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의 훈구대신을 쓰지 마소서 (10)

임사홍은 부친까지 탄핵하는 상소를 읽다가 머리에 쓴 관을 떨어뜨렸다

by 두류산

10장


채수는 예문관에 들어서서 상소에 무엇을 넣을지 대강 초안을 작성하였다. 표연말이 채수를 보고 말했다.

“부제학 유진은 임원준과 친하고 인척이기도 합니다. 임사홍과 함께 임원준을 탄핵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듯합니다.”

채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부제학도 명분 없이 반대만 하거나, 합당한 이유 없이 강하게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오.”


채수는 붓을 듬뿍 먹물에 적시고, 상소의 첫 구절을 쓰기 시작했다.

“전하께서 요즘 흙비 때문에 구언(求言)을 명하시었습니다. 흙비가 내린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민가에 불이 나서 수백 집이 타버린 재변이 있자, 주상께서 두려워하고 근심하였습니다. 대간들은 금주하기를 청하였는데, 임사홍은 천변과 인재(人災)는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며 전하에게 아첨하였습니다. 임사홍이 자처하는 바가 간신입니까, 충신입니까? 전하를 성왕(聖王)으로 여기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임금으로 여기는 것입니까? 신들이 듣고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채수는 임사홍의 죄상에 대해 세세히 아뢰었다.

“얼마 전, 전하께서 종친과 더불어 편을 지어 활쏘기 시합을 하자 대간에서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와 더불어 승부를 겨룰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임사홍이 말하기를, 전하께서 시를 지으면 대간에서 옳지 못하다고 하고 활을 쏘면 옳지 못하다고 하니, 그러면 문무(文武)의 도(道)를 폐해야 옳겠습니까 하며, 전하를 노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이는 바로 대간을 배척하는 술책입니다. 시를 짓고 친히 활을 쏘는 것을 전하의 문무로 삼으니, 어찌 전하를 이토록 망령되게 대우하는 것입니까?”


표연말은 채수가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감탄했다.

‘과연 채문장이로다!’


채수는 대간들이 탄핵한 임사홍의 며느리인 현숙 공주의 집에 대해서도 아뢰었다.

“요즘 사풍(士風)이 아름답지 못하여 부(富)를 탐하고, 집을 크게 짓고 호화로움을 숭상하는 까닭으로 국가에서 칸수를 법으로 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법이 지켜지지 아니하는 것은 귀하고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공주의 집은 나라가 정한 법을 피하여, 칸수는 그대로 두고 척수(尺數)를 넓혀 크고 호화로움이 궁궐에 비하여도 지나치니, 도성 사람들이 놀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대간들이 경연에서 집을 짓는데 사치함을 논하여 칸의 크기인 척수를 법으로 정하기를 청하고 대신들도 동조하였습니다. 이것은 공주의 집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공주의 집은 바로 임사홍의 아들 임광재의 집입니다.”


채수는 먹물에 붓을 적셨다.

"임사홍은 교만하여 아들의 집을 탄핵함에 삼가 피하지 않고 아뢰기를, 칸수를 이미 정하였는데 다시 척수를 정할 필요가 없으며, 또 간사한 꾀는 헤아리기 어려워서, 법을 아무리 세울지라도 반드시 법 밖에서 교묘히 짓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이른바, ‘간사한 꾀는 헤아리기 어려워 법 밖에서 교묘히 짓는 자’라는 것은 바로 아들 집의 형상을 스스로 드러낸 것입니다. 아들의 집 때문에 법을 세워서 사치를 막고자 하였는데, 임사홍이 저지시켜서 행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으니, 전하를 가볍게 여기고 꺼리는 바가 없음이 어찌 이토록 심할 수가 있습니까? 신들은 듣고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채수는 붓끝에 힘을 모았다.

“대간은 임금의 이목(耳目)이자 국가의 맑은 기운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성군(聖君)은 대간들로 하여금 품은 생각을 다 말하게 하였습니다. 말한 바가 마땅하면 취하고 비록 맞지 아니하여 취하지 아니할지라도 허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간하는 말에 따르기를 물 흐르듯 하시고 말이 비록 맞지 아니할지라도 죄를 받음이 없었습니다. 삼한(三韓)의 신민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는 이가 없으며, 불세출의 임금이라고 하면서 태평한 정치를 머리 들고 발돋움하면서 바랐습니다. 그런데 임사홍이 비밀히 아뢰기를, 요즘 대간에서 말하기를 매우 쉽게 하니 다 따를 수 없으며, 만일 그 말이 맞지 아니하면 마땅히 꾸짖는 뜻을 보이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말로써, 진나라 때의 간신인 조고(趙高)와 당나라 때의 간신인 이임보(李林甫)와 구사량(仇士良)이 일찍이 말하던 바입니다.”


이임보는 음험하고 책략이 많아서, 그를 평할 때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는 꿀, 뱃속에는 칼'을 든 사람이라고 했다. 구사량은 당나라의 환관으로 정치에 깊숙이 간여하여 두 사람은 후세에 당나라의 대표적인 간신으로 불려졌다.


채수는 임사홍과 함께 임원준을 탄핵하는 말을 더했다.

“임사홍의 더러운 행적은 윗대부터 드러났습니다. 임사홍의 부친 임원준의 간사하고 탐욕스러움은 한때의 으뜸이었으며 잡기로써 대신에 이르게 되었고, 당상으로 경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신들이 생각하기에, 만약 어진 재상이 전하를 보좌하면 요순의 정치를 이룩하실 것인데, 임원준 같이 간사한 자가 곁에서 전하를 그릇되게 하니, 신들은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임원준 부자를 멀리 유배 보내어, 많은 사람의 기대와 소망에 부응하고 하늘의 꾸지람에 답하며, 간사하고 불충한 자의 경계가 되게 하소서.”


홍문관과 예문관 관원들은 빈청에 모여 채수와 표연말이 의논하여 쓴 상소 초안을 함께 읽었다. 홍문관 부제학 유진은 상소의 초안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진은 채수와 표연말을 나무랐다.

“도승지를 소인이라고 칭한 것이나, 도승지를 공격하려고 부친인 임원준까지 공격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네. 더구나 임사홍 부자를 유배 보내야 한다니......”


정 5품 홍문관 교리 안침이 상소의 초안을 지지했다.

“도성의 선비들이 임원준 부자를 대임(大任)과 소임(小任)이라고 일컬으며 그들의 간사함을 두 사람이 아닌 한 몸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사홍이 간사한 것은 가정의 교훈이 바르지 못한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임원준의 잘못도 큽니다.”

정 6품 홍문관 수찬 이창신도 상소를 칭찬하며 말했다.

“상소에 기개가 흐릅니다. 간(諫)하는 말이 이 정도 되지 않으면 주상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유진은 젊은 관리들의 말에 당황하였다.

“임원준이 비록 간사하고 탐욕스러우나 일의 행적이 명백히 드러나지는 않았네. 더구나 아들의 죄를 논(論)하면서 아울러 그 아버지까지 탄핵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네.”

채수가 반박했다.

“임원준이 간사하고 탐욕스러움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지금 아뢰지 않으면 주상께서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어떤 일을 가리켜 임원준이 간사하고 탐오하다고 하는가? 만약 주상께서 노하여 캐물으신다면 뭐라고 하겠나?”


채수가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제가 마땅히 그 책임을 혼자 지겠습니다. 주상 앞에서 아뢰기를, 임원준을 파직시키지 않으면 신들이 물러나겠다고 한다면, 주상께서 어찌 임원준 하나 때문에 양관의 이십여 인을 물러나게 하겠습니까?”

유진은 상소가 그대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유진은 빈청에서 먼저 일어나면서 말했다.

“임사홍 탄핵 상소에 부친인 임원준까지 넣어야 할지를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야. 이십여 명이 모두 연명해야 하는 일이니 신중히 의논해보게나.”


얼마 후에 양관의 관원들이 유진에게 와서 말했다.

“의논한 결과 임사홍과 함께 임원준도 탄핵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유진은 더 이상 반대하기가 어려웠다. 양관의 관원들도 자신이 임원준 부자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 사사로운 정으로 대의를 따르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었다.


성종 9년 4월 27일, 홍문관과 예문관은 연명하여 합동으로 상소를 올렸다. 승지가 미리 읽고 놀라, 도승지 임사홍에게 상소를 건네주었다. 임사홍은 상소의 내용에 자신을 소인이라고 칭한 것을 보고 이를 갈았다. 아버지까지 탄핵을 하는 것을 읽다가 머리에 쓴 관을 떨어뜨렸다. 승지가 떨어진 관을 건네며 물었다.

“도승지 영감, 괜찮으십니까?”

임사홍은 얼른 관을 다시 머리에 쓰고, 억지로 얼굴색을 바르게 했다. 임사홍은 가슴이 벌렁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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