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광은 갑사 시험에 합격하여 궁궐을 지키는 문지기로 배치되었다
김종직이 중국의 역사와 은유로 가득 채워 쓴 조의제문을 제대로 해석하여, 훗날 수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유자광은 이즈음 남원에서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며 도박과 술로 세월을 낭비하고 있었다.
유자광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을 한 채 집 문밖에 쓰러져 있는 것을 최씨가 발견하고 부축해 집안으로 들이며 한탄했다.
"내가 이 아이를 낳지 않았어야 했는데.....”
자광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어머니의 한숨과 탄식을 듣고 바위에 짓눌린 듯 허우적거렸다.
아버지 유규는 경주 부윤을 하면서 큰 송사가 벌어져서 조사하고 있는 중에 송사의 한쪽 당사자가 찾아와서 뇌물을 건네자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곤장을 치게 하였다. 결국 그가 곤장을 이기지 못하고 죽게 되자 문책을 당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남원으로 낙향하였다.
남원에 온 유규는 이제 열아홉 살 청년으로 자란 유자광을 오랜만에 만나 따로 불렀다.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의 말을 기다리는 자광을 보고 유규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요즘 너의 글공부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유자광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책을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유규는 한 숨을 쉬며 말했다.
"글은 과거를 위해서 익히는 게 아니다. 학문을 익혀야 짐승같이 사는 것을 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유자광은 고개를 들어 아버지의 말에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인인 아버지의 엄격한 성정을 잘 아는 터라 가슴속에 타오르는 불길을 삭이고 있었다. 형 자환이 과거에 합격하여 친구들이 축하주를 낸다고 여러 날을 취한 채로 늦게 귀가하자 선비가 겸허히 몸가짐을 하지 못하고 들떠 있다고 장성한 아들에게도 회초리를 드신 분이었다. 엄한 아버지였지만 자광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겨 어릴 때부터 자애롭게 대해 주었다.
유규는 고개를 숙인 아들의 넓은 등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너의 처지를 괴로워하기만 하고 살 것이냐?”
유자광은 하고 싶은 말을 입안으로 삼키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말했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길이 영 막혀있는 것만은 아니다.”
유자광은 솔깃하여 고개를 들고 아버지를 보았다.
유규는 자광의 장래를 걱정하며 얻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갑사(甲士)가 되어라. 갑사가 되면 넉넉하지는 않지만 나라에서 녹봉을 받을 수 있고, 전장에서 공을 세우면 교위(校尉) 같은 장교나 궁궐과 임금님을 경호하는 겸사복도 될 수 있다.”
하급무사인 갑사는 궁궐을 지키는 갑사와 함경도와 평안도의 변경을 방비하는 양계(兩界) 갑사, 백성들이 호랑이의 피해를 받지 않게 호랑이를 잡는 착호(捉虎) 갑사의 세 종류가 있었다.
유규는 유자광의 처지에 대해 깊이 생각한 끝에 갑사가 되는 길이 최선이라고 결론지었다.
"법으로 과거를 볼 수 없게 한 것을 어찌하겠느냐. 너는 몸이 날래고 힘도 장사이니 무인으로 나라에 보국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자광은 아버지의 말에 한줄기 빛을 보는 것 같아,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여 굵은 눈물을 방바닥에 뚝뚝 떨어뜨렸다.
유자광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가 권유한 대로 내년 봄에 치러질 갑사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시험 과목은 활쏘기, 말을 달리며 활쏘기, 전신 갑옷으로 중무장한 채 달리기 등이었다. 중무장하고 달리기는 중무장 보병으로서 자질과 체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전신 갑옷을 입고 화살 통을 맨 채 활과 칼을 들고 300보 이상은 거뜬히 달려야 했다.
자광은 시험에 대비하여 가마솥을 둘러메고 산을 달려 지치지 않을 체력을 길렀다. 활쏘기는 1백80보(步) 거리에서 화살 3개를 쏘아 2개 이상 과녁을 맞혀야 했다. 자광은 화살 세 발씩 50번, 백오십 발을 쏴야 하루를 마감했다. 말을 달리며 활쏘기는 기병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기 위해 세 번 쏘아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맞혀야 했다.
유규는 자광이 갑사 시험을 대비할 수 있도록 자신이 타던 말을 건네주었다. 자광은 말이 필요하여 고민하였는데 마침 아버지가 아끼는 말을 내려주어 해결이 되었다.
유자광은 갑사 시험 준비를 하면서 아버지의 권유대로 책 읽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어도 과거에 써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경전보다는 이야기가 살아있는 역사책 읽기를 즐겨했다.
유자광은 열심히 준비한 탓으로 갑사 선발 시험에 무난히 합격하였고, 바로 궁궐을 지키는 갑사로 배치되었다. 유자광은 풍채가 건장하고 이목구비가 큼지막하며 눈썹도 진하여 한눈에 보아도 무인의 기풍이 있어, 경복궁의 동쪽 문인 건춘문을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유규는 갑사로 서울 근무를 떠나는 아들에게 경전과 역사서를 따로 챙겨주며 무인이라도 글 읽기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아무리 용맹한 무인이라도 머리에 글이 들지 않으면 가벼움이 저절로 드러나는 법이다.”
(사진 출처)