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쓰지 마소서 (9)

세상이 태평하려면 간사한 임사홍을 반드시 주상 곁에서 쫓아내야 하오

by 두류산

9장


사관 안윤손은 예문관으로 복귀하여 예문관의 실무 책임자인 표연말에게 경연에서 임사홍이 한 말을 보고하였다. 예문관 봉교 표연말은 분개하며 정 4품 홍문관 응교 채수를 찾았다.

채수는 김종직의 제자로 문장과 학문이 뛰어나, 과거에서 초시(初試)와 복시(覆試), 그리고 임금이 보는 데서 시험을 치른 전시(殿試)를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사람들은 채수의 글이 뛰어남을 칭찬하며 그를 ‘채 문장’이라고 불렀다. 글 잘하는 사람을 가리켜 ‘채 문장 같다’ 하고, 좋은 글을 보면 ‘비록 채 문장이라도 이보다 더 잘 짓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성종은 정 4품 홍문관 응교(應敎)를 장래에 문형(文衡, 대제학)을 감당할 자를 택하여 예문관의 응교를 겸임하라고 명하였다. 이조는 문장이 좋고 학문이 깊다고 인정을 받은 채수를 임금에게 추천하였다. 성종이 채수를 응교에 임명함으로써, 그는 예문관의 중간 책임자가 되었다. 예문관(藝文館)은 사관(史官)들인 정 9품 검열과 정 8품 대교, 정 7품 봉교 등 여러 직책이 있으나, 영의정과 도승지가 예문관의 고위 직책을 겸직하고 중상위 직책은 대부분 홍문관 관원이 겸임하였다.


채수는 표연말을 반갑게 맞았다. 표연말은 경연에서 일어난 일을 전하며, 격해진 감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경연에서 대간이 두어 가지 일을 청하여 모두 윤허를 얻었는데, 도승지 임사홍이 이를 주상께 비밀히 논박하였습니다. 임사홍의 말한 바를 듣건대 모두 옛 간신의 말이고, 주상의 답하신 바는 모두 덕이 높고 밝은 임금(聖帝明王)의 훈계입니다. 사관의 기록을 보면, 주상께는 삼가 공경함을 멈출 수 없으며, 임사홍에게 통분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채수는 표연말이 상세하게 전해주는 내용을 듣고 주먹을 쥐었다.

“대체로 충신의 마음은 임금이 재변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을 두려워하고, 간신의 마음은 오직 임금이 재이를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오. 주상께서는 요(堯) 임금의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덕이 있으신데, 도승지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임사홍이 전하를 제대로 인도하지 못하니, 원통하고 분함을 참을 수가 없소.”


표연말이 물었다.

“임사홍이 대사간을 하던 지난가을 경연에서 공주의 집을 탄핵한 대간들을 임사홍이 불러 모아 꾸중하여 문제가 된 일을 기억하십니까?”

“대간들이 면전에서 꾸지람을 받으면 피혐하여 자리를 옮기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음흉한 임사홍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대간들을 다 내보내려고 한 수작이었다고 들었소.”

“그렇다면 임사홍은 참으로 간사한 자가 아닙니까.”


표연말은 김맹성에게 들었던 임사홍에 대한 이야기를 채수에게 말했다.

“현석규의 일도 임사홍이 몰래 대간을 사주하고 부추겨서 소동이 벌어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채수는 표연말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표연말은 김맹성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김언신이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성토했으나, 실은 현석규가 소인이 아니라 임사홍이 참으로 소인이라고 탄식했습니다.”


채수는 표연말의 강개한 모습을 보며 스승이 그를 두고 함양에 군자가 있다고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채수가 표연말을 다독였다.

“이런 소인이 근신(近臣)으로 도승지 자리에 있으니, 어떻게 요순(堯舜)의 정치를 바랄 수가 있겠소. 세상이 태평하려면 임사홍을 반드시 주상 곁에서 쫓아내야 하오.”


두 사람은 홍문관 부제학 유진(兪鎭)을 찾아서 임사홍이 한 일을 설명하고 그를 성토하였다.

“홍문관과 예문관이 연합하여 임사홍을 탄핵해야 합니다.”

홍문관은 왕의 자문을 하는 기관이었다. 경전과 역사서에 나오는 옛사람들이 행한 정치를 연구하고, 경연에 참여하여 군주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아뢰었다. 예문관은 사관(史官)들이 소속되어 있고, 국왕의 말과 글을 대신 짓는 등 실무적으로 국왕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기관이었다. 예문관의 중상위 직책을 홍문관 관원이 겸임하여 두 기관의 동질성이 높아, 홍문관과 예문관을 함께 양관(兩館)으로 일컬었다.


유진은 마음이 복잡하였다. 임사홍 집안과는 친척이고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터에 임사홍을 배척하는 데 앞장서기가 불편했다.

‘임사홍은 벼슬이 높아지고 임금의 총애를 받을수록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조심해야 하거늘, 이를 어쩐다......’


두 사람이 재촉하자 명분이 있는 일에 강하게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더구나 남효온이 여동생을 돌보지 않았다는 상소로 인해 양관의 후배들이 자신을 존경하지 않고 있다고 느끼기에 더욱 그랬다.

“일단 사정을 잘 아는 표 봉교나 채 응교가 상소의 초안을 잡아보시게. 초안이 완성되면 그것을 보며 다시 의논해 보세.”

채수는 물러나면서 못을 박았다.

“양관의 관원이 상소 내용에 모두 동의하면 연명하여 상소를 올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채수는 표연말과 함께 예문관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예문관으로 가면서 상소 내용에 무엇을 넣을지 의논하였다.

“우선 흙비나 도성의 화재 등 재이는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며 임사홍이 주상을 속이고 아첨한 것을 지적하여야 할 것입니다.”

채수가 표연말의 답에 말했다.

“화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흙비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오. 《사기(史記)》에서 흙비에 대해 기술하기를, 백성을 힘들게 하거나 어진 이를 쓰지 않거나 혹은 탐관오리나 못난 자가 벼슬에 있을 때 하늘이 내리는 경고라고 일컬었소.”


표연말이 말을 더했다.

“임사홍이 국왕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대간들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임사홍은 음험하고 방자하여, 밖으로는 곧고 굳센듯하나 안으로는 참으로 간사하고 아첨하여 옛 소인의 태도를 모두 겸하여 가졌소. 예로부터 임금이 소인(小人)을 쓰는 것은 처음에 어찌 소인이라고 생각하고 쓰겠소? 재주가 있고 덕이 있어서 가히 믿을만하다고 여기거나 혹은 간사하고 아첨한 것을 충성되고 곧은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여 권세를 주는 것이오. 우리는 충성스러운 분노로 주상께 이를 알려야 할 것이오.”


채수는 예문관의 현판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오. 충성스러운 분노를 가지고 탄핵하는 글을 올린다고 우리의 뜻대로 임사홍에게 죄를 물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오.”

표연말은 걸음을 멈추고 채수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주상은 우리의 글을 보고 명예를 바라고 곧은 것을 자랑한다고 하여 배척할 것이오. 또한 대신들에게 상소를 보여주고 물으면, 그들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비난한다고 하여 나무랄 것이오. 또한 임사홍은 도리어 말하는 우리를 모함하며, 백 가지 계책으로 교묘하게 꾸며서 주상을 현혹하려고 할 것이오.”


표연말이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도 말해야 하오. 말하지 않으면, 드디어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터인데 어찌 그것을 두고만 볼 수 있겠소?”

표연말은 입술을 깨물었다.


채수는 예문관에 들어서면서 표연말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임사홍 부자를 소임(小任)과 대임(大任)으로 부르며 비난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임원준도 함께 탄핵하는 것이 어떻겠소?”

“임원준이 간사하고 탐욕스러움은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임사홍의 간사함은 그 아비 임원준의 간사함에서 내려온 것이니, 임원준을 이때에 아뢰지 않으면 주상께서 어떻게 알겠습니까?”


채수는 평소에 과묵하고 단정한 표연말이 옳지 않은 일에 분을 내는 것을 보고, 과연 군자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하늘이 내려주신 주상의 밝으심과 높은 학문을 보고 있지 않소. 그러니, 만약 어진 재상이 주상을 보좌하면 요순의 정치를 이룩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임원준 같이 간사한 자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뜻을 맞추어 아첨하며 주상을 그릇되게 하니, 나 또한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겠소”.

“임원준이 경연의 당상관인데, 홍문관과 예문관원들이 연명하여 상소를 올려 임원준 부자를 탄핵하면 경연에서 어떻게 그를 편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옳은 지적이오. 임원준을 멀리 내치지 못한다면 최소한 임금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경연 동지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청해야 할 것이오.”


경연의 당상관은 정 1품 영사(領事) 3인, 정 2품 지사(知事) 3인, 종 2품 동지사(同知事) 3인으로, 교대로 경연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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