흙비와 화재는 분명히 드러난 재이(災異)가 아닌데 술을 금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합니다. 단오에 여러 제사와 행사에 술을 올려야 하니, 단오 이전에는 술을 금하지 않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성종은 임사홍의 글을 읽고 생각했다.

‘도승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나, 재해로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니, 대간들이 그동안의 정치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로 술을 금하며 삼가자는 것이다. 좋은 정치를 하자는 귀한 뜻인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성종이 붓을 들어 임사홍의 글에 답을 내렸다.

"대간은 과인으로 하여금 항상 경계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도록 금주령을 권한 것이다. 비록 재변이 아닐지라도,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술을 금한다고 해도 과인은 편하다.”


사관은 신임 도승지가 올린 상소와 임금이 내린 답을 사초에 기록하며 임사홍을 평하였다.

'예전에 아첨하는 자들은 요망한 말로 군주에게 말하여 충성으로 간하는 자를 배척하였다. 충성된 말과 간(諫)하는 말을 비방하는 것은 아첨하는 말로써 스스로 몸을 파는 것이다. 임사홍이 흙비는 때가 되어 내리는 것이라고 하고, 화재는 민가에서 실화(失火)하여 여러 집이 연달아 탄 것이니 족히 괴이할 것이 없다고 하며 주상을 속였다. 옛날에 아첨한 말로 스스로 몸을 파는 자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관은 임사홍을 아첨하는 말로 군주를 속이는 자로 실록에 기록하였으니, 사관의 눈에 비친 임사홍은 간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임사홍은 술을 금해도 편하다는 임금의 답을 받고도, 그날 경연에서 명을 되돌리기를 거듭 청했다.

"단오에는 주상께서도 세 대비전에 별선(別膳, 특별히 만든 음식)을 올려야 할 것이니, 단오 후에 술을 금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술은 오직 곡식만 허비하니, 금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세 대비께 술을 드리는 것은 원래 술을 금하는 범위에 들어 있지 않으니, 어찌 구애되겠는가?”


임사홍은 금주령을 주장한 대간들을 책망하였다.

"요즘 대간들이 간언하는 것을 매우 가볍게 하니, 대간의 말을 다 따를 수 없습니다. 만일 그 말이 마땅치 못하면 이따금 견책의 뜻을 보이는 것이 옳습니다.”

임금은 임사홍을 부드럽게 타일렀다.

"대간이 간언하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 말을 취하고 버리는 것은 과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만약 간언하였는데, 꾸짖으면 누가 감히 말하겠는가?”


배석해 있던 대간들은 임사홍의 말에 말문이 막혔으나, 임금의 답에 감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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