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는 세자빈을 애도하는 명문을 쓴 김종직의 이름을 기억했다
김종직이 승문원에 들어갔더니 동료들이 대개 권문세가의 자손들이었다. 그들은 시골선비 출신인 김종직이 작은 체구임에도 가슴을 펴고 당당히 걷는 모습을 보고 놀렸다.
"어린 동자(童子)가 사모관대를 뒤집어쓴 것 같군.”
"신입 주제에 몸가짐이나 태도는 거의 당상관이야.”
김종직이 승문원에 처음으로 출근하는 날, 직속상관인 정 9품 정자(正字) 어세겸이 와서 으름장을 놓았다.
“명나라에 보내는 귀한 글은 모두 여기서 작성되니, 괴원(槐院)에서 일할 능력이 되는지 시험을 보아야 하네. 자격이 안 되면 바로 다른 부서로 내치는 것이 이곳의 전통이야.”
어세겸은 김종직에게 명나라 황제의 생일을 맞아 보내는 축하 외교문서를 써보라고 하였다. 통과의례라는 전통은 결국 신입의 기를 꺾겠다는 승문원 선배들의 의도였다.
김종직은 만만하게 보이기 싫었다. 밤늦게까지 문서를 작성하여, 다음날 아침 등청(登廳, 관청에 출근)하자마자 제출하였다.
승문원 관리들은 문서를 돌려보며 말했다.
"뛰어난 문장이야. 이 글 그대로 명나라에 보내도 되겠어.”
정 6품 승문원 부교리 정효상이 어세겸에게 말했다.
"다른 문제를 주어 한 번 더 시험해 보게나.”
김종직이 어세겸이 새로 내린 제목으로 글을 지어 다음날 아침에 제출하니, 이번에도 승문원 관리들은 서로 돌려보았다. 승문원 선배들은 김종직의 글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학문의 깊이가 없이는 이런 문장이 나올 수가 없어.”
정효상이 어세겸을 다시 불렀다.
"외교문서로 주상께 찬사까지 받은 자네의 이름을 걸고, 제대로 된 문제를 내어보게나.”
승문원은 궁궐 안에 관청이 있어 등청 길에 세조 즉위에 공을 세운 훈구대신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김종직은 그들을 만날 때 목례를 하며 예를 올렸으나 속으로는 불편한 마음이었다.
‘이 사람들은 임금이 어린 왕을 몰아내고 즉위를 하였을 때 돕거나 동조한 사람들이니, 의리와는 거리가 먼 자들이다.’
김종직은 어세겸이 숭문원의 뜰에서 두 사람과 담소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은 푸른 관복을 입은 당하관이었고, 또 한 사람은 붉은 관복을 입은 당상관이었다.
승문원 선배들이 농을 했다.
"어세겸 삼부자는 궁궐에서 집안일을 상의하는 것인가?”
"할아버지는 집현전 직제학이었고, 외할아버지는 좌의정이었으니 두 분이 살아계셨다면 집안모임이 더 거창 했겠네.”
승문원 동료 한 명이 김종직에게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젊은 사람은 어세겸과 같은 해에 급제한 동생인 어세공이고, 나이 든 분은 아버지인 형조참판 어효첨 공이야.”
김종직이 어세겸이나 같은 해 급제한 박안성과 같이 걸어가면 여러 대신들이 이들을 보고 아는 척을 하였다. 박안성의 아버지는 형조판서 박원형이었다. 대신들 중 누구도 김종직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세겸은 김종직에게 매일 새로운 제목을 던져주고 글을 짓게 하고, 승문원 관리들은 김종직이 쓴 글을 읽어보는 재미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김종직은 통과의례라는 시험이 언제 끝나게 될지 알 수 없었으나 기가 꺾인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어세겸의 통과의례는 한 달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김종직은 매일 새로 주어지는 과제에 집중하였다. 밤이 늦어도 문서를 완성해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의관을 단정히 하고 앉아서 책을 읽으며, 어세겸이 내줄 오늘의 과제에 마음으로 대비하였다.
김종직은 아무리 어려운 과제를 내려도 두 달 동안 얼굴색 한 번 변하지 않고 거침없이 글을 지어내었다. 어세겸과 선배들은 점점 김종직의 실력과 당찬 인품에 빠져들었다. 글을 잘 쓴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어세겸도 김종직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종직의 말채찍을 잡고 하인이 되라고 해도 달게 받아들이겠다.”
어세겸이 김종직에게 실시한 두 달 동안의 과제와 김종직의 대처는 조정에 널리 알려져 여러 사람들이 김종직의 글을 보려고 승문원을 찾았다. 어세겸은 김종직이 두 달간 쓴 글을 아예 책으로 엮어 승문원에 보관하였다. 김종직의 글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향후 외교문서 작성에도 참고하도록 하였다.
어세겸이 김종직에게 내린 통과의례는 이후 승문원의 전통으로 자리 잡아 신참 관리들은 두 달 동안 시험을 치러야 했다.
김종직은 어세겸의 혹독한 신고식 덕택으로 조정 안팎으로 뛰어난 문장실력과 학문의 깊이가 저절로 드러나게 되었다. 승문원에서도 중요한 문서를 작성할 때는 김종직에게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조정에서도 김종직의 글을 높이 평가하여 1년 만에 정 8품 저작(著作)으로 벼슬을 올려주었다.
임금이 나라의 인재를 선발하여 휴가를 주어 독서와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허락했는데 형인 김종석과 어세겸, 이극균, 허종, 민수 등과 함께 김종직도 당당히 선발되었다.
사가독서는 학문과 문장이 높은 정 3품 당하관 이하의 젊은 관리들에게 임금이 특별 휴가를 주어 직책은 유지한 채 직무에서 벗어나 독서 및 학문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제도였다.
김종직이 사가독서를 할 수 있는 인재에 선발되자 누구보다도 형인 종석이 기뻐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지 1년밖에 안 된 짧은 시간 내에 동생이 쟁쟁한 선배들과 동료들을 제치고 조정에서 학문과 문장을 인정받은 것이 대견하였다.
김종석은 3년 시묘할 때 얻은 풍병이 낫질 않아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김종석은 병색이 깊은 얼굴로 동생을 보고 말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 때가 되면 대제학이 되어 조선의 선비들이 도학을 모두 알게 하여, 아버님의 꿈을 이루어다오.”
종석은 동생의 능력이 인정받고 있음을 낭중지추, 주머니(囊) 속의 송곳(錐)처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저절로 남의 눈에 띄게 된다는 뜻에 비유하며 기뻐하였다. 김종석은 악성 종기까지 생겨 병석에 누웠다가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38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그의 말은 종직에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1461년 세조 7년 12월.
세자빈 한씨가 왕실의 원손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세자빈은 한명회의 셋째 딸로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세조는 승문원에 명하여 세자빈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짓게 하였다.
김종직은 글을 지으라는 명을 받고 세자빈 한씨가 17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을 알게 되었다.
‘세자빈 한씨가 17살 어린 나이에 죽다니, 이것은 어린 상왕이 죽은 나이와 같지 않은가?’
김종직은 세자빈의 돌연한 죽음이 어린 상왕의 비극과 겹쳐져 가슴이 아려왔다.
‘한명회와 임금이 벌을 받은 것인가? 그런데 왜 죄 없는 어린 세자빈이 죽어야 하나?’
김종직은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세자빈 한씨 애책문(哀冊文)’을 지어 올렸다.
세조는 김종직의 글을 읽고 사랑하고 아끼던 세자빈이 생각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조는 친정아버지인 한명회를 내전에 들라하여 내관에게 세자빈의 죽음을 애도하는 애책문을 읽게 하였다.
두 사람은 환관이 구슬프게 읽는 것을 들으며, 돌아간 세자빈이 불쌍하여 눈물을 글썽였다. 한명회는 눈물을 찍어 누르며, 애도의 글을 쓴 김종직의 이름을 기억했다.
1462년 세조 8년 5월.
임금은 도승지에게 명하여 관리들 중에 학문이 높은 자를 선발하여, 매 초하루와 보름의 조회 말미에 유교 경전을 강의하게 하였다. 김종직은 여기에 선발되어 조회 후에 임금과 조정 신하들을 상대로 《서경(書經)》을 강론하였다.
세조가 강의를 들은 후 만족해하며 궁금한 사실을 물었다.
"진의 시황이 유학에 관한 책을 모두 불살랐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서경》이 오늘날까지 남아서 전해지는지 그 연유를 너는 아느냐?”
"공자께서 《서경》을 편찬하실 때 원래 3000편이라고 들었는데 진시황이 태워버려 다 없어지고 지금 남은 것은 58편에 불과합니다. 왜 이것만 남았는지의 연유는 알지 못합니다.”
세조는 김종직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강의를 칭찬하며 명했다.
"이조는 김종직의 품계와 직책을 올려주어라.”
김종직이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우의정 신숙주가 김종직을 조용히 불러 《서경》이 왜 58편만 남았는지 알려주었다.
"나도 이 일이 궁금하여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물을 기회가 있었다네. 《서경》이 그렇게 된 것은 한나라 경제(景帝) 때 공자님의 옛 집이 낡아 고치려고 허물다, 벽에 감추어 둔 것을 찾은 것이 58편이었다 하더군.”
김종직은 신숙주가 임금 앞에서 자신의 견문과 지식을 뽐내지 않고, 나중에 넌지시 알려준 것에 대해 범상치 않은 인품을 엿보았다. 김종직은 자신에게 슬쩍 말하고 떠나는 신숙주에게 공손히 예를 올리고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절의를 지킨 성삼문과는 완전히 딴판인 줄 알았는데......’
김종직은 정 7품 승문원 박사 겸 사관의 실무 책임자인 예문관 봉교로 승진하였다.
신숙주는 김종직을 불러 승진을 축하하며 자신의 책임 아래 진행하고 있는 《병장설(兵將說)》 편찬사업의 실무 작업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병장설》은 세조가 군사 일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만든 책으로 신숙주에게 주석을 달아 완성할 것을 명한 것이었다.
신숙주는 가까이 지켜보니 김종직의 학문과 문장실력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김종직이 신숙주와 함께 작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서거정이 신숙주를 찾아왔다.
신숙주는 서거정을 반갑게 맞으며 김종직을 소개했다.
"강중(剛中), 자네도 알고 지냈으면 하네. 이 사람은 승문원 박사 김종직일세.”
강중은 서거정의 자이다. 신숙주는 서거정의 3살 연상이나 한명회와 함께 친구처럼 지냈다.
김종직이 먼저 공손히 예를 올리며 말했다.
"높은 이름만 듣다가 이렇게 뵙게 되니 실로 광영입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당부드립니다.”
서거정은 김종직의 인사에 건성으로 답하고는 옆에 김종직은 안중에 없다는 듯이 신숙주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서거정의 태도는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나 겸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사람을 응대하는 데 밝은 김종직이 그런 서거정의 마음가짐을 감지하지 못할 리 없었다. 김종직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의 마음 깊이는 빼어난 학문과 문장을 따르지 못하는 것인가.’
신숙주가 한명회 등 대신들과 궁궐에서 한담(閑談)을 나누다가 김종직이 지나가자 대신들 앞에서 김종직을 칭찬하였다.
"김종직을 보면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그의 학문과 문장을 보면 장차 이 나라의 대제학을 맡을 재목입니다.”
한명회가 신숙주의 말을 거들었다.
"김종직이 세자빈을 애도하여 지은 글은 주상과 나를 함께 눈물짓게 하였습니다.”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