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께서 깨닫지 못하시니, 이는 임사홍이 참으로 간사한 까닭입니다
표연말은 함께 입시한 승지 손순효를 쏘아보며 말했다.
“다른 승지가 만약 어질다면, 임사홍이 비록 옳지 아니한 일을 아뢸 경우에는 반드시 반박하고 따르지 아니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좌승지 손순효는 놀라 급히 아뢰었다.
"금주령과 칸의 크기를 정하는 일은 도승지가 신들과 의논한 후 아뢰었으나, 다른 것은 같이 의논한 것이 아닙니다.”
임금은 임사홍의 일을 일단 내버려 두고 화제를 돌렸다.
"아들의 악행 때문에 그 아버지를 아울러서 탄핵하는 것은 진실로 지나친 일이다.”
홍문관 부제학 유진이 채수를 원망하며 바라보았다. 채수는 부제학이 하려는 말이 들리는듯했다.
'내가 뭐라고 했는가. 아들 때문에 아버지를 연좌하여 죄를 묻는 것은 실로 지나친 일이라 하지 않았는가.'
채수는 유진의 눈길을 뿌리치며 열에서 나와 아뢰었다.
"임원준은 본래 간사하고 탐오하였으나 아뢸 길이 없었습니다. 이제 임사홍의 허물을 논하면서 이는 임사홍만 간사한 것이 아니라 가정의 교훈이 바르지 못한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는 이유로, 임원준의 허물을 아울러 말한 것입니다.”
사간원의 사간은 지나친 규모로 지은 공주의 집을 거론했다.
"현숙 공주의 집이 크고 화려하여 궁궐에 비교되니, 도성의 신민(臣民)이 놀라고 탄식하지 아니하는 이가 없습니다.”
"칸수를 이미 법으로 정하였는데 어찌하여 그 규모를 궁궐에 비긴다고 하는가?”
채수가 다시 나서서 아뢰었다.
"전하께서 친히 보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 크고 화려함을 믿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거동하여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종 3품 홍문관 전한(典翰)이 아뢰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남의 잘못을 말하였다가 후환을 당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으니, 대저 남의 과실을 말하는 것은 진실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찌 두려워하고 꺼려서 사실을 아뢰지 아니하겠습니까? 임사홍은 흙비가 내린 것과 도성에 큰 불이 난 것을 모두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아첨하는 말을 올려서 술을 금하는 것을 파하고자 하였으니, 그 마음이 간사합니다. 임사홍에게 죄를 내리시소서!”
성종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소리를 높였다.
"임사홍은 과인이 몸을 닦고 마음을 반성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과인이 당연히 그 죄를 다스릴 것이다. 말한 것은 비록 그랬지만 그 뜻은 그렇지 아니한데, 어떻게 죄를 묻겠는가? 그대들이 전일에는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하더니, 이제 또 임사홍을 소인이라고 하는가!”
모인 신하들은 노한 임금의 말에 아무도 선뜻 나서서 답을 하지 못했다. 임금의 노기에 움츠려 들어 모두 고개 숙이고 잠잠히 있자, 채수가 나섰다.
"신들이 임사홍에게 어찌 사사로운 감정이 있어서 버리기를 청하겠습니까? 신이 일찍이 임사홍과 더불어 동료가 되어 언행과 심술을 보았는데, 참으로 무례한 소인입니다. 이제 말한 바가 또 이와 같았으니 더욱 그 간사함을 알겠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의심하지 마시고 간사한 자를 내치소서.”
"그대들은 임사홍의 말을 전해 듣고 말하는 것이나, 과인은 친히 들었다. 과인이 보기에, 진실로 임사홍에게 죄줄 만한 일은 없었다.”
임금이 임사홍을 계속 감싸자, 채수가 다시 아뢰었다.
"안윤손의 사초(史草)에 임사홍이 아뢴 말을 모두 기록했으니, 이를 보면 그가 소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임사홍을 처벌하지 아니하면 마땅히 안윤손이 잘못 기재한 것을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안윤손이 잘못 쓴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청컨대 임사홍을 버리소서.”
사관인 표연말도 채수를 거들며 말했다.
"사관 안윤손이 만일 잘못 쓰지 아니하였다면, 임사홍의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사관이 비록 잘못 쓴 것이 있을지라도 다시 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사관도 잘못 쓰는 일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성종은 모인 신하들이 한 목소리로 임사홍을 탄핵하자 마음이 무거웠다.
‘저들은 사관의 기록을 보고 말하나, 나는 임사홍의 말을 직접 듣지 않았는가. 글에는 말하는 자의 의도까지 실리지는 않는다. 임사홍이 비록 그런 말을 했지만 그 뜻은 간사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임사홍이 그런 말을 했더라도 나는 그 말을 따르지도 않았다.’
홍문관 전한이 나서서 생각에 잠겨있는 임금을 깨웠다.
"당나라 이필(李泌)이 덕종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 노기(盧杞)의 간사함을 알지 못하시니, 이는 노기가 참으로 간사한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임사홍의 말한 바가 모두 간사한 것인데 전하께서는 오히려 깨닫지 못하시니, 이는 임사홍이 참으로 간사한 까닭입니다. 이제 신들의 상소를 대신에게 보이면, 대신들이 임사홍을 군자라고 하겠습니까, 소인이라고 하겠습니까?”
젊은 관원들은 상소를 대신에게 보여서 판단하자는 말에 당황하였다. 훈구대신들의 판단은 믿을 수가 없었다. 특히 그들은 임원준과 가까이 지내는데, 어찌 신뢰할 수가 있겠는가. 양관의 관원들과 젊은 대간들의 생각은 한 가지였다. 훈구대신들이 이 문제를 의논하고, 임금이 대신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것은 막아야 했다.
홍문관 수찬 이창신이 급히 나섰다.
"이미 임사홍의 간사함을 알았으니 마땅히 곧 죄를 물어 신민(臣民)의 분함을 풀어주어야 할 것인데, 어찌 반드시 대신들에게 물어야 하겠습니까? 신은 전하께서 대신들에게 물으면, 대신들은 반드시 소인이라고 바로 말하지 않을 것을 결단코 압니다. 전일에 현석규가 도승지가 되어 동료의 이름을 부르면서 소매를 걷어 올리며 큰 소리로 욕을 하였는데, 대신들에게 현석규가 소인인지를 묻자 모두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고, 오직 허종(許琮)만이 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신이 이로써 결단코 대신들이 제대로 말하지 아니할 것을 압니다.”
사간원 정언 성담년도 나서서 아뢰었다.
"임사홍의 말한 바가 참으로 모두 간사한 것인데도 전하께서는 오히려 깨닫지 못하시니, 이는 임사홍이 참으로 간사한 까닭입니다. 바야흐로 주상의 밝으심이 해가 중천에 밝게 빛나는 것과 같은데, 아직 간사한 신하가 그 곁에 있으나 능히 버리지 못하시니, 신은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임금의 낯빛은 어두워졌다.
"그대들은 나를 성주(聖主)라고 칭하면서 백방으로 나를 설득하려 하지만, 진실로 너희들 주장을 들어줄 수는 없다.”
임금이 어두운 안색으로 단호하게 말하자, 대사헌 유지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강경하게 청했다.
"청컨대 임사홍을 국문하게 하소서."
채수는 다시 나서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들이 아무리 용렬할지라도 어찌 모두 어리석고 망령된 사람이겠습니까? 만약 어리석고 망령되지 아니하다면 신들이 말한 바가 거짓되고 망령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미 임사홍의 간사함을 아셨으면 마땅히 죄를 주어야 하는데, 어찌 국문으로 확인 절차를 따로 해야 하겠습니까?”
양관 관원들의 시선을 느낀 홍문관 부제학 유진도 엉거주춤 나섰다.
"추후에 비록 용서할지라도 지금은 죄주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임사홍이 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그 뜻은 그렇지 아니하다. 과인이 진(秦) 나라 이세 황제(二世皇帝)가 아닌데, 어찌 그 간사함을 알지 못하겠느냐?”
성종은 젊은 신료들이 아무리 임사홍이 간신이라고 주장해도 수긍할 수 없었다.
표연말이 다시 나섰다.
"임사홍은 진실로 소인입니다! 지난번 전하께서 이심원을 불러서 만나실 때 임사홍이 만약 이심원의 말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였으면 즉시 이심원의 앞에서 잘못을 아뢰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임사홍은 이심원과 사관이 나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이심원에 대해 말하기를, 어리석고 망령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임사홍이 간사함을 보여주는 단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